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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나 소셋 Apr 25. 2024

성별이 깡패

남성중심의 마초적 조직문화를 가진 기술직 회사의  여성관리자 이야기 

나는 여성직원 비율이 전체 직원의 5%가 넘지 않는 공공기관에 근무하고 있다.

전형적인 남성중심 마초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기술직 중심 회사에 여성 경영관리직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직원이 3,000명이 넘는 규모의 회사이다 보니, 한 사업장에 여직원은 고작 한두 명에 불과했다. 

28년 세월 동안 얼마나 다양한 남성 상사, 후배, 동료들을 만났겠는가?

오늘은 그중 가장 가부장적이며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한 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마초 차장은 나보다 한 살 어렸다. 

내가 부장시절 만난 나마초 차장은 우리 부서 나이가 한 살 많은 선배 형님 차장에게는 언제나 깍듯했다. 형님을 위해 업무도 대신해 주고 저녁에는 선배가 부르는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으며, 낮에는 사무실에서 형님이 시키는 일은 그게 무엇이든지 나서서 했다.     

부장 초임이었고, 내가 맡은 부서는 신생부서였기 때문에 처음에 관리자 간의 합이 매우 중요했고, 자리를 잡고 체계를 잡아가야 하는 때였기 때문에 진도관리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 오전에 회의를 했다.

회의 전 내가 챙겨야 할 업무의 목록들을 키워드 형태로 정리해 두고 세명의 차장에게 하나씩 진도에 대해 피드백을 받는 형식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공자님 말씀을 늘어놓는 회의는 나도 싫었기 때문에 업무 위주로 짚고 넘어가는 회의를 주재했다.     

 

한 번은 회의가 시작되고 나마초 차장의 업무 진도를 체크하기 위해 질문을 했다 

“차장님 작년 조사결과가 나온 지 일주일 경과했는데 분석보고는 이번주까지 될 수 있나요?” 

나마초 차장이 대답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잘못들은 줄 알았다.

그 일은 1년에 한 번 있는 그 차장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내가 차장 시절에 그 업무를 5년간 담당했었기 때문에 그 일의 시급성과 중요성은 판단거리가 아닐 만큼 명확한 것이었다. 

순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상사의 질문에 저런 답변을 하는 차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차장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알아서 하세요”라는 속 좁은 말을 뱉어내고는 회의를 끝냈다. 


혼란스러웠다. 

원래 저런 사람인가? 동료차장에게나 다른 부장한테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그 일은 다음날 따로 불러 그 일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보고기한을 정해주고는 끝냈다.     

시간이 몇 개월 흐르고 어느 날 보고문서가 하나 올라왔다. 

사업소에 지시하는 문서였는데 사업소 입장에서 알기 쉽게 설명이 부족해 보였다. 

이렇게 나가면 수신하는 쪽에서는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기 마련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예시와 질문과 답변 형식의 설명문을 덧붙여 보내라고 지시했다.

나마초 차장이 말한다.

 “제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합니까? 그런 것까지 할 시간이 없습니다.”

또 한 번 머리가 멍해지고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차장님이 바쁘시면 그 붙임 문서는 직원에게 지시하시고 취합해서 결재 올려주세요”라고 지시하고 마무리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

평소 누구에게나 저런 반응이라면 이해했겠다.

하지만 같은 부서 남자선배 차장들의 말에는 단 한 번도 토를 달지 않는 사람이다.

유독 내가 지시하는 말에만 소위 말해 삐딱선을 탔다.

그리고 밤에 남자 부장, 처장들과 골프 치고 술 마시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은근히 내 앞에서 자랑하는 듯 이야기했다.      




‘직급이 깡패’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성향이 달라 마음이 안 들어도 상사의 지시는 수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온 우스개 소리다.

하지만 그 차장은 “성별이 깡패”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듯했다. 

내가 그 차장의 태도 때문에 다른 부장들과 고민을 이야기할 때면 다른 남자 부장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다른 남자부장들에게는 너무나도 깍듯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나의 자격지심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아니었다.

직급, 나이, 승진연차, 입사 뭐 하나 내가 뒤지는 것이 없는데도 나에게만 유독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결국 성별의 차이였다.     


결국 나는 1년 정도 함께 근무한 후 그 차장의 티오를 빼버리면서 까지 다른 곳으로 발령을 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새로 발령받은 곳의 남자 부장하고는 합을 맞추어 일을 잘하고 있다고 한다.      

씁쓸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결혼하고도 그만두지 않는 여직원 1세대다. 

그전에는 결혼하거나 임신을 하면 여직원은 모두 그만두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지사장인 여직원도 겨우 2명에 불과하니 우리 회사의 남자직원들도 여성 관리자가 생소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그 나마초 차장 같은 일부 편협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를, 여성 간부를 있는 그대로 직급 그대로 관리자로 봐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나마초 차장 같은 사람의 가치관까지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여성관리자에게 가지는 편견은 없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신의 편협한 가치관이 결국 자신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나마초 차장도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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