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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티제 May 08. 202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와 함께 나의 20대가 끝났다

여러분들의 생각보다 감수성이 풍부한, ENTJ

 난 평행우주나 양자역학처럼 복잡한 마블의 세계관을 줄줄 꿰고 있는 '마블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간 마블에서 영화를 개봉할 때마다 영화관을 방문하는 꽤 충성스러운 고객이었다. 좋아하는 시리즈는 몇 번씩 반복해서 보기도 했다. 적어도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개봉한 2019년까지는 그랬다. 


 엔드게임을 보면서 우리의 토니 스타크가 마지막으로 "I am Iron man."을 외쳤을 때 눈물이 터졌고, 엔드게임을 다시 볼 때마다 그 파트에서 또 눈물이 났다. 


 마블에서 내 최애 캐릭터인 토니 스타크를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남은 히어로들이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하며 이 멋진 이야기를 이어가겠지 싶었다. 하지만 엔드게임 후로 모든 게 바뀌었다. 도대체 남아있는 주인공이 없어서 정 붙일 곳이 없다.


아이언맨...누구보다 이기적인 것 같지만 결국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블랙 위도우...평생 아픔만 간직하다가 결국 사랑하는 친구 호크 아이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근데 시체 수습도 장례식도 제대로 못하는 게 눈물 난다.)
토르. 내 최애 캐릭터였는데, bring me 따노스!! 하며 소리치던 멋진 모습을 뒤로하고 애 아버지가 된다.
캡틴 아메리카. 희생과 헌신 강조하더니 과거에서 첫사랑이랑 삼십몇 년인가 살다가 늙은 채로 나타난다.
헐크도 은퇴한다고 하고 쉬헐크가 나타난 거 같고, 블랙팬서도 죽고, 비전도 죽고, 사실상 남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왜 그런지 엔드게임 이후에 등장한 히어로 캐릭터들에게는 아직 정이 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이 캐릭터들에게 텃세를 부리고 있는 건가?)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엔드게임 이후로 쉽게 마블 영화를 보게 되지 않았다. 


 2022년에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봤는데 말 그대로 대혼돈이었다. 같은 해 디즈니 플러스로 러브 앤 썬더를 봤는데, 디즈니 플러스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Bring me 따노스!"를 외치던 토르가 왜 갑자기 애기 아버지, 그것도 자길 죽이려고 했던 애기 아버지처럼 살아야 하는 건지 심장이 답답했다.


 그러다가 그 뒤로 개봉한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 앤트맨과 와스프:퀀텀매니아는 아직 디즈니 플러스로도 보지 않았다. 마블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심장이 두근거렸던 내가 이토록 마블에 무덤덤할 줄이야.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 마블 영화를 더 보면 내가 실망하게 될까 봐 영화관에 가지 않게 되는 이상한 심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영화관에 달려가 보고 온 영화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다. 가오갤 시리즈를 워낙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엔드게임 이전에 나온 캐릭터들이 영상에서 살아 숨 쉬는 마블 영화가 얼마나 오랜만인지!


 가오갤 3은 영화관에서 본 것이 절대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한 번 더 보러 갈 의향도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가모라’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던 ‘피터 퀼’이 위기에 처한 은하계와 동료를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가디언즈 팀과 힘을 모으고, 성공하지 못할 경우 그들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미션에 나서는 이야기


 영화 내용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나누기 힘드니, 아래의 링크로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marag/223095231706


 가오갤 1,2를 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가오갤 그 특유의 유머 코드도 좋았고, 평소엔 이상하리만치 사소한 것으로 싸워대는 가오갤 멤버들이 결국 서로를 위해선 목숨까지 내놓으며 싸우는 것도 좋았다.


 영화를 보는 오랜만의 이런 느낌이 좋아서, 이런 생각을 했다.


 '마블. 다른 건 다 끝났다고 해도, 가오갤은 여전하다. 가오갤만 이 정도 느낌이면 됐다.' 

 네뷸라도 보다 보니 귀여웠고(칭찬 고픈 어린아이 같았다. 그리고 은근히 똘똘하다.), 가모라는 피터를 기억하진 못하지만 가오갤 3에서 같이 미션을 수행하면서 부쩍 가까워진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가모라와 피터가 다시 한번 뭉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생겼다. 계속 이런 느낌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멤버 구성이 좀 더 오래가길 영화 내내 바랐지만, 영화는 내 뜻대로 끝나진 않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가 될까 봐하지 않겠지만, <각자의 행복을 찾아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렇게 케미가 좋은 친구들끼리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하는 건지.

 아직 이렇게 재미있는데 좀 더 하면 안 되는 걸까.


 내 마음과는 다르게 야속하게 엔딩 크레딧이 계속 올라갔다. 서운한 마음에서인지, 아직까지 미련을 못 버린 건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내가 지금까지 봤던 마블의 영화들이 쭉 떠올랐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개봉했던 아이언맨. 그땐 아이언맨이 뭔지도 몰랐지만 학원 애들 몇몇이 아이언맨을 흉내 냈던 것 같다. 대학생일 때 처음으로 개봉했던 어벤져스. 대학을 다닐 때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그 영화를 봤는데,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내려나. 다른 대학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지금은 이미 퇴사한 내 첫회사의 동기들과 마블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 다음날 출근해야 하면서도 심야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다 끝날 때쯤에는 내 20대가 다 끝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20대는 진작에 끝났지만, 그냥 진짜로 끝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가끔은 뭔가 내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았는데, 가끔은 부모님에게 투정도 부리고 용돈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그냥 그 시기가 다 끝나버린 기분이었다.


 2010~11년쯤 길고 긴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개봉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2001년 처음 개봉했던 해리포터 시리즈.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 시리즈를 보면서 성인이 되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해리포터 시리즈가 끝나면서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솔직히 20살이 성인이라고 해도, 그전이랑 뭐 그렇게 크게 달라질 것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2012년부터 나는 취업 준비를 시작해야 했고, 진짜 밥 벌어먹고살아야 하는 어른에 입문했다. 

 

 근데 이번엔 그때보다도 뭔가 더 커다란 것이 끝나는 느낌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끝을 알고 있었기에 은연 중 그 끝을 함께 준비해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블은 이렇게 내 곁에서 떠날 줄은, 그리고 문득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이 들었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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