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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y Mar 22. 2022

포토제닉한 정치인이란 무엇일까

<웨스트윙> 에피소드,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등굣길

요즘 이래저래 신문 정치면이 시끄럽다.  여당  청와대 출입 기자 분들은 모처럼 업무강도가 낮아지나 했더니 외려 반대라는 전언. 소란의 핵심에는 단연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문제가 있다. 구중궁궐 청와대를 나와서 용산 시민공원에서 시민들과 접점을 늘리겠다는, 기표적인 발상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미디어 의존 정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디어 프렌들리(media friendly)한 태도는 21세기 대중 정치인에 있어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의 범람과 가십성 기사의 높은 전염성에 의해 본말이 전도되곤 한다. 거대 양당이 서로를 “쇼통” 이라 비판하고 공수를 바꿔가며 서로를 찔러대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브렉시트, 각국에서 아른거리는 극단적 포퓰리스트들은 모두 방송과 SNS 등을 십분 활용하여 발언권을 얻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양날의 검이다.


하지만, 모든 수단이 그러하듯 인간이 활용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유용한 발명품의 예기치 못한 부작용에 당황하며 우왕좌왕하지만 결국에는 나름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대중매체 드라마에서 인상 깊은 장면 하나, 그리고 현실 속에서의 인상 깊은 장면 하나를 소개해볼까 한다.


지난 브런치에도 말했듯이, 미드 <웨스트 윙: West Wing>은 현실 정치의 교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치인이 언제 ‘정면돌파’를 할 지, ‘양보’를 해야할 지를 자세하게 연출한다.


오늘 소개할 에피소드는 시즌5 8화, <Shutdown>이다. 임기 말의 바틀렛 대통령과 신임 야당 지도부가 새해 예산안 문제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장면이다. 타협주의자인 바틀렛 대통령은 야당 지도부의 사회보장정책 예산안 대폭 삭감 요구를 묵살한다. 야당 지도부가 무리한 요구들을 내세우자(백악관 비서실의 브레인이자 전략가 조쉬 라이먼의 협상 배제 등) 다른 강경파 참모도 아닌, 바틀렛 본인이 직접 협상을 종료시켜버린다. 이에 연방정부가 전면 폐쇄된다.


하지만 결국 협상은 협상이고 할 일은 해야 한다. 극적으로 컴백한 조쉬 라이먼은 바로 ‘그림’을 그린다. 바로 대통령이 직접 의회 의사당으로 찾아가는 그림이다. 감정적 대치를 하고 있는 형국에 먼저 굽히는 이미지를 만듦과 동시에 민생보다 중요한 정치는 없다는 메세지를 던지겠다는 계산이었다.


이 에피소드의 압권은,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신호등마저 작동하지 않자 대통령이 경호차량에서 내려 직접 걸어서 이동하는 장면이다.

(해당 장면 링크. 꼭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https://youtu.be/AK8HfO6jXxA )


바틀렛은 관광객들과 만담을 나누며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자신의 생각을 일반 시민들과 매스미디어 앞에서 공개하는, 나름의 공짜 기자회견을 한다. 의사당에 걸어서 도착한 바틀렛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공화당 지도부 사무실 앞에서 앉아서 이들을 기다린다. (무려 언론 카메라들 앞에서!) 이처럼, 정치인의 integrity는 미디어를 통해서 배가된다. 같은 물을 마셔도 뱀은 독을 만들지만 젖소는 우유를 만든다.


비슷한 맥락에서, 오늘 오전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한 장면이 한국에서 나왔다. 서울이 소음으로 시끄러운 데 반해, 울산시 교육청은 우리를 숙연하게까지 한다.


바로,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이다. 2018년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다. 지난 아프간 기여자들의 귀국 작전 이후, 아프간 아이들의 사회 정착 및 등교가 이번 학기부터 시작됐다. (모두가 스캔들 위주의 대선에 눈과 귀를 빼앗겼을 때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아프간 기여자들의 연착륙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박노자가 지적했듯이 우리나라는 나라별 GDP에 따라 외국인을 차등대우하는 ‘GDP 인종주의’다. 크고 작게 아프간 아이들의 입학을 꺼려하는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울산시의 사례는 우리 정치와 미디어에 경종을 울린다.


(등굣길 사진, 그리고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의 페이스북 글 캡쳐)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은 아프간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등교를 했다. 팻말도 들고 아이들이 위축되지 않게 손을 잡고 동행한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를 ‘진보 교육감의 쇼’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네이버 댓글창이 이를 몸소 보여준다. ‘조선족’ 내쫓자는 이야기까지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저 아이들에게는 첫 등교일이 어떻게 기억될 지를 생각해보면 이내 마음이 누그러진다. 그리고 혐오와 경계에 맞설 마음으로 스스로를 무장케 한다. 낯선 이역만리에서 교육감이라는 책임자가 본인들과 함께 걸어서 등교깃에 나섰다는 기억은 소중할 것이다. 언젠간 본인들도 그처럼 따뜻한 배려를 나눌 동기부여로 새겨지지 않았을까.


요컨대 정치와 미디어는 함께 갈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뜻을 관철 및 설득시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이치와 ‘보여주기식 쇼’는 뗄레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 부작용을 고쳐나가고, 본래의 순기능을 지키는 것 역시 우리 사람들의 몫이다. 덧붙이자면, 정치은 원래 쇼이자 기예다. 그걸 잘 해내는 사람이야말로 권력을 거머쥘 수 있다. (오토 비스마르크, 막스 베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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