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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나 소셋 Feb 08. 2024

어쩌다 간부

승진 생각이 1도 없었던 내가 어쩌다 간부가 된 이야기

1995년, 그때만 해도 취업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시절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 대학교 4학년 12월에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의 직장은 남자가 전체 구성원의 95% 이상이다. 


처음 입사하던 날 넓디넓은 사무실에 뺴곡하게 남자들만 앉아 있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여자라고는 달랑 나 하나였다. 대학교를 채 졸업하지 않은 내가 수용하기에는 너무 힘든 환경이었다. 

이야기할 사람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사람도 없었다.

또 어쩌다 친절한 아저씨(그때는 다~~ 아저씨로 보였다.)가 있어서 나도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면 그것을 여자가 남자에게 호의가 있어서 하는 행동으로 오해해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정말 눈 딱 감고 삼 년만 다니다가 정 안될 것 같으면 그만두자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고 회사를 다녔다.


더 나빴던 것은 함께 일하는 사무업무를 보던 남자 선배가 나와 단 한 가지도 맞는 게 없었다는 사실이다.

어쩜 그렇게 안 맞는 사람이 있는지 정말 딱 반대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일하는 방식도 성향도 모두 말이다.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건 정말 고문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하도 싸우니 지점장은 한 번만 더 싸우면 둘 중 하나를 발령 내겠다 엄포를 놓을 정도였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본사 홍보실에서 함께 근무해 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왔다.

출퇴근 시간이 한 시간 이상 더 소요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맞지 않는 사람과 근무하느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 싶어 가겠다고 했고 본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본사는 많이 달랐다. 일단 여직원이 스무 명은 넘게 있었고 지점보다 사람이 많다 보니 여직원 모임도 있고 나이가 같은 친구, 선배, 후배 다양한 관계형성이 가능했다.

또 다른 것은 지점에서는 사무직 인원도 적고 나이가 비슷한 사람도 없어서 몰랐는데, 본사에 오니 입사 5~6년 차가 되면 승진시험이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승진이라는 건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본사에 오니 아주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시절만 해도 여직원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공공연하게 강요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회사가 생긴 지 30년이 되었지만 여성 간부는 1명도 없었다. 

그런 환경이어서 그랬는지 본사에 오고도 한 5~6년간은 승진에 대한 관심 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입사 연도가 같고 나이도 그만그만하게 비슷해서 친하게 지내던 남자 직원들이 승진 시험공부를 한다며 독서실을 가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나보다도 훨씬 대~~ 충 회사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직원들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 사람들이 시험에 합격하고 승진을 해서 간부가 되면 내가 "부장님", "차장님"하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업무적인 역량이나 여러 가지를 봐도 내가 뒤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 내가 상사로 모셔야 한다니.. 그건 못할 것 같았다. 


나의 간부 시험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도전 첫해, 나는 그 입사 연도가 같은 남직원들과 내기를 했다. 성적이 가장 잘 못 나온 사람이 나머지 사람들에게 거하게 밥을 사는 내기였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들보다 시험을 못 볼 자신이 없을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결과는 내가 꼴찌였다. 


나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딱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구나 싶었다. 

나만의 자만심에 빠져서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부터 진심으로 정말 열심히 간부시험 준비를 했다. 

큰아이가 세 살 무렵부터 공부하러 가지 말라며 대성통곡하는 아이를 뗴어놓고 독서실에 가 새벽 두 시까지 공부하기를 서너 해가 흐르고 나는 드디어 합격을 했다.

그게 벌써 15년 전 이야기다.


이제는 우리 조직에도 여성간부가 많이 생겼다. 

1급, 가장 높은 직급까지 승진한 선배도 생기고 초급간부는 여러 명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30대 여성 직원들은 고민을 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내가 간부로서 잘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말이다. 

지금 나와 함께 근무하고 있는 서른이 갓 넘은 여직원은 정말 역량이 출중하다. 조직에서 얼른 성장을 해서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정말 크다. 하지만 그 직원도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조직에서의 성장은 잠시 보류하였다. 십분 이해가 가면서도 정말 안타깝다.


내가 승진시험을 보기를 망설일 때가 있었다. 

승진하고 나면 출퇴근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는데 그때는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그때 여자 선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되고 나서 걱정해, 되지도 않고 무슨 걱정을 하니? 그렇게 시작도 안 해보면 결국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 말은 정말 우문에 현답이었다. 해보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나도 후배 여직원들에게 같은 말을 해준다. 일단 되고 나서 걱정하라고...


테슬라의 창업주 일론머스크는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고 실제로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현실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시절임에도 우리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나의 성장과 발전 중 그 어느 것을 선택할지를 저울질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하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 여성 선배님들과 이제 그 자리를 향해 가고 있는 내가 조직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올라가면 차츰차츰 조직문화가 바뀌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나이쯤 되면 내가 경험했던 이런 고민들은 없는 바로 그 세상에서 살게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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