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이름 자체는 생소하다 할지라도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용의자x의 헌신」, 「백야행」이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그의 작품이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sf를 가미한 추리소설로 순식간에 몰입하게 되는 책이다. 온천지에서 화산가스 중독으로 유명 영화감독이 사망한다. 천재지변에 의한 불운의 사고로 종결되는 듯하였지만 여러 석연치 않은 정황이 발견되고, 이와 비슷한 사고가 또 다른 온천지에서 발생한다. 이를 조사하던 나카오카 형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계획적 살인사건이라 생각하고, 화산가스 분출 원인을 조사하던 지구화학분야 아오에 교수도 이 사건에 의문을 품으며 두 사람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움직인다.
작가 게이고는 두 인물이 실마리에 접근하는 과정을 차분하지만 끈질기게 보여준다. 하나의 단서에서 인물들이 또 다른 단서로 접근하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독자들에게 설득시키고, 단서들이 켵켵이 쌓이면서 진실에 가까워지는 느낌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추리소설을 떠올릴 때 셜록홈즈를 빼놓을 수 없다. 어릴 적 그를 거의 숭배하다시피 좋아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를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추리소설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셜록홈즈는 사건을 풀어나갈 때 독자와 같이 호흡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살인사건에 대해 의뢰가 들어오면 사건을 풀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만 실제로 단서는 많지 않고, 사건과 관련 없는 장면들도 많이 나온다. 몇 개 되지 않는 단서들만으로 홈즈는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모든 퍼즐을 꿰맞춘 후 “범인은 너”라고 파이프를 물며 멋있게 말한다. 독자들은 그의 절친 왓슨처럼 소설이 끝날 때까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마지막에 홈즈가 설명해주는 사건의 실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준에 불가하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독자를 추리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드러나는 단서들이 모여 사건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기 때문에, 독자들도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에 동화되어 단서 사이사이 있는 비어있는 부분을 함께 추리한다. 또한 소설의 전개가 굉장히 속도감 있어서 중간중간 다시 앞부분으로 훑어보기도 하며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게 한다.
소설 속 아오에 교수가 본인이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며 답답해할 때 독자도 그의 감정선과 생각을 그대로 느낀다. 독자도 단서들을 조합하여 어느 정도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지지만, 결국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을 때 아오에 교수와 마찬가지로 좌절하게 된다.(물론 sf적 현상을 추리로 풀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소설 끝부분에서 “얼핏 보기에 아무 재능도 없고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구성 요소야.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라며 특출난 사람들보다 보통의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말하지만 마지막 퍼즐 조각은 결국 뛰어난 사람에 의해 맞추어졌기 때문에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흡입력과 속도감이 높아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독자도 소설에 같이 녹아들어서 호흡할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