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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산업 전환 롱테일 문제

한국의 산업 경쟁력의 주요 대외변수

by 권석준 Seok Joon Kwon
503471980_29690518063926263_7336383292024002293_n.jpg 주요 국가들의 1, 2, 3차 산업 전환 경향

산업 전환은 경제학에서도 오랜 시간 연구된 주제다. 한국에서도 고등학교 정치경제 과목에서 이를 조금은 다루기도 한다. 예전에 내가 배웠을 때는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그리고 다시 3차 산업으로 전환되는 원리와 효과를 주로 배웠던 것 같다. 대학에 와서 경제학 과목을 몇 개 들었을 때도 이에 대한 내용을 조금 더 심도 있게 배웠던 기억이 나지만, 내 전공은 경제학이 아니었기에 더 파고들어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박사과정 유학 시절, 나는 경영대 과목을 몇 개 청강한 적이 있다. 흥미롭게 들었던 과목 중, 산업의 development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과목이 있었다. 내가 그 과목을 흥미로워했던 이유는 산업의 전환을 조금 더 깊게 다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2-3차로 가면서 산업이 전환되는 것은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전환은 철저히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 이뤄지지만, 사실 저개발 국가에서는 초기에 계획경제의 성격이 가미된 산업 정책이 top-down으로 작용하는 역할도 크다.


1차 산업 발달 초기는 이른바 저소득-저생산성 단계다. 이는 쉽게 설명하면 농사 자영업이다. 대부분의 농사는 자신의 대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규모에 그치며, 따라서 1인당 산출량이 작고, 대가족 구성원 대부분은 그야말로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농사에 매달린다. 그래서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라에서는 전체 산업 종사자 중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비중이 매우 높다. 그러다가 자본이 조금씩 축적되고, 생산성 증가를 이룩할 수 있는 수단들, 예를 들어 농기계 등, 을 구비하게 되면 1인당 농업 산출량은 급격하게 증가한다. 그렇지만 가용한 농지의 크기는 정해져 있으므로, 한 사람이 열 명 몫을 하면 나머지 아홉 명은 할 일이 없어진다. 남아 있는 그 한 사람의 소득은 높아지겠지만, 전체 산업 종사자 중 농업 종사자 비중은 그래서 점점 단조감소하게 된다. 이는 이미 Kuznets 등이 50-60년대에 잘 모형화한 이론이기도 하다.


이제 흥미로운 지점은 그 아홉 명은 그냥 실업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업의 전환이 잘 이루어진 국가에서는 농업 등의 1차 산업에서 이른바 잉여 자원이 된 노동자들이 2차 산업으로 진입하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특히 산업화 초기에는 공산품 공급이 소비를 못 따라가서 제조 설비를 풀가동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여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니 농업에서 소득을 올릴 기회를 상실한 노동자들은 이촌향도 하여 제조업으로 진입하는 결과는 예상가능하다. 특히 제조업 등 2차 산업은 농업 같은 1차 산업에 비해 사람보다는 생산 도구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서, 노동자 1인당 산출 밸류는 더 커진다. 즉, 제조업 생산성이 더 높기 때문에, 제조업의 평균 임금은 농업 종사자에 비해 초기에 더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제조업으로의 노동자 유입 초기에서는 노동자 1인당 생산 밸류가 증가하면서 그에 비례하여 전체 산업 종사자 중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비중이 같이 커진다.


그렇지만 자동화, 기계화로 인한 생산성 향상도 경제학의 기본원리인 한계효용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자본가들은 노동자 1명을 더 투입하여 추가적으로 늘어난 생산 밸류가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추가 고용을 멈추게 된다. 특히 그 시점쯤 되면 웬만한 제조업은 자유시장경쟁의 상황이 된 지 오래일 것이고, 그래서 이른바 산업의 포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제조업이 국내에서의 경쟁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유무역 기조까지 만나게 되면 글로벌 분업까지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비교우위가 있는 국가들로 제조업이 이전되는 현상도 생긴다. 이는 결과적으로 제조업이 성숙할수록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1인당 산출 밸류는 커지면서, 오히려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비중은 감소하는 현상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제조업의 초기부터 성숙 단계, 그리고 해외 이전 단계까지 겪은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제조업 험프 현상 (manufacturing hump) 현상을 겪는다. 이는 Herrendorf 등이 경제성장이론에서 잘 모형화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제조업 종사자의 비중마저도 줄어들면, 그 나라의 노동자들은 어떤 일자리로 가게 되는가? 대부분 3차 산업인 서비스 산업으로 갈 것임은 자명하다. 이 시점쯤 되어 이상적인 시나리오를 따른다면, 제조업이 성숙한 상황에서 구매력 있는 노동자 계층은 충분히 늘어났을 것이고, 그래서 1인당 소득은 꽤 늘어난 상황일 것이다. 1인당 소득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이른바 소득 탄력성(income elasticity)이 형성되고, 이를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 즉, 서비스 산업이 발달한다. 서비스 산업에는 교육, 의료, 금융, 콘텐츠, 그리고 인터넷이나 클라우드, 그리고 최근에는 AI를 포함하는 IT 서비스가 포함된다. 인간의 서비스 생산성은 인간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은 초기 단계에서는 서비스에 투입되는 노동량(노동 시간)에 비례하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작가가 하루에 10시간 글을 쓸 수 있다면, 어떤 날 5시간 글을 썼을 때 작성된 분량은 원래의 절반 정도로 추산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서비스를 소비하는 고객은 남들과는 차별화된 서비스, 더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원하게 되며, 이는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더 좋은 서비스를 받겠다는 욕망을 형성한다. 이 욕망은 결국 더욱 강력한 소비 동력이 되므로, 서비스 부문의 총 부가가치는 비선형적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그 폭증하는 가치를 따라잡기 위해 서비스 산업에 투입되어야 하는 노동량은 늘어나게 된다. 즉, 서비스업 1인당 산출량은 선형으로 증가하는 반면, 임금상승은 더 가파르게 증가하므로, 결국 서비스업 종사자 비중은 서비스업 1인당 가치 창출량에 비례하여 늘어난다. 이에 대해서는 역시 Herrendorf 등이 경제성장이론에서 수요와 공급 측면 모두를 포괄적으로 분석하며 모형화하여 정리한 바 있다.


이제 위에 첨부한 도표를 살펴보자.


이 도표는 세계 각국의 산업 전환사를 추적하여 각 산업에서 노동자 1인당 각 산업에서의 생산 유닛 증가에 따라, 각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비중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추적한 데이터를 정리한 것이다. 이중 하이라이트된 나라는 한국, 미국, 그리고 중국이다. 한국과 미국은 나라 사이즈도 다르고, 인종 구성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주력 산업도 다르지만, 적어도 산업의 전환 단계에서는 위의 경제학 모형에서 분석된 양상을 잘 따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양국 모두 1차-2차-3차로 산업이 전환되면서 현재 단계에서는 서비스 산업으로의 노동자 투입이 증가한 후, 국부 대다수가 서비스업에서 창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제조업 관련해서는 한국과 미국 모두 앞서 언급한 hump, 즉, 피크를 넘은 양상을 보여준다. 물론 조금 더 자세히 비교하면 한국은 peak을 지나기는 했지만, 아직 hump 근처에 있는 상황이고, 미국은 peak을 이미 한참 전에 넘어서 이제는 제조업 종사자 비중이 대폭 줄어들어 제조업 초기 수준에 거의 근접한 양상을 보여준다. 3차 산업에서 역시 미국은 서비스업의 1인당 생산성은 거의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종사자 비중은 이제 거의 90%에 육박한다. 한국은 미국의 뒤를 바짝 쫓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종사자 비중은 거의 70%에 육박하고 있고, 1인당 생산성도 미국을 따라가는 양상을 보인다.


보통 이렇게 여러 나라의 데이터를 산업 섹터 별로 시계열 분석하여 트래킹 하는 도표들은 각국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산업의 전환이 상당히 general 한 트렌드를 따라가며, 이는 산업 전환이 나라 별 특징의 강조보다는, 교과서 같은 경제적 논리와 가치 창출의 shift dynamics를 따라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이라이트 되지는 않았지만, 회색으로 배경에 깔린 데이터들은 유럽 각국, 일본 등이 포함된 데이터이고, 이러한 데이터들도 한국, 미국 데이터와 경향성에서는 대동소이한 양상을 보여주기에, 실제로 산업 전환은 general trend & shift dynamics model에 의해 잘 설명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예외적 양상을 보이는 나라가 있다. 그것은 중국이다.


물론 겉으로만 보면 중국 역시 1차 산업에서는 반비례 양상을 보인다. 여기까지는 미국, 한국, 그리고 유럽 각국,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거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듯 따라오는 양상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데이터는 제조업 부문이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하기 전부터 자체적인 제조업을 키워왔지만, 실제로 제조업의 기반이 제대로 형성되어 산업이 전환되기 시작한 것은 이제 한 세대 남짓 정도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해외 자본과 직접투자, 혹은 합자회사 설립이 주도했던 WTO 가입 초기의 제조업 형성 단계를 제외하면, 중국 자본으로 제대로 된 제조업이 형성된 것은 이제 겨우 15년 내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1기 정부를 시작할 즈음인 2014년, 중국 정부가 '중국제조 2025'라는 대담한 기치를 내걸고 산업 정책을 입안한 것이 겨우 10여 년 전이었음을 기억해 보자.


이는 중국의 제조업 데이터가 한국, 미국과는 달리, 아직 peak, 즉, hump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hump 이전 단계의 중국 제조업 1인당 생산량과 제조업 종사자 비중이 보이는 데이터 경향은 한국, 미국 등과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 2010년대 들어서는 다른 나라 데이터와 상당히 많이 겹치는 양상도 보여준다. 그렇다면 중국 제조업도 다른 제조업 전환을 거쳤던 선배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어느 시점에는 hump를 지나고 점점 제조업 종사자 비중이 줄어드는 결말을 맞게 되는 것 아닐까? 중국이라고 해서 위에서 언급한 general trend & shift dynamics model에서 예외가 되어야만 하는 혹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국의 산업 전환에서 보이는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이른바 long tail 현상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1-2-3차로 산업이 전환되면서 초기에는 1차 산업이 전체 산업 부가가치에 기여하는 비중, 그리고 전체 산업 종사자에서 차지하는 노동자 비중에 제일 높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2차 산업인 제조업에서 그 바통을 이어받았고,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3차 산업인 서비스업에서 다시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를 만약 분포함수로 표현한다면, x축을 1-2-3차 산업으로 전환되는 어떤 지표로 놓고, y축을 산업 생산량(GDP 기여율) & 노동자 종사 비중 같은 데이터로 설정했을 때, 초기에는 x축의 왼쪽 어느 지점에서 피크를 이루며 가우시안 커브가, 중기에는 x축의 가운데 어느 지점에서 피크를 이루며 가우시안 커브가, 그리고 후기에는 x축의 오른쪽 어느 지점에서 피크를 이루며 가우시안 커브가 그려지는 양상으로 조금씩 커브가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였을 것이다. 각 나라마다 이 커브의 모양, 예를 들어 표준편차 같은 지표는 조금씩 달랐겠지만, 어쨌든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산업의 중심이 확연하게 바뀌는 양상은 잘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조금 다르다. 1-2-3차 산업으로의 이동이 보이긴 하나, 앞서 언급했듯, 중국은 그 거대한 내수 시장과 더불어, 산업의 전환이 다른 나라보다 압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특징이 더해져서, 이른바 'long-tail'이 생긴다. 예를 들어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1차 산업의 노동자 상당수가 2차 산업으로 진입했지만, 여전히 중국의 서부 지역 농촌에는 수억 명의 노동자들이 농업에 종사한다. 그 노동자들이 애초에 전부 제조업으로 투입될 수도 없겠지만, 중국은 거대한 인구 때문에서라도 식량 안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자동화된 농업만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농업의 비중은 일정 이하로 낮아질 수가 없다. 또 하나 주목할 특징은 중국은 노동자들의 지역 이동 자유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중국 공산당 정부는 관리감독권한을 유지하면서 인력의 지역 이동 규모나 특정 도시로의 인력 유입을 통제한다. 그래서 경제적 논리만으로는 인력의 자연스러운 shift가 적어도 중국에서는 자유롭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일단 그래서 1-2차 산업 전환에서 농업 등이 차지하던 비중은 낮아졌더라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는 2-3차 산업 전환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1인의 산출량은 놀랍도록 증가하고 있으나, 이는 모든 제조업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배터리나 반도체 등은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이 되어서 자본의 축적이 빠르고, 따라서 더 발전된 설비 투입 규모와 회전율이 높아 노동자 수요가 금방 줄어든다. 그래서 험프를 이미 지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외의 제조업, 예를 들어 섬유나 의류, 제지, 소규모 부품이나 기계류 등의 산업은 여전히 노동자 의존도가 높고, 설비 투자 규모나 회전율을 높이는 것에 한계가 있어 험프가 도달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3차 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중국 정부도 이들이 전부 서비스업에 종사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자리 안정을 위해서라도 제조업 비중을 어느 수준까지는 유지하려 한다.


이렇게 1, 2차 산업에서 다른 나라 같았으면 진작 해외로 외주를 주든지, 내부적으로 자동화되든지, 혹은 경쟁력이 없으면 퇴출되든지 했어야 하는 피크 아웃 현상이 중국의 산업에서는 아직 명확하게 관찰되지는 않는다. 이는 1, 2차 산업이 여전히 중국 산업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long-tail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조금 더 상세하게 이야기하면, 특히 중국 제조업은 일부 첨단 제조업을 제외하면 서구권 경제학자들이 잘 만들어 놓은 manufacturing hump에 도달하지 않거나, 그 hump가 상당히 평평하거나(plateau), 혹은 saturation 된 상황에서 오랜 시간 평행선을 긋는 것 같은 delayed shift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정말 그렇게 될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모델이 성립되지 않았고 실증 데이터를 중국에서 직접 확보하는 것의 어려움 때문에 뭐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제조업의 전환에서는 이제 AI가 제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다른 나라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기술에 의한 인위적인 제조업 급변을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크게 겪을 수도 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산업전환 공식이 중국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겉보기에는 1, 2, 3차 산업을 모두 강력하게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경제는 산업 포트폴리오의 다양성 확보로 인해 아주 미래가 밝을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렇지만 애초에 왜 각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한 때 잘 나가던 산업을 포기하다시피 산업의 전환 공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보면, 이러한 long-tail, pre-hump manufacturing, saturated manufacturing 전략은 결코 promising 한 것만으로는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가 실업률 안정(고용 안정을 통한 사회불안세력 조기 통제 목적), 식량 자급도 사수, 제조업 해외 수입도 절감 및 내재화 강화 등을 기치로 내세우면, 1, 2차 산업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계속 유지되어야(만) 한다. 특히 제조업은 국가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중국제조 2025' 등의 시책을 외치면서 공적 자금을 꾸준하게 그리고 거대하게 투자했기에, 매몰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투자된 설비와 시설을 활용하여 뭐라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사람을 계속 투입하고 자원을 계속 투입하여 뭐라도 계속 생산해 내야만 한다. 이는 겉보기로는 부가가치 창출처럼 보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잉생산되는 출혈경쟁으로 이어진다. 시장에서 소비하지 못한 제품은 결국 해외로 배송비도 못 받는 수준으로 덤핑 수출되지만, 적어도 그 비용은 재고 비용보다 낮기만 하다면 어쨌든 버텨내야 하는 비용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불필요한 비용은 다시 제조업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정상적인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정상적인 글로벌 무역을 이어가는 나라였다면 어느 단계에서는 이 정도 오버캐파에 도달하지 않도록 경제 논리가 몇 번 관여했겠지만, 중국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오버캐파가 만연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집중된 자원과 자본, 그리고 인력의 투자가 사회 전체적인 부가가치 창출로 선순환되지 못하면 그것은 결국 경제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다. 2차 산업에서 털어내야 할 부분은 다 털고 조금씩 무게중심을 3차 산업으로 이전시켜야 하는데, 1-2차 산업에서 불필요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은 인력 구조와 매몰 비용, 그리고 오버캐파 관리 비용 등은 3차 산업으로의 전환 효율을 떨어뜨린다. 3차 산업으로 진입해야 할 인력들은 교육 시점이 늦어지고, 그렇다고 해서 가만있을 수만은 없는 3차 산업은 결국 고용률을 최소화하면서도 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 즉, 자동화, 무인화, 그리고 최근에는 AI에 이르는 방법을 적극 도입하게 된다. 이로 인해 3차 산업 생산품에 대한 소비자, 특히, 맞춤형 소비에 집중하여 더 고부가가치 창출의 엔진이 되어 주어야 할 중산층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하는 결과가 생긴다. 이는 결국 3차 산업 종사자의 극히 일부만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되고, 미처 진입하지 못했거나, 진입을 위한 트레이닝 타이밍을 놓친 애매한 노동자 층은 2-3차 산업의 림보 어딘가에서 갇히게 되는 불행한 결과로 이어진다.


물론 중국 정부도 이러한 딜레마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 한 가지 더 추가되는 무거운 변수는 이제 중국은 인구 순증가국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 그리고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도 이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여전히 14억 명이 넘는 거대한 인구가 뒷받침되는, 그리고 상대적으로 아직은 활력이 있는 중진국이지만, 급격하게 인구가 감소하고 동시에 노령화가 진행되며, 젊은 인력들이 1-2차 산업을 기피하면서 3차 산업만, 그것도 첨단 산업만 원하는 현상이 고착화되면 중국은 미처 3차 산업으로의 제대로 된 전환을 완수하기 전에, 각 산업에서 인력의 부족과 숙련 인력의 재배치 효율 저하와, 중산층 규모의 축소와, 성장 동력의 저하라는 문제를 동시에 안게 된다.


실제로 중국 국가통계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빠르면 올해부터 전례 없는 장기 경기 침체에 빠질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국 경제는 확연한 디플레이션 상황에 빠져 있으며, 2023, 2024년 연속으로 물가가 하락했다. 부동산 시장의 연이은 부도와 불안정성, 미국과의 무역-패권 마찰,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 주도로 20년 가까이 쏟아부은 신산업에서 충분한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산업 정책의 맹점 등은 이러한 디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음을 예고한다. 특히 중국은 압축적인 성장과 산업 전환만큼이나, 일정 수준의 소비자 집단이 되었어야 할, 적정 규모의 중산층이 형성될 시간이 절대 부족했고, 중산층에 진입하지도 못한 1-2차 산업에 종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마저도 제대로 갖춰질 정도로 복지제도가 정비된 상황이 아니며, 그나마 고용 시장을 뒷받침해야 할 제조업마저도 고용 인력 규모를 대폭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 그리고 그로부터 촉발될 가능성이 높은 사회불만세력의 형성 가능성은 향후 중국의 경제 안정성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3기에 접어든 시진핑 주석의 공산당 정부는 여전히 현행 노선을 바꿀 계획이 없어 보이며, 오히려 더욱 통제를 강화하여 국가 시책에 맞는 산업 정책을 드라이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그렇지만 시진핑 주석이 늙어가는 것만큼이나, 중국 사회는 같이 늙어가고 있으며, 점점 활력이 떨어져 가는 소비 규모와 무려 17%를 상회하는 최근의 청년 실업률에서 대변되는 낮은 고용 안정성, 젊은 층의 좌절과 경력 단절, 그리고 미국과의 마찰로 인해 더욱 불투명해지는 대외 개방성은 중국에게 있어 산업 전환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앞으로도 몇 년 간은 적어도 4-5% 수준을 유지하긴 하겠으나, 이러한 수치는 당이 정한 목표를 강제로 맞추면서 만들어지는 것일 가능성이 크기에, 실제로 중국 내부의 경제적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계속 곪아갈 것이고, 중국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 수축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전환 타이밍을 놓친 long-tail은 부가가치 창출의 메커니즘 자체를 약하게 만드는 주원인이 될 것이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가 끝나는 올해를 기점으로, 다시 10년을 내다보며 '중국표준2035', '중국AX 2035' 같은 멋져 보이는 기치를 내세우며 새롭게 정책 방향을 설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 정부도 다른 나라 정부들, 특히 산업 전환에서 이제 그야말로 4차 산업으로 전환 과정에 있는 한국, 일본, 독일, 그리고 미국 같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AI를 받아들일 것이고, AIX를 통해 1-2-3차 산업의 혁신을 이루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 산업 포트폴리오의 long-tail 특성상, AI가 도입되고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long-tail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길어질 것이고, 산업 전환의 효과는 이러한 long-tail로 인해 더욱 약하게 희석될 것이다. 4차 산업의 형성은 더더욱 노동자를 덜 필요로 하는 산업으로 변모할 것이고, 딥시크 창업자 같은 스타급 소수의 기업가들이 조명을 받는 화려한 무대 이면에서는 하루에 1-2달러로 살아가야 하는 농민공들과 농부들, 특히 SNS 보급 이후 더 큰 박탈감에 시달리는 고시원에 기숙하는 젊은 청년 실업자들의 불만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갈 것이다.


이제 다시 첨부한 산업 전환의 도표로 돌아와서 여러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Scenario #1: 중국이 산업 전환 shift dynamics에 저항하지 않고 물 흐르듯 산업 전환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일단 1-2차 산업의 long-tail은 조금씩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고, 3차 산업의 부가가치는 더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그렇지만 AI를 적극 도입하는 단계에서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고용률은 매우 더디게 개선되거나 오히려 역으로 감소할 것이고, 따라서 1-2차 산업의 노동자들은 3차 산업에서 중산층으로 진입할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할 것이다. 특히 중국 제조업이 hump를 맞게 되는 시점이 $15K-$20K 근처가 된다면, 설사 그 지점에서 3차 산업으로 노동력의 대규모 이동이 인위적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이들은 소비 여력이 충분한 집단이 되기 어려워진다.


Scenario #2: 반면, 중국이 공산당 정부의 시책 하에, 미국이나 한국 등의 산업 전환 경로를 따르지 않고 long-tail을 그냥 안고 가는 전략을 택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중국 정부는 GDP 성장률의 둔화가 사실상 반전하기 어려운 운명임을 잘 알고 있고, 따라서 GPD 성장으로 고용률을 끌어올렸던 지난 20년 간의 경제개발 전략의 유효성이 이제는 통하지 않음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1-2차 산업, 특히 제조업 고용률을 유지하기 위해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보호하거나 재배치하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제조업 공장에 대한 생산 설비 유지 보조금을 더 확대 지급할 것이고, 세제 혜택 등으로 중국 제조업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인근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통제하려 할 것이다. 이 경우, 제조업 고용 비중은 대략 20-25% 사이로 유지될 것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제조업 종사자들의 부가가치 창출도 $15K 내외에 머물게 될 것이다. 즉, 중국은 이 정책을 통해 스스로 중진국의 함정에 더 깊이 빠지게 되는 셈이다. 이와 동시에 3차 산업은 2차 산업의 구조조정을 기다리지 않고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무인화, 자동화, 그리고 AI 화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3차 산업은 대부분 내수 시장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 가치의 창출보다는 비용의 절감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Scenario #3: 중국 정부는 위의 두 시나리오 모두 별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할 것임을 인지하여,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다. 즉, long-tail을 완화하는 동시에, 3차 산업으로의 적극 전환을 위해, 3차 산업에서 인위적으로 산업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앞서 언급했듯, 내수 시장 자체가 커져야 가능하다. 중국은 이제 인구 순감소국가로 돌입했으므로, 인구 증가에 의한 내수 시장 확대는 어렵다. 그렇다면 한 사람 당 소비 여력을 확대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이러려면 소득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하고, 그러려면 노동자 1인당 부가가치 생산이 제일 빠르게 증가하는 3차, 혹은 4차 산업에서의 고용률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애초에 3, 4차 산업은 점점 사람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닭이 먼저야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를 넘어 딜레마로 회귀한다.


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를 시장에 맡기지만, 중국은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 정부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기업 고용률 확대 및 임금 수준 상승을 독려하는 방법을 쓸 것이다. 물론 기업들은 땅 파먹고 사는 것이 아니니, 이렇게 하면 대부분 망한다. 그러니까 결국 중국 정부는 다시 공적 자금 투입하고 세금 깎아주면서 이들 기업의 고용 인력들에게 실질적인 임금 상승과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정책 시동을 걸려고 할 것이다. 그것마저도 안 되면 중국 정부는 각 지방 정부에게 미션을 할당하여 reserve stock 개념을 도입, 즉, 정부가 직접 제조업 공장을 유지하거나 고용을 하는 사실상의 준공기업을 대량으로 만들어 강제 부양 정책을 집행하려 할 것이다. 물론 정상적 경쟁 상대가 없는 인위적 시장에서의 다량의 준공기업은 시간이 지나면 비용만 잡아먹는 좀비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다.


사실 위 시나리오 외에도 중국 공산당의 스마트한 간부들이 이리저리 시뮬레이션을 많이 돌려보겠지만, 중국 상황의 특수성은 그 어떤 시나리오라고 해도 완벽한 답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혹자는 양안전쟁 등의 시나리오까지 이야기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 시나리오까지 언급하기는 무리다. 아마 현실적인 시나리오라면 중국 경제 체제의 특징 상, 이중 트랙을 사용하는 방법일 텐데, 예를 들어 long-tail을 단점이 아닌, 강점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 시민들에게는 애석한 일이지만, 1등, 2등, 3등 시민의 계급 구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누군가는 힘들고 임금도 낮고 대우도 별로 안 좋은 1-2차 산업에 종사해야 하지만, 누군가는 편하고 고임금이고 사회적 인식도 좋은 3차 산업, 특히 4차 산업에 종사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각 산업의 인력 전환은 철저하게 정부에 의해 통제된다. 그래서 중국 사회 내부에서의 임금 격차는 확대될 것이고, 계층 간의 이동은 쉽게 허용되지 않을 것이며, 계층 간 의사소통도 정부에 의해 더 철저하게 통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중국의 개방성을 더욱 약화시키고 글로벌화의 기반마저도 약화시킬 것이다. 물론 한 세대 정도 전이었다면 이러한 기술적 통제가 정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초연결 시대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산업 전환 대응 전략은 사실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의 주력 산업 포트폴리오는 하나도 예외 없이 이제 전부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고, 대부분의 산업은 이제 규모의 경제과 집중적인 지원 정책을 앞세운 중국에 밀리게 되거나 밀리고 있다. 한국이 자랑하던 반도체 제조업도 이제 기술 격차가 확연히 좁혀져 몇 년 안으로 역전당할 가능성도 현실화되고 있다. 2030년대는 중국 제조업이 차지하는 글로벌 비중이 50%에 육박할 것이고, 웬만한 AI 산업은 중국 혹은 중국계 인력이 없으면 개발이 어려워질 것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던 중국 제조업에 대한 글로벌 의존도는 중국에서 상승하는 제조업 원가로 인해 동반 경제 침체에 빠지게 되는 원인이 될 것이지만, 중국을 쉽게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제조 입국은 그 시점에는 사실상 전무할 것이므로 대안 마련도 쉽지 않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보다 앞서 산업 전환의 논리를 따라왔고, 산업은 고도화될 데까지 고도화되었지만, 한국의 수출의존적 경제 구조는 물론, 안보적 특수성 상 제조업을 완전히 버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한국도 결국 AI든, 지식 산업이든, 산업의 전환 논리의 주요 미션은 제조업을 위해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여 근본적인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에 배정되어야 한다. 만약 중국의 산업 전환 시나리오들이 대부분 안 좋은 방향으로 귀결된다면, 한국 제조업에 대해서는 양날의 검이 될 것이다. 최대의 경쟁자가 펀더멘털에 난관을 겪으면 한국 제조업에는 기회의 창이 다시 열리겠지만, 그 기회라는 것도 사실 그 시점까지 한국이 충분한 경쟁력을 유지하며 제조업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나 유효한 것이다. 한국 제조업이 충분한 변신과 혁신을 이뤄내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이 겪게 될 산업 전환 난관은 사실 그리 한국에게 별로 반사이익도 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중국이 겪는 난관으로 인해 중국 시장 자체가 활력을 잃게 될 경우, 중국으로의 수출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산업 전환에 있어 정말 아마도 정부 수립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 수립 후 6.25부터 군사독재와 시민혁명,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에 이르기까지 실로 여러 실존적 위기를 겪어 왔던 한국이지만, 기적적으로 때로는 운이 따라줘서, 때로는 국민들이 극한의 고통을 분담하면서, 때로는 글로벌 시장이 도와줘서 지금까지 버텨왔고, 그래서 기록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어쨌든 선진국 끝자락에라도 들어가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내적, 외적 요소들이 과거의 레퍼런스가 되어버렸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자각해야 한다. 예전처럼 중국 시장에서 한국은 당연하다는 듯 연간 수백억 달러의 흑자를 거두기 어려워졌고, 이제 적자나 안 보면 다행이다. 미국은 그간 해외로 분산시켜서 비용을 절감해 온 제조업과 첨단 산업을 다시 미국으로 최대한 많이 가져오려고 하고 있고, 한국 기업에 대해서도 관세, 비관세, 투자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자국 위주의 산업 부흥 기회가 있다고 믿고 있으며 더욱 개방적인 자세로 변모하고 있다. 대만은 대만계 IT 글로벌 거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반도체-AI 생태계를 만들어 새로운 파도를 일으키려 한다. EU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경제적, 안보적 자립을 위해 더욱 보호주의로, 그리고 EU 우선주의로 회귀할 것이다. 동남아 국가들이나 신흥 인구 대국들도 1차 산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2차, 3차 산업으로의 전환을 거세게 시도하며 한국에 도전할 것이다.


한국은 이제 가파른 인구 감소 시대에서 당분간 벗어나기 어려워졌으며, 3차 산업의 전환 마무리 단계에서 다음 전환 단계 경로가 불투명하다. 그 와중에 가장 강력한 산업 경쟁 상대인 중국이 겪게 될 산업 전환에서의 다중 불확실성은 어떤 면에서는 한국에게 분명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 혁신과 자원 최적화 전략이 갖춰지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기회는 오히려 한국에게 있어 독배와 다를 바 없다.


한국 산업은 더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펀더멘털의 변화, 그에 따르는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히 제조업에 AI를 끼얹으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나이브한 생각은 빨리 버려야 한다. CEO부터 신입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영업 마인드와 기술자 마인드와 글로벌 마인드를 동시에 체화해야 한다. 문이과 구분 같은 낡은 개념을 빨리 버려야 한다. 모호한 개념이나 용어가 아니라, 숫자와 데이터를 들고 입에서 바로 튀어나오게 만들 수 있어야 하며, 비즈니스를 발굴하고 맹렬하게 추진하고 다각도로 점검하고 정부가 뒷배를 봐주는 팀워크가 추진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신산업에 도전하고 실패를 용인하되, 실수를 반복하는 일을 줄여야 하고 소모적인 정쟁보다는 비전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적어도 10-20년 후를 내다보며 에너지와 용수, 그리고 인력 양성 구조의 직간접적 사회인프라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더 적극적으로 해외 기술이민, 투자이민을 받아들여야 하며, 대학들은 랭킹 놀음 따위에 신경 쓸 시간에 차라리 해외 분교 설립에 서둘러서 더욱 학생부터 선생까지, 직원부터 총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글로벌화되어야 한다.


중국이 당면한 산업 전환의 딜레마는 결국 한국 산업이 처한 위기 상황의 모든 문제의 총합과 연결되므로, 이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중장기적인 대응책 마련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 숙의가 있어야 한다. 고통분담 계획이 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다음 전환을 위한 타이밍은 열려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창문은 아마 금방 닫힐 것이다. 이 창문으로 세계를 조금이나마 내다보는 데까지 성공했다면, 이제 창문을 열고 안락했던 컴포트 존을 벗어날 때다. 지금이 그런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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