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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Sep 25. 2024

[ABP: 일본의 반도체 권토중래의 꿈1]

2 나노 반도체 프로젝트의 의미

지난 2022년 9월, ASML의 CTO인 마틴 반 덴 브링크 (Martin van den Brink)는 현재 방식의 노광기술 (lithography)는 조만간 한계에 봉착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ASML은 2023년 1월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극자외선 (EUV, Extrene UV) 노광기를 생산-공급하는 회사다. 이 EUV 노광기는 반도체 제조 공정 중 이른바 선공정 (FEOL, Front-end-of-line)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계인 패터닝 (patterning) 과정에 있어 필수적인 장비다. 그리고 애플의 아이폰이나 맥북에 들어가는 M1, M2칩, AMD의 최신 CPU인 라이젠 7000 시리즈, 엔비디아의 4080 시리즈 GPU, 그리고 퀄컴의 AP인 차세대 스냅드래곤 같은 첨단 반도체칩 생산에 있어서는 더더욱 필수적인 장비다. 애플, AMD, 퀄컴, 엔비디아, 구글 같이 자체적인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 회사들로부터 위탁받아 반도체 칩을 제조하는 10 나노 이하급 파운드리를 운영하는 회사 역시 현재로서는 전 세계에서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 밖에 없다.

2022년 하반기 기준으로, ASML의 EUV는 전 세계적으로 대략 166대 정도 (누적) 보급되었으며, 이 중 100여 대는 TSMC가, 40여 대는 삼성전자에, 그리고 일부가 인텔이나 SK하이닉스 등에 10대 내외로 납품되었다. EUV 노광기를 이용하여 TSMC와 삼성전자 양사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트랜지스터를 고밀도로 집적하기 위해 아주 미세한 구조물을 오차 없이 제작하는 초미세 패터닝 공정을 수행한다. 특히 이른바 테크노드 10 나노 이하급의 초미세 패터닝 공정은 실리콘 웨이퍼에 30 나노미터 이하의 물리적 크기 (트랜지스터 게이트 half pitch 기준)를 만드는 공정인데, 이를 양산 수준에서 다룰 수 있는 회사도 현재로서는 TSMC와 삼성전자 밖에 없다. 즉, 이 두 회사가 사실상 전 세계 EUV 노광기 장비를 과점하고 있으며, 결국 이는 초미세 공정 기반의 파운드리 산업도 양사의 과점 구도로 당분간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양사에 EUV 노광기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이른바 '슈퍼을'인 ASML이라면 앞으로의 시장 전망도 밝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ASML 경영진은 시장 전망 여부와 상관없이 점점 다가오는 기술적 한계에 벌써부터 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ASML의 CTO가 밝힌 노광 공정의 한계라는 것은 기술적 한계 중에서도 가장 난공불락의 한계인 물리적 한계다. 물리적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난도가 높은 소재와 부품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막대한 개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ASML이 만들고 있는 EUV 노광기의 세대교체는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ASML이 2010년대 초중반에 처음 시장에 출시한 1세대 EUV 노광기는 NXE 3000 시리즈로서, 자외선 대역 전자기파 중에서도 특히 파장이 짧은 EUV 영역에 해당하는 13.8 나노미터 파장의 전자기파를 감광반응을 위한 빛으로 이용한다. 이 전자기파를 레이저로 만들어 복잡한 미로 같은 경로를 거쳐 패턴이 미리 새겨져 있는 마스크를 통과시킨 후, 다시 실리콘 웨이퍼로 초점을 맞춰 집중시켜서 패터닝을 한다. 원하는 물리적 크기를 갖는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해상도를 미리 정해야 한다. 처음 설정된 해상도에 맞춰 여러 광학적 특성을 결정하는 파라미터가 결정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값은 전자기파가 진행하는 매질의 굴절률 (n)과 입사각 (theta)이다. 이때 입사각도의 사인함숫값 (sin(theta))과 굴절률을 곱한 값을 노광 수차 (NA, numerical aperture)라고 한다. ASML이 1세대 EUV 장비에서 사용하기로 결정된 노광 수차 값은 0.33이었다. 노광기의 원리 상, 전자기파의 파장에 변동이 없다면 노광 수차 값이 올라가면서 패턴의 해상도도 그에 비례하여 높아진다. 예를 들어 0.33의 노광 수차에서 최소 선폭 15 나노미터의 패터닝이 가능했다면, 0.55의 노광 수차에서는 최소 선폭이 이론적으로는 9 나노미터까지도 축소될 수 있다. 최소 선폭이 작아지면 그의 제곱에 역비례하여 트랜지스터 집적 밀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선폭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중요한 이슈다. 예를 들어 15 나노미터 패턴에 비해 9 나노미터 패턴은 이론적으로는 2.8배 정도 집적 밀도가 향상된다. 즉, 노광기의 세대교체 과정에서는 트랜지스터 집적 밀도를 높이기 위해 노광 수차를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이 진보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ASML의 EUV 노광기 개발 로드맵도 이 방향을 따른다. 2010년대 후반 들어 언급되기 시작한 ASML의 2세대 노광기는 13.8 나노미터 파장의 EUV를 광원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노광 수차를 0.55까지 올려서 업그레이드한 EXE 5000시리즈다. 현재 ASML의 로드맵 상으로는 2세대 고수차 (High-NA) EUV 노광기는 2023년 상반기에 개발이 완료되며, 양산은 2025년, 그리고 파운드리 및 반도체 제조사에 본격적으로 납품되는 시점은 2026년으로 예상된다.

ASML의 2세대 (High-NA) EUV 노광기인 NXE 5000 (사진 출처: ASML


ASML 측에서 밝힌 것처럼 이렇게 세대교체가 되는 과정에서 EUV 노광기 가격은 폭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22년 12월, ASML의 CEO인 피터 베닝크 (Peter Wennink)가 밝힌 바에 따르면 2세대 NXE 5000 시리즈 EUV 노광기 한 대의 가격은 3.5억 유로 내외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1세대 노광기의 3배를 넘는 수준이다. 장비 가격이 폭등하는 까닭은 노광 수차를 높이는 과정에서 더 많은 광학 장비와 더 정교한 부품이 쓰이고, 제작 시간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기준 1세대 노광기는 ASML의 본사가 위치한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공장에서 연간 45대 내외가 생산되고 있는데, 2세대 노광기는 장비 한 개당 생산 시간이 연장됨으로 인해 연간 생산 대수가 이의 2/3 정도인 30대 미만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노광기 제작 공정 시간이 늘어나는 것과 더불어 2세대 노광기의 공급에 한계가 있는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대당 3.5억 달러에 달하는 초고가의 장비를 연간 10대 이상 구매할 수 있는 실수요자 (주로 파운드리 회사)가 극소수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차세대 EUV 노광기 시장은 극도로 제한적으로만 형성될 것이고 공급자인 ASML 역시 생산 캐파를 이에 맞춰 조절할 수 밖에 없다.



2022년 12월 현재, 파운드리 공정으로 생산되는 로직반도체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의 최신 공정은 양산 공정 기준으로 TSMC와 삼성전자의 3 나노 공정이다. TSMC의 3 나노 공정은 N3라고 이름이 붙은 공정으로서, 2022년 하반기부터 양산에 돌입하였으며 주요 수요 고객은 애플이다. 애플은 이 공정을 통해 자사의 M1, M2, A15 같은 애플실리콘 (Apple silicon) 칩 제조를 위탁하고 있다. 2022년 TSMC의 10 나노 이하급 파운드리 공정에서 거둔 수익의 1/4은 애플로부터 위탁 받은 애플실리콘 제조에서 나왔을 정도다. 삼성전자의 3 나노 공정도 2022년 하반기부터 양산되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는 주요 고객 리스트에 애플이나 AMD 같은 글로벌 팹리스 기업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2023년 들어 불경기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파운드리 공정에 가장 많은 물량을 위탁하던 애플, AMD, 퀄컴, 엔비디아, 구글, 메타 같은 이른바 팹리스 업계의 큰손들은 TSMC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공정 수율, 실제 제조된 칩 성능은 물론, 이제는 공정 원가를 더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다. 특히 3 나노 공정의 칩 생산 규모와 더불어 그 생산을 어떤 회사에 위탁할지 수시로 전략을 수정하며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하반기 기준 TSMC의 초미세 공정 파운드리 로드맵 (자료출처: TSMC)


2022년 하반기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삼성전자의 3나노 파운드리 기반 반도체 (자료출처: Bloomberg)


TSMC가 2022년 상반기에 제시한 로드맵에 따르면 3 나노 공정은 적어도 2025년 상반기까지는 양산에 활용되며, 빠르면 2025년 하반기부터는 2 나노 공정을 통한 반도체칩 생산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삼성전자 역시 현재의 3 나노 공정을 2025년 상반기까지 유지하며 수율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2025년 하반기에는 2 나노 공정, 그리고 2027년에는 1.4 나노 공정에 돌입한다는 초미세 패터닝 공정 기술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두 회사 모두 비슷한 시점에 2 나노 공정 양산 계획을 언급한 것은 흥미롭다. 그런데 이는 사실 우연이 아니다. 초미세 패터닝 공정에 있어서 앞서 언급한 EUV 노광기가 가장 중요한 기술적 도구가 되는데, ASML의 로드맵에 따르면 2세대 EUV 노광기가 양산 단계에 돌입하는 시점이 2025년, 그리고 파운드리 고객사가 이를 최적화하여 각자의 초미세 공정에 활용하는 시점이 2026년이기 때문이다. 즉, TSMC와 삼성전자 양사의 2 나노 파운드리 로드맵은 사실상 ASML의 2세대 EUV 공급 시점에 맞춘 결과물이다. 물론 실제 파운드리에서의 양산 로드맵은 실제 라인 배치 과정에서의 기술적 이슈로 인해 이보다 조금씩 뒤로 밀릴 수 있으나, 적어도 2026년 하반기에는 2 나노 양산 공정 기반의 차세대 CPU, GPU, NPU, APU 같은 반도체칩이 시장에 등장할 것이다. 이렇게 2나노 반도체로의 로드맵이 비교적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시장의 리더들에 의해 정해진 상황에서,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온 일본의 2 나노 반도체 프로젝트는 도대체 어떤 배경에서 나오게 된 것일까? 정말 그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리즈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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