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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맘 쑥쌤 Dec 21. 2022

정신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 수신 거부하기

내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

코로나 이후 세상이 달라졌다!

그냥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하는 엄마들이 아니라 이젠 mkyu 대학에 들어가고 미라클 모닝이나 경제신문 읽기 챌린지를 하거나 온라인 스터디도 참 많아졌다. 그리고 그 기세에 올라탄 운 좋은 사람 중에나도 있다.


엄마들에게 블로그를 알려주는 빛날맘 대표이자 블로그 강사 쑥별마미 (또는 쑥쌤) 가 내 닉네임이다. 어느 날 문득 블로그에 이상한 댓글이 달렸다며 그 계정에 들어가 보니 이상한 망상장애 환자인 것 같다고 한다. 요즘엔 이상한 사람이 많다고 다들 겁을 먹는다.


가끔 뉴스에 묻지마 사건이 나올 때면 조현병 환자들 이야기가 꽤 들려온다. 그리곤 약 안 먹는 “네 아빠 좀 구슬려봐라”라는 고모의 전화가 자주 걸려오고 친척들이 돌아가며 전화를 해서 “전화 노이로제”가 생길 무렵 더 이상 참을 수 없음을 호소하고 아이들 핑계를 대며 그만 전화하시라고 통보했다. 모든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불안감과 통하지 않는 말을 해달라는 부탁은 멈춰달라고 최대한 어른들의 대화방식으로 전달했다.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이 어쩌면, 내 아버지일 수 있다.


구청장에 지원을 해보겠다는 아버지는 집 안에 네온사인 간판을 사두었다고 했다. 그리곤 명함을 파고 갑자기 장에서 강아지를 한 마리 사오시더니 (아버지의 경우 위생관리나 청소가 안 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에 듣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시장에 가게를 구해보겠다고 하더니 벌써 일을 하고 왔다고도 했다. 몇 십을 꽤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에게 계속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는 계속 오고 끊기를 여러번, 이미 400만원을 한 두달새 여기저기 문제를 일으키고 정리해드렸는데.. 나름 가게는 말도 안된다 한들 25년전 아버지의 오래된 직업과 그 때의 그 실력이 조금은 남아있으리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 저 병에도 자격증 시험까지 본 사람인데 엄마에겐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좋은 아버지의 모습도 있었기에 한 장의 기대감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뒤 화를 내는 고모의 전화에 내 어릴적 환상 속 아버지의 모습은 와장창 모두 깨지고 말았다. 인정해야 했다. 그 어떤 사회생활이 이젠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이번에 입원하면 몇 번째인 거지?
(별로 세고 싶지도 않은 마음에 사실 기억해둔 적도 없다)
이번엔 몇 개월 입원을 하고 퇴원을 시켜야 하지? 또다시 나는 이 짓을 반복해야 하나?



이번 입원은 유독 어려웠다. 아버지가 다니던 병원에 문제가 생겼고, 코로나 검사를 미리 받아와야 한다질 않나(그걸 미리 알고 입원을 기다리는 환자가 어딨나.. 대체 무슨 생각인가), 겨우 부탁하고 진료를 봐달라고 알아본 병원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요..”라는 말에 막냇동생은 어릴 적 상처를 다 끄집어내야 했단다.(남편과 동생이 보호자로 간 상황, 아이들에게 정신병동을 구경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며칠만에 의사는 아버지의 병을 인정했다.)


정신병원 입원환자 중에는 똑똑하고 멀쩡한 아버지는, 사회생활하는 보통 사람들에 굳이 비교하자면 집 안에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위생개념이 부족해서 쓰레기를 한참을 모아두기도 하고, 방문을 번호키로 달아두고 나가는 사람, 자기 부모를 잘 챙기지도 못하더니 그 죽음에 남탓을 하고 화를 내는 사람.. 자식 힘들게 하지 말란 말에 내 번호를 지웠으면서도 내 남편을 들들 볶는 사람.. 그러고보니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구나.. 슬프게도.. (뭐 때문에 우리 가족은 이렇게 되었을까)


덕분에 아버지의 격려나 경제적 지원, 부모의 빽을 바라본 적도 없고 기대려 한 적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각자 힘들었지만 각자 버텨왔다. 가끔 남편이 결혼도 안 하고 무슨 계획인지 물어보라고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안다. 서로에게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며, 서로의 간섭과 조언도 듣지 않는다.


마음 에너지에는 총양의 법칙이라는게 있다. 부부싸움이 잦은 집에서 자란 아이는 정서적으로 긍정적으로 자라기가 쉽지 않다. 불안감과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추스르고 억누르는데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기에 그쪽으로만 발달할 수 밖에 없다.


가끔 나에게 육아를 하며 어떻게 그렇게 여러 가지를 해내는지 물어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떻게 그렇게 내가 죽어라고 열심히 하는걸까 궁금할 수도 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도 도와줄 수 없으니
나와 남편 둘이서 해내야 했구요.
그마저 없으면 애들과 해내야 했어요.

둘째 임신 후 입덧이 너무 심해서
첫째를 재우고 또 재웠어요.
둘째를 출산하고는 병원 침대에서
조리원 한 방에서 아이와 미역국을
같이 먹었어요.

저에겐 지금의 가족이 우선입니다.
내 옆자리라도 열심히 지켜야죠.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아직 ”내 집“은 아니지만 내 평생 살아온 집 중 가장 넓고 큰 집이다. 항상 그랬다. 신혼 때 빌라조차도 네 식구가 살아온 집들에 비하면 정말 멀쩡했다! 나는 지하방이 싫고 자꾸 나오는 벌레가 싫어서 빨리 결혼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 이렇게 번지르르한 집에 있어 보이는 물건들이 가득한 곳이라니!!


가끔은 내가 모순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버지는 병원에 있는데 나는 다양한 업체들의 협찬 요구를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글을 쓴다. 누군가는 내 피드를 보며 부러워하고 비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에게 굳이 내 상처를 꺼내면서 위로해주고 싶진 않지만 오늘 용기 있게 고백해봅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속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이에요.

이런 것들을 가져본 적이 없는 제가 올린
피드가(사진이) 예뻐 보인다면
그건 제 외로움과 슬픔이 아이들
덕분에, 때문에 버티는 감사함과
행복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제 슬픔은 제 몫이기에
아이들은 각자의 삶을 주고 싶었어요.
이게 바로 제가 열심히 있는 척 예쁜 척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예쁜 것만 주고 싶습니다.
(p.s 내 아픔 대신 나서서 전화를
받아주고 해결해주는 남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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