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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Jan 23. 2022

다양성의 시대, 그러나 장르는 하나?

뭐든지 만들 수 있는 시대 속 기이한 장르의 통일성에 대하여

충무로에 흥행법칙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피와 액션, 범죄, 사나이 간의 의리 혹은 신파 중 한 가지라도 포함해야만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일 테다. 

출처: KOBIS(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2021년 8월 기준

실제로 역대 우리나라 영화 흥행작 TOP 20 중 저 조건을 벗어난 작품은 10위에 랭크된 <광해, 왕이 된 남자>정도 뿐이다. <명량>, <극한직업>, <신과 함께>, <베테랑>, <괴물>, <도둑들>, <암살>, <태극기 휘날리며>, <부산행>, <실미도>, <검사외전>이 피, 액션, 범죄 카테고리에 해당하며(이 중에도 신파로 분류 가능한 작품이 꽤 된다), <국제시장>. <7번방의 선물>, <택시운전사>, <변호인>의 경우는 신파로 분류할 수 있다. <왕의 남자>와 <기생충>의 경우 그나마 이 충무로의 일관성에서 약간은 벗어나 있다. 하지만 <왕의 남자> 역시 사회의 취약층을 조명하고, 폭군의 상처를 비추며 신파를 어느 정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생충>은 훌륭한 사회 풍자극인 동시에 주인공들의 수많은 범죄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핏빛 엔딩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결국 충무로의 법칙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물론 이런 요소들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적절한 신파는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데 아주 효과적인 장치이며, 액션만큼 관객들에게 쉽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장르도 드물다. 하지만 개봉하는 모든 작품이 이런 계열뿐이라면 그건 분명히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2016년 한 해 동안 개봉한 국내 영화는 모두 56작품이었다(박스오피스 개봉 기준). 멜로/로맨스 장르의 영화가 여덟 작품, 사극/시대극 장르가 여섯 작품, 공포/스릴러가 다섯 작품. 옴니버스 장르 한 작품, 코미디 일곱 작품 등 다수의 다양한 장르가 포함된, 지금에 비해 상당히 다채로운 박스오피스를 자랑했던 한 해였다. <검사외전>, <동주>, <해어화>, <곡성>, <아가씨>, <봉이 김선달>, <부산행>, <밀정>, <터널>, <럭키>, <가려진 시간>, <형>...이 작품들이 모두 2016년에 개봉했던 작품들이라는 건 몹시 놀라운 일이다. 2017년에도  <공조>, <재심>, <프리즌>, <보통사람>, <임금님의 사건수첩>, <불한당>, <옥자>, <박열>, <군함도>, <택시운전사>, <청년경찰>, <장산범>, <아이 캔 스피크>, <남한산성>, <신과 함께-죄와 벌> 등이 개봉, 화려한 라인업을 유지했다. 더불어 놀랍게도, 이렇게 예시로 든 과거의 영화 중 위에서 언급한 충무로의 흥행법칙을 따른 작품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이 과거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이런 광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해에 대박이라 불릴 만한 작품은 이제 한 두 작품밖에 나오지 않게 되었고, 그 장르 역시 제한적이다. 로맨스 장르 영화는 드물 뿐만 아니라 흥행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건축학개론>과 같이 흥행을 기록하는 로맨스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사극 작품은 자주 제작되지 않으며, <광해: 왕이 된 남자>와 같은 흥행 역시 더는 볼 수 없다. 스릴러와 코미디는 액션 없이 제작되지 않는다. 범죄를 다루는 영화는 그 추리 과정보다는 어떤 범행이 일어났는지, 그 범죄가 얼마나 잔혹했으며 범죄자는 어떤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르는지에 대한 과정을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컨텐츠의 획일화 대안으로 OTT가 주목받기도 했었지만, 결국 OTT 오리지널 컨텐츠 중에서도 살아남는 장르는 정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까지 반응이 오는 작품들은 대부분 <오징어게임>, <킹덤>, <스위트홈>과 같이 폭력성이 짙은 컨텐츠 혹은 <솔로지옥>처럼 선정성과 자극성이 높은 컨텐츠이다. 유품정리사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무브 투 헤븐>이나 SF 멜로를 표방했던 <나 홀로 그대>, 팬을 찾아가는 힐링 예능 <투게더> 등의 컨텐츠들은 전혀 주목받지 못한 채 잊혀져 가고 있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상품'이 도태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컨텐츠를 과연 '상품'으로 한정지어 이야기해도 좋은가 역시 문제일 뿐더러, 우리가 지나칠 정도로 자극적인 컨텐츠만 쫓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잠깐의 즐거움은 확실히 얻을 수 있겠지만, 계속 자극을 쫓아 컨텐츠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점점 더 농도 짙은 자극만을 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보다 쉽게 유인하기 위해 손쉬운 방법으로서 자극을 선택하는 컨텐츠 창작자들과 과도한 폭력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컨텐츠를 소비하는 우리 모두에게 경각심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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