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로 점철되는 민주주의는 왜 살아남는가?

댄왕의 브레이크넥 서평

by 권석준 Seok Joon Kwon

피라미드나 진시황릉 건축 과정에서 수십 만 명의 노동자를 수십 년간 동원하여 대역사를 집중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체제는 아마 민주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파라오나 진시황 같은 전제 군주가 중앙집권적으로 신관들의 지지를 뒤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체제 안에서나 그러한 역사가 가능할 것이다. 만약 당시 이집트나 진나라 옆나라에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어떤 가상의 부족이나 소국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나라 국민들은 옆나라에서 눈부시게 올라가는 제왕의 무덤이라는 기념물을 바라보며 '역시 피라미드급의 모뉴먼트를 올리려면 민주주의보다는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제왕이 필요하다'라고 부러워할까?


제한 시간 동안 거대한 프로젝트를 일관적으로 추진하는 것에는 확실히 권력이 집중되는 체제가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한 체제는 피라미드를 수십 년 동안 남들보다 빠르게 만드는 것에는 통할 수 있어도, 중간에 '아 사실 생각해 보니 왕의 무덤 정도로 피라미드를 짓는 것은 국가적 낭비고, 이 돌로 댐을 짓거나 도로를 만드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더 좋을 수도?'라는 반문을 허용하지 못한다. 반문이 없으니 중간에 수정도 어렵고, 실패로부터의 반성도 하기 어렵다. 반성이 없는 실패는 반복되기 마련이며, 반복된 실패의 궤적은 관성이 되어 더더욱 바꾸이 어렵다. 물론 전제주의 왕권 하에서도 충언을 하는 충신은 있고 이들이 목숨을 걸고 왕에게 고언을 할 수도 있겠으나 애초에 그러한 충언을 듣고 애써 짓던 피라미드를 스스로의 손으로 허물 왕은 그런 역사를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관측되어 온 현상이지만, 아마 올해는 더더욱 중국의 눈부신 산업 발전에 대해 다양한 원인 분석과 분발을 촉구하는 글들이 나올 것이다. 조만간 출판될 내 책 '차이나반도체라이징'도 그렇고, 친한 지인이 출간할 중국의 에너지 기술에 대한 책도 그렇다. 이미 작년에 출판되어 화제를 몰고 있는 댄왕의 '브레이크넥'이나 그전에 출판된 '애플인차이나', '화웨이쇼크', 미국에서 나온 '기술공화국선언' 등은 어찌 보면 다 중국이 최근 이룩한 눈부신 발전, 특히 반도체나 AI, 배터리나 태양전지, 양자컴퓨터나 고속철도에 이르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장해 나가는 추세를 관찰하며 각 방향으로 써 내려간 기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을 연구하던 사람들은 이미 10년도 더 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예측해 왔으며, 최근 중국 비자가 면제되면서 중국의 1 선급 도시를 다녀온 사람들의 체험담과 경탄에 가까운 인상은 중국에 대한 놀라움을 넘어, 조금씩 경악과 공포, 그리고 심지어는 패배의식으로 연결되고 있기도 하다. 이미 중국으로부터 한한령을 당해 본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한국은 최근 한일령(?)을 당하고 있는 일본의 케이스를 보며, 산업 지배력이 10년 전에 비해 더 팽창한 중국이 한번 마음먹고 산업과 경제 패권의 칼자루를 쥐고 흔들기 시작하면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 다시금 간접 체험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희토류 점유율은 독점을 넘어, 지배로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며 한국이 그나마 격차를 보이고 있는 메모리반도체마저도 적어도 내가 그간 관찰한 바로는 한국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에 번역되어 한국에 출판된 댄왕의 책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브레이크넥'은 엄밀한 학술적 분석서라기보다는 일종의 르포에 가깝다. 개인적 체험과 관찰, 그리고 양국의 정치경제체제와 사회문화적 기질 차이를 여러 사례에 빗대어 대조하며 분석한다. 미-중의 패권경쟁구도가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미-중의 차이를 흑-백 대비처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대조하는 서술 방식은 독자들의 이목을 금방 붙잡을 수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대조 방식에 입각한 서술은 일견 핵심 메시지 전달에는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간에 존재하는 여러 단계나 이분법적으로 분류될 수 없는 디테일들, 다른 차원으로의 고려 대상이 뭉개지고 사라진다는 맹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 문제는 0 아니면 1의 극단적 구도에서, 어느 한쪽이 특정한 가치, 예를 들어 '경제 성장'이나 '효율성'이라는 방향으로 가치가 정렬될 경우, 나머지 가치들은 모조리 부수적인 것인양 매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중국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미 2010년대부터 서구의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비효율적인지 기관 차원에서 꾸준히 비판해 왔다. 기관지 차원에서도 '서구식 민주주의는 선거만 남은 껍데기이며 비효율적'이라는 논지를 반복해 왔으며, 더 나아가 아예 중국식 '민주주의', 즉, 일명 '전-과정적 인민민주주의 (whole-process people's democracy)'라는 아주 이상한 개념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까지 한다. 국무원 판공실에서 펴내는 백서에서나 공산당이 펴내는 공식 담론에서도 이들은 'wholesome democracy'를 강조한다. 서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니며, 중국이 광범위하게 국가 차원에서 시도하는 체제가 진짜 민주주의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중국은 서구 각국이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의사결정 효율성이 떨어지며, 사회적으로도 경직되었고, 심지어 최근에는 극우주의로 양극화되고 있는 현상은 그들의 민주주의 기반 정치 체제가 갖는 구조적 맹점 때문이라 강조한다. 이에 반해 일당 체제를 따르는 중국의 의사결정은 거대한 나라의 덩치에 걸맞지 않게 무척 빠르고 직선적이며 효율성을 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발전하는 방향을 따른다는 점에서 뚜렷한 대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대조는 댄왕이 관측한 대조와 정확히 맞닿은 것이다. 댄왕은 이를 '엔지니어 vs 변호사' 구도의 적절한 비유 장치를 빌려서 비교했을 뿐이다.


사실 '브레이크넥' 류의 책은 처음이 아니다. 미국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20세기 초반부터 냉전 이후 마침내 일극(G1)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그 시대 가장 강력한 라이벌을 설정하여 대결구도를 만들고 라이벌을 견제-패퇴시키는 목적 하에 군비 증강, 거대 과학 프로젝트와 기술 개발, 혁신 추구 및 산업 전환의 동인을 만들어 냈다. 그 시대의 라이벌이 무너지면 잠시 혼란을 겪다가 다시 새로운 라이벌을 찾아내 이 사이클을 반복했으며, 지난 한 세기 가까이 이러한 전략은 미국을 과연 일극으로 올려놓는 것에는 큰 효과를 발휘했다. 2차 대전 나치 독일, 냉전 시기 구소련, 1980-90년대 일본,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중국이 차례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등극하며 훌륭한 스파링 상대(?)가 되어 주었다. 미국 입장에서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을 설득(?)하거나 계몽(?)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는, 이 라이벌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얼마나 미국에 위협적인지, 얼마나 실존의 기반을 뒤흔들 정도로 뛰어난지를 잘 포장해야 한다. 1950년대 스푸트니크 쇼크는 과연 이러한 위협론이 실제적이라는 의미 전달을 촉발할 훌륭한 장치였고, 나아가 소련의 차르봄바 같은 핵무기와 핵잠수함에 장착된 SLBM 같은 장거리 미사일은 미국의 실존을 위협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 기밀해제된 문서들은 당시 미국이 평가한 소련의 실제 군사력은 꽤나 과장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80-90년대 일본이 미국의 거의 턱밑까지 경제 규모를 쫓아오며 미국 시장에서 자동차, 철강, 조선, 반도체, 전자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 기업을 압도하던 시절에는 일본의 산업 지배력에 대해 제2의 진주만 침공이라는 표현이 미국에서 서슴지 않고 나왔으며, 일본에 대한 경악을 넘어, 패닉과 과도한 경계는 미국의 정가는 물론 미디어와 서점가를 휩쓸었다. 미국 지도자들과 국민들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마음 속 저 내면에 깔린 존재의 불안감 트리거를 건드리기에 있어 이렇게 각 시대를 지배하던 라이벌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였을 것이다. 물론 미국의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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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하이테크 개발 성과와 기초과학 연구 성과를 해제하는 글을 씁니다. 과학과 사회, 학문의 생태계 지속 가능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이드잡으로 하이테크 스타트업 컨설팅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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