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메리셸리 <프랑켄슈타인> 서평

by snowball

빙하 위에서 탐험가 로버트 월튼이 마주한 조난자는 그저 길을 잃은 방랑자가 아니었다. 그는 창조자이자 파괴자, 신의 자리를 욕망한 인간이면서도 한없이 나약한 죄인이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얼음 위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 남은 힘을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창조한 크리처는 단조로운 실험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과학적 호기심이 낳은 산물이자,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과 욕망이 집약된 존재였다. 하지만 빅터는 창조물의 끔찍한 모습을 보자마자 그 존재를 외면했고, 도망쳤으며, 끝내 버렸다.


그러나 진정한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은 홀로 인간 사회를 떠돌며 언어를 익히고 감정을 배운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처럼 행동하려 해도, 인간 사회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의 선의를 알아보지도 않고, 단 하나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 결국 그는 창조주를 찾아가 자신처럼 외로운 존재, 즉 ‘배우자’를 만들어달라고 간청하지만 빅터는 그것마저 거부한다. 인간이 되어보려는 노력은 끝내 좌절되고, 그는 그를 만든 인간을 향해 잔혹한 복수를 시작한다.


빅터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차례로 죽어나간다. 그의 친구 클레발, 그의 약혼녀 엘리자베스, 그리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 이제 빅터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피조물을 추격하여 제거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빅터의 원정은 실패로 끝난다.


메리셸리의『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이 창조한 것들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예언적 우화이며, 창조에 대한 책임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자성을 담은 사변적 텍스트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신의 자리를 꿈꿨다. 인간이 죽음을 초월하여 생명을 창조할 수 있다면, 그 힘을 가진 인간은 신과 동등한 존재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빅터는 자신의 창조물과 마주하는 순간 신의 자리에서 추락한다. 그가 만든 것은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책임을 요구하는 존재였다. 그는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쳤고, 결국 그 비겁한 선택이 모든 비극을 초래했다.


과연 괴물은 누구인가? 크리처인가, 아니면 그를 만들고도 외면한 창조자인가?


이 작품은 '괴물'이라는 개념을 다시 묻는다. 크리처는 창조될 때부터 악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되길 원했고, 사랑받길 갈망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마주한 것은 환영이 아닌 혐오였다.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그의 외모가 아니라, 그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인간 사회였다. 결국 그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가장 원초적인 방식, 즉 복수를 선택했다.


메리 셸리는 1818년, 겨우 19세의 나이에 이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가 던진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당신들은 스스로 창조한 것들에 대해 얼마나 책임지고 있는가? 이제 AI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글을 쓰고, 유전자 조작이 생명을 바꾸는 시대다. 당신들은 과연 창조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아니면 빅터 프랑켄슈타인처럼 편리할 때는 창조하고, 불편해지면 외면하는가?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노동 시장에서, 기업 문화에서, 사회적 경쟁에서 현대인들은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창조와 윤리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적 소외에 대한 강렬한 고발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들을 ‘괴물’이라 부른다.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정서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배척하고 격리한다. 크리처가 겪었던 차별과 혐오는 결코 19세기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끝내 피조물과 화해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크리처 역시 후회와 절망 속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났다고 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손으로 만든 것들, 그리고 사회가 배척한 존재들을 외면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다. 괴물은 처음부터 괴물이 아니었다. 괴물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크리처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 현대인들이 외면한 그 존재들은 지금 어디에서 절규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