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사람들의 크리스마스장식에 대한 기록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에서 1시간 쯤 떨어진 울프강 호수는 예전 합스부르크 시절 프란체스 요세프 왕이 머물었던 역사적 기록으로 유명한 “백마호텔” (독어로 Hotel Weisses rösse을 직역하면) 이 있다. 우리가 도착한 시기는 크리스마스가 막 지나 아직 정리 안된 몇몇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남아있어서 눈요기가 좀 되었다.
호텔 식당 바로 앞 로비에 10캐럿 짜리 다이아몬드 쯤을 모셔둘 것 같은 전시용 유리관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전부 이끼로 덮힌 크리스마스 트리 형체의 물체가 있었다. 추운 겨울 ( 한국처럼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이쪽 나라 겨울이라 가능한 것 일 수도?) 에도 꿋꿋이 생존하는 이끼의 생명력과 그것을 경외하는 인간의 마음이 느껴지는 장식이 어우러져, 내가 태어나서 본 그 어떤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아름답게 내 마음에 울림을 가져왔다. 아주 단순한 장식이지만 더도 덜도 필요없는 듯, 완벽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 비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구부려 이끼트리에 입맞춤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사실 이렇게 자연을 크리스마스 장식에 활용하는 건 오스트리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쇼핑골목을 걷다보면 일회용 플라스틱 장식이 아닌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어우러진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눈에 종종 띈다. 아마 겨울이 아니어도 어디든 사용할 법만 하트 모양 철제선에 이끼를 입혀 생명력을 불어넣고 굵기가 다른 레이스와 작은 오너먼트를 덧붙이면 세상에 하나뿐임 나만의 장식이 된다.
크리스마스 리스에는 말린 오렌지 조각 몇몇과 뒷산에서 주워온 듯한 솔방울과 나뭇껍질을 이용한 장식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담기도 한다.
이렇게 내 주변의 사소한 자연을 이용한 크리스마스 장식은 상점 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집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 어느 집앞이든 나뭇가지을 잘라 만든 미니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친구 말로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직접 나무 가지를 줍고, 필요한 길이로 톱질을 하고, 몇몇 간단한 연장을 이용해서 계획한 구조대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직접 만든하고 한다. 문득 싱가포르에서 첫째가 스티로폼에 침을 묻혀 산타 얼굴이 인쇄된 종이에 빼곡히 붙히는 크리스마스 카드만들기 과제가 생각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 일상에서, 특히 자연 속에서 모티브를 찾을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당연한 거겠지.
집 안 곳곳에서도 아름다운 장식으로 변신한 우리 주변의 사소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땔깜으로 쓸 수 없어 버려진 나무 판대기,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 뻔한 포장 리본들, 길거리에 널부러진 소나무 몇 가지. 이러한 사소한 일상에서 찾은 크리스마스 장식이야 말로 진정한 소확행의 실천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소한 자연을 이용한 집안 장식은 내가 하루 하루 살고 있는 공간을 둘러볼 수 있는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만 열대지방에 살고 있다. 더군다나 산을 좋아하지만 비치에 더 자주 가는 삶을 살고 있다. ( 참고로 싱가포르에는 산이 없고 지형이 평평하다.) 이렇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살아내는 나에게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자연을 이용한 장식품들은 모방할 수 있는 범주에 있지 않다.
모방이 불가능할 때 필요한 건 어쩌면 내 일상에 대한 더 극진한 관심과 무한한 상상력이 아닐까. 2022년 크리스마스에 열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담는 장식을 만들기 위해서 사소한 내 주변의 자연을 매 순간 놓치지 말고 관찰해야겠고. 어찌 상상력을 무한대로 키울지만 좀 고민해야겠다.
아 그리고 여전히 창고문 앞에 붙어있는 폐품을 이용해서 첫째랑 뚝딱 만들었던 크리스마스 트리도 이제 뜯을 때가 온 것 같다. 아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