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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10. 2023

주인 없는 편지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에 군대 간 사촌 오빠가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 후 바로 입대를 한다며 스님처럼 머리를 빡빡 밀고 온 사촌 오빠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요. 북한에서는 남자들이 고등학교를 졸업 후 군대 가는 것이 너무 당연하고 남자라면 꼭 가야하는 필수 과정이었어요. 군대 가서 당원이 되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기에 남자라면 누구나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촌오빠도 그런 이유로 군입대를 할 수밖에 없었죠. 오빠는 평소 웃음이 많고 때로는 부족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오빠는 평소 전자제품을 만지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한 번은 큰엄마 집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오빠가 집에서 무언가 계속 뚝딱거리며 만들고 있으니 큰아버지가 소란스럽다며 당장 다 집어치우라고 했죠. 큰아버지의 꾸지람에도 오빠는 끝내 스피커 하나를 만들었어요. 우드 소재로 만든 스피커였는데 모양만 좀 투박할 뿐 사용하는 데는 전혀 문제 없었어요. 심지어 소리도 너무 잘 울렸거든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여기 인터넷에서 파는 우드 스피커와 비슷하다고 해도 될 정도였어요. 어쨌든 큰아버지는 그 스피커도 맘에 들지 않는다며 내다 버리라고 했지만, 오빠는 기어이 집안에 들여서 사용했어요.

그로부터 얼마 후 오빠가 군입대를 하던 날 온 가족이 함께 오빠를 배웅해주러 갔어요. 북한은 군 복무 기간이 10년이기 때문에 입대할 때를 제외하고 중간에 면회를 가지 않으면 제대할 때까지 볼 수 없기에 입대하는 날만큼은 온 가족이 나와서 배웅해줘요. 입대하는 날 군부대 앞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어요.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울음바다가 되는 날이기도 했어요. 그 와중에 울지 않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는데 바로 큰아버지였어요. 평소에도 말없이 조용한 분이라 그날도 오빠에게 몸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말 외에는 특별히 다른 말을 했던 기억은 없어요. 오빠의 입대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큰아버지는 한동안 오빠가 만들어 놓은 스피커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셨어요. 아들의 재능을 너무 나무라기만 한 것 같은 미안함이 들었었나 봐요. 항상 허허 웃으며 조금은 모자라 보여도 늘 밝은 모습의 아들이었는데 갑자기 10년 동안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셨나 봐요. 어쨌든 저도 그때 오빠를 본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몇 년 전 저희 어머니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인데 군대 간 사촌오빠가 저에게 편지를 보내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곳에 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말이죠. 그 말을 듣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렸는지 몰라요. 큰엄마 집에서 지낼 당시 큰엄마, 사촌 언니의 눈치를 보며 살던 저를 참 많이 보살펴주던 오빠였는데 군대 가서도 잊지 않고 저에게 편지를 보내왔다고 하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었어요. 이젠 오빠를 볼 수도, 안부도 물을 수도 없는 이 현실이 참 안타깝고 슬펐어요. 오빠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저를 생각하며 편지 썼을텐데 말이죠. 항상 허허 웃으며 긍정적인 우리 오빠. 그곳에서 건강하게 잘 살아주길 바랄 뿐.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보낸 사람은 있지만, 받는 사람은 없는 주인 없는 편지가 되어버린 오빠의 편지. 이럴 때 소식을 전해주는 비둘기가 있으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멀리서도 잊지 않고 동생의 안부를 물어 준 오빠의 안부가 몹시 궁금하지만, 언젠가 꼭 만날 날을 희망하며 그리운 마음 고이 간직하려 해요. 이젠 전역해서 어엿한 청년, 아니 어쩌면 누군가의 아빠 남편이 돼 있을 우리 오빠. 부디 그때의 밝은 모습 그대로 건강하게만 지내주길. 잊고 지내던 가족의 사랑을 알려줘서 고마운 사람. 비록 오빠의 편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편지를 써줬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저에겐 더 없이 따뜻한 순간이었어요. 바쁜 현실에서 잊고 지냈던 가족의 소중함 가족의 힘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가족의 안부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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