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를 들고
필름을 현상했다. 시드니로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들이다. 12월의 시드니는 한여름이었다. 극강의 더위도 모자라 건조하기까지 해서 입천장은 마르고 손 마디는 핸드크림을 발라도 금방 텄다. 거칠거칠한 손이 여행 내내 신경 쓰였다. 썬크림을 온몸에 비벼 발라도 살이 탔다. 안 그래도 남들보다 까만 팔뚝이 더 까매질까 신경 쓰였다. 나는 물론이고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불그죽죽했다. 익어 올라 새빨개진 채로 도시를 걸어다녔다.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은 얼굴에 선글라스 자국이 남을까? 슬리퍼를 신은 사람들은 발등 위로 슬리퍼 자국이 남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만, 시드니의 강한 볕은 가히 필름 카메라가 반가워할 만한 볕이었다.
필름 카메라는 볕을 좋아한다. 볕이 있으면 그늘 드리운 그림자도 생긴다. 볕과 그림자는 일상 속에서 아주 시시콜콜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들에 시선을 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지만,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서는 이 음양의 조화가 멋스러워 보인다. 볕을 머금은 사진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가는 순간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주변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고 거닐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어떠한 신호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앞만 보고 걷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 산만해지지 않는 선에서.
앞만 보고 걷는 일은 다분히 일상적인 일이다. 다르게 말하면 내 옆을, 내 앞을, 내 뒤를 한번 더 보고자 멈춰 서는 일은 특별한 일이 된다. 사진을 찍을 때, 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나도 모르게 다른 순간보다 오래 머물게 되면 가만히 멈춰 서는 것이다. 그게 동적인 장면이든 정적인 장면이든 상관없다. 셔터를 누르기 위해 멈추는 순간은 모두 특별해진다. 함께 걷던 일행이 앞서 지나가도 개의치 않는다. 손을 너무 떨거나 큰 움직임이 생기면 결과물도 따라 흔들리기에 셔터를 누르는 순간과 그 직후, 잠깐은 나도 멈춰 있는 사진이 된다. 그렇게 뜻밖의 결과물을, 뜻밖의 특별함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