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하나 소셋 Feb 28. 2024

새벽 복근운동을 하며 눈물 흘리는 여자

아무도 없는 새벽에 대성통곡하며 열심히 복근운동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전혀 예상치 않은 일에 휘말릴 때가 있다.


나는 내가 주도적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난 후 어떤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이 좋은 성과이건 조직에 피해를 준 실패사레이건 간에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28년간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결코 한 번도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 본 적은 없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결정하고 주도하지 않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마치 내 책임인 것처럼 포장되고 그 실패는 내 탓이 되고, 그 실패 때문에 내가 일신상의 벌(조직에서 말하는 서류상의 처벌)을 받게 되는 일도 가끔 생긴다. 

그런 일을 종종 목격할 때면 "나 같으면 절대 저렇게 당하지 않을 텐데.. 끝까지 억울함을 밝혀 경력에 오점을 남기지 않게 할 텐데...." , "저 사람은 너무 순순히 본인 책임으로 짊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그 사람들이 참 한심하게 까지 느껴졌다.


결국 나에게도 그런 일이 2년 전쯤 생겼다.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결정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관례라고 그저 따라야 한다는 상사의 말이 있었고, 또 내 자리가 여러 부서의 의견을 종합하여 대표로 실행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내가 대표로 나서 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의 결과가 나쁜 쪽으로 일파만파 커졌고, 상급기관과 감사기관에까지 알려져 내가 대표로 조사를 받게 되는 처지가 되었다. 원인을 제공하고 그렇게 처리하도록 '사실상' 지시한 상사는 "몰랐다."로 시종일관 대응했고, 결국 내가 '주도적으로 처리한 자'가 되었다.

너무 억울했다. 시시콜콜 전후좌우 사정을 밝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사에게 더 많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내가 한 일로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조직 분위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한 십 년은 이 직장을 다녀야 하기에 나 역시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즈음은 마침 승진인사 시즌이었고, 나는 내가 벌이지도 않은 일에 주도자가 되어 승진에서 탈락까지 했다.


사람을 만나기가 싫었다.

만나면 억울함을 호소하고 항변하고 싶을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집에 혼자 있는 저녁 시간, 아무 생각 없이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때마침 불어난 몸무게와 건강검진 때 나온 경도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PT를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유산소, 근력운동 이런 내 신체를 단련하는 종류의 운동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배가 더부룩하면 집 앞 탄천을 나가서 걷고, 조직생활에 필요하기에 골프를 배우고, 학교 다닐 때 수영을 배운 것이 전부였다.

PT를 택한 이유는 한 시간 동안 토 나오게 운동할 수 있다는 후기가 많아서였다.

그렇게 한 시간을 하얗게 보내고 나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딱 PT 하는 날만 나가서 운동을 했다.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고 인바디를 잴 때마다 내 근력이 늘고 체지방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또 속칭 '무게 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바벨을 내가 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재미가 붙기 시작하면서 주 5일 운동을 나갔다. 근력은 제법 붙는데 체지방이 잘 안 빠지는 것 같아 새벽 유산소 운동까지 추가했다. 


새벽에 아무도 없는 헬스장에 불을 켜고 들어가 혼자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크게 들으며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유산소를 하는 일이 이렇게 스트레스가 풀리는 일인지 그전에는 전혀 몰랐다.

매일 유산소를 끝내고 복근운동을 루틴으로 하는데, 운동이 너무 힘들기도 하고 또 사무실에 출근해서 사람들의 관심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또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눈물이 저절로 났다. 

아무도 없는 헬스장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누가 보면 아마 실연이라도 당했거나, 가족이라도 잃은 줄 알았을 게다.

그런데 그렇게 한바탕 눈물을 쏟고 집에 가 씻고 출근을 하면 어쩐지 마음이 개운했다. 비로소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처럼 조금 단단해졌다.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했다.

그러기를 이년..


그 사건은 결국 나의 잘못이 아님을 최종 판결받았고 (바로 얼마 전 일이다.)

나는 결국 올해 초 승진을 했으며,

지금까지 이어진 운동으로 경도비만을 벗어났고, 옷 사이즈는 2단계가 줄었다.

운동 전도사가 되어 가족 모두의 트레이너가 되었고,  

배달음식을 지양하고 건강한 식단을 연구하여 가족들과 함께 먹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바로 운동의 중요성이다.

운동은 내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데에도 너무 탁월하다.

내가 부침을 당하던 그 시절을 방에 처박혀 은둔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며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녔다면, 지금의 나는 어떠한 모습일까? 

아마도 경도비만은 고사하고 고도비만이 되었을 테고, 술 때문에 얻은 각종 질병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최근에 나와 같이 근무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제일 먼저 운동의 중요성을 설득한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일수록 얼른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이 어렵고 두려운 매사 조심스러운 그 시절이기 때문에 자존감과 스트레스 관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운동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 고들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은 있다.'


나는 지금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가벼운 스트레칭 후 30분가량의 코어 및 유산소 운동을 한다.

퇴근해서는 저녁을 먹고 골프를 한 시간 하거나, 근력운동을 한 시간 하고 다시 유산소 운동을 30분 이상 한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예전에 있었던 불면증과 자다 깨다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기러기 엄마 생활을 하면서 거의 10년을 못 자던 밤잠을 통잠으로 잔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운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 많은 장점들을 알았다면 지나온 인생이 조금 덜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 다는 그 뻔한 이야기가 정말로 참말인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난 2년 그 어둡고 긴 터널을 뚜벅뚜벅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운동" 덕분이다. 




그 시절을 다 보낸 어느 날, 참 고맙게도 어떤 선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네가 그 시기를 잘 현명하게 보내고, 또 평소 하루하루 주어진 일들을 진심으로 해왔음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기에 이런 좋은 마무리가 있지 않았겠니"라고...


역시 나의 28년 직장생활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작가의 이전글 스트레스와 술버릇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