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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JayPark Jan 29. 2021

1화 직장을 구하다


내 나이 마흔다섯, 고2 올라가는 시점에 아버지께 "미술을 하고 싶어요"라고 당찬 포부를 말씀드리자마자 1초 만에 "환쟁이 해서 어떻게 벌어먹고 살 거냐, 미술은 안된다"라는 대답을 들은 후, 나름대로 설계해왔던 내 인생의 청사진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목표를 상실하게 되었다. 당시 문과 이과를 어찌 되었든 정해야 했기에 수학이 싫어 일단 문과를 선택했고, 그때부터 사실상 내 인생의 방황이 계속됐다.

공부는 흥미를 잃었고, 나름대로 교회에 다니는 착한 아이라 일탈은 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생활은 농구와 교회와 친구들로 근근이 이어져 갔다. 고3 때 그나마 정신을 차려 공부를 시작했지만 이미 늦은 시기였고, 고3 때 담임은 우리 부모님께서 촌지를 주지 않자, 입시 면담에서 "그냥 아무 데나 원하는데 써라"라고 말했고, 난 진짜 아무 데나 소신지원을 했다. 그때는 그런 때였다. 물론 결국엔 재수를 했다. 


여차저차,

결국엔 적지 않은 시간을 방황하다가 유학을 갔고, 미국에서 눌러앉자는 생각으로 아등바등 댔지만 결국 아이 하나를 안고 귀국했다. 사업을 하겠다고 벌였다가, 회사에 들어갔다가, 다시 또 소일거리를 하다가, 카페를 했고, 다시 또 사업을 했다. 그 사이 아이는 셋이 되었고, 집은 김포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의 사업은 없다는 생각에 직장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다. 한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특이하게 대표가 직접 전화해 면접 날짜를 잡았다.


직원 예닐곱 명에 대표가 있는 작은 업체였다. 대표 방으로 들어가서 면접을 시작했다. 말이 많은 사람이었고, 면접의 대부분의 시간은 자신의 대기업 커리어와 가족의 이야기, 자신이 어떻게 대기업에서 나와 사업 초기에 성공했는지, 자신이 외제차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랜져를 타는 이유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당시엔 내가 캐딜락을 끌고 간 까닭이었다) 사무실을 나와 근처의 조망이 좋은 카페를 데려갔고,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는 혼자서 연봉과 조건들을 마구 정해서 말해주기 시작했다. 나의 사업 경험을 살려 내 회사다 생각하고 직원들을 이끌어 일해보라고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어디에 강점이 있는지 따위의 말을 준비했었지만 그 3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난 단답형 대답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기분은 싸했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고 어쨌든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는 다는데 의의를 두고 출근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어쨌든 괴상한 경력을 가진 나를 받아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것일 수 있으니까.


"박준형씨, 다음 주 월요일 부터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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