백수가 된 후 가짜사회복지사에게 생긴 변화 3가지
계획적인 백수가 직장인보다 낫다
난 1월부터 먹고 싸기만 하는 백수가 되었다. 백수가 된 후로 나에게 생긴 변화를 말해보겠다.
1. 폭식이 줄다.
가장 확실한 행복 중 하나가 먹는 것이다. 직장인일 때만 해도 그 개 같은 직장 일을 다 끝내고 집에 가면 '휴.. 오늘 이만큼 고생했으니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어야지'라며 고생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을 받으려 했다. 외식과 배달음식으로 인해 통장에서 작지 않은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식비를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퇴근 후 집에 가면, 밥과 반찬만으로는 뭔가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당시 나와 아내는 일주일에 3번 이상 치킨을 뜯어버린 적도 있다. 먹을 때는 세상 행복하지만 다 먹고 뼈 쪼가리를 치울 때 '휴.. 또 못 참았네..'라며 뼈저린 후회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맛있게 먹고 후회라니. 이만 큼 멍청한 상황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뜯어 먹어버린 그 많은 치킨의 살점들은 다 어디로 갔겠는가. 우리의 몸무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버렸다.
스트레스와 폭식은 긴밀하게 연결돼있다. 이것은 요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아내를 관찰하며 확신하게 된 진리다. 아내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면 항상 맛있는 걸 먹자고 나에게 제안했다. 스트레스 해소엔 먹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알기에 아내가 폭식 욕구를 표하면 늘 따라주는 편이다.
반대로 난 백수잖나. 평소에 받는 스트레스가 없으니 요즘은 음식에도 별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뭔가 균형이 맞춰나가는 기분이다. 예전엔 아내와 나 둘 다 스트레스로 인해 허구한 날 치킨을 뜯자고 종용했다면 지금은 아내만 그러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4번 정도 했던 외식이 1~2번으로 줄었으니 우리의 식문화는 좀 나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2. 저녁시간이 생기다.
수많은 청년들이 워라벨을 외치지만 막상 6시에 퇴근을 해도 침대나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 것 이상의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어렵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직장에서 날 괴롭혔던 상사가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떠올라서 분이 차오르거나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 활동을 할 기력이 아예 없어서다. 혹은 내일도 직장에서 뭣같이 일하겠지..라며 아직 오지도 않는 내일을 걱정하면서 정신력을 다 빼앗겨서다. 즉, 우린 퇴근했지만 정신적으론 아직 직장에서 머물고 있다는 거다.
백수가 되면 물론 이런 현상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없던 저녁시간이 생긴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에게 필요한 건 단지 직장에서 해방되어 나에게 부여된 방대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치밀한 계획과, 통제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만 고려하여 하루를 보낸다면 직장인들이 생산하는 무언가의 총합보다 백수의 생산력이 훨씬 높을 수도 있다(?). 내용이 너무 비약적인가?
실제로 나는 7개월 동안 빌어먹을 이상한 재가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내가 생산했던 물적/정신적인 것들보다 최근 2개월 동안 백수를 하면서 생산한 가치들이 훨씬 많다. 생각해 보라. 본인과 맞지 않는 직장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단지 돈을 위한 행위를 한다 뿐이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무엇도 할 수 없다. 즉,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론 인간은 시간을 잃어버려가며 살아간다.
3. 페르소나를 완전히 벗어재껴버리다.
직장에서의 내 모습은 가짜다. 거기선 동료와 상사, 고객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 행위를 '페르소나를 쓴다'라고 하는데, 직장인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온전한 내 모습이 아닌 채로 하루 9시간 이상을 보내는 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나.
직장을 다닐 때에 솔직히 성격 같아선 동료들과 가볍게 얘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고 자주 웃고 싶고 그랬다. 하지만 직장 인간관계라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게, 내 모습을 다 드러내면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손해가 발생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나를 드러낸다는 건 상대방을 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직장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니는 것이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편견이 생겨버린다. 그래서 난 경력이 차오를수록 왠지 동료들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동료들은 그렇다 쳐도, 상사는 더 문제다. 전 직장만 해도 상사에게 대들었다가 퇴사하기 전까지 몇 개월을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사를 이기려고 하는 것은 쌉바보 같은 짓이란 걸 경력 3년 만에 깨달은 내가 밉다. 그 뒤로 난 그 상사가 좋아하는 직원 상으로 지내려고 애를 많이 썼다. 때론 굴욕적일 때도 있었다. 회사 생활이 편하려면 이처럼 타인이 좋아하는 내 모습으로 지내야 한다.
백수가 된 후로 난 다행히 온전한 내 모습으로 천천히 돌아왔다. 일단 사유를 많이 하게 됐다. 하루 종일 서류를 어떻게 처리할지만 머릿속에 있었는데 지금은 정녕 나의 성장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아내와 행복한 미래를 살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건강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예민함이 없어지니 같이 사는 아내에게 관대해진다. 정신적 여유를 가지면 주위 사람도 행복해진다.
재밌는 일을 꾸미고 싶단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귀촌 후에 유튜브도 다시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아내가 텃밭을 가꾸면 나는 영상과 사진을 많이 찍어줘야지. 정신이 건강해지니 어떻게 하면 재밌게 살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됐다.
4. 결론
물론 난 일시적으로 백수생활을 지내고 있기에 언젠가는 또 죡(지옥) 같은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잠시라도 정상적인 내 모습을 경험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할배가 되기 전까지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아닌 무언가로 살아갈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지금의 모습을 내 뇌리에 각인해놓고 직장을 다닐 때 다시 폐인이 된다면 '이건 내 모습이 아니야'라며 본연의 나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