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 동안 살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기 02 <Faxing Berlin>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자음악가는 캐나다 출신의 'deadmau5'이다. 숫자 '5'를 알파벳 's' 대신에 사용하는 '데드마우스'라는 아티스트인데, 이 사람의 데뷔곡 제목이 Faxing Berlin이다. 우여곡절 끝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공항에 도착한 다음, 너무 고생한 탓에 비도 많이 내리고 해서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왔는데 택시 안에서 차창밖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Faxing Berlin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왔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데드마우스 스타일과는 거리가 느껴져서 역시 이 사람도 첫 작품은 수준이 별로 였구나 하는 생각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듣고, 매일 몇 시간씩 걸어 다니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일렉트로닉 뮤직에서는 느끼기 힘든 따뜻함과 절실함이 느껴지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역시 데드마우스는 허투루 곡을 만들지 않는구나. 진정성이 느껴지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Faxing Berlin은 단순한 리듬으로 시작해서 따뜻한 음색과 낮은 음역대의 신시사이저 코드 사운드가 잘 어우러지는 곡이다. 이 곡이 세상에 알려진 스토리를 들은 적이 있다. 캐나다에서 곡 작업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데드마우스는 이제는 곡 작업보다는 사운드 엔지니어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시기에 영국 출신의 친구에게 이 곡을 들어보라고 usb를 전달했는데 자세한 경로는 모르겠지만 바다 건너 영국 BBC 라디오의 배철수라고 할 수 있는 피트 통 Pete Tong이라는 베테랑 라디오 DJ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그의 방송에서 플레이가 되면서 이 곡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MBTI가 INFP인데 주로 집에서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을 즐긴다. 여행을 다녀도 하루에 한 군데, 먹을 것 한 가지 정도만 정해놓고 움직이는 편이다. 그런데 베를린에 도착한 날부터 3일간은 평균 3시간 이상을 걷고 있다. 어제는 거의 4시간을 걸었다.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면서 제일 먼저 이 곡을 플레이한다. 이 곡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데드마우스의 무명시절의 순수함과 간절함이 지금 베를린에 와 있는 나의 처지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 인 듯하다.
베를린으로 팩스를 보낸 데드마우스,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위드 코로나 시기 이전에 노빠꾸로 끊어놓고 운 좋게 직접 체험하러 온 나 자신은 이 글을 쓰다 보니 조금은 동질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