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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Jun 17. 2023

마라맛 중고차 신고식

차에 대한 구멍(opening)- 분명 차는 멀쩡했다고요!

요즘 내가 가장 자주 드나드는 사이트는 쿠팡도 네이버도 아닌 '중고차 매매 사이트'였다. 결혼 준비를 하다 보니 차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우리 예산으로는 중고차를 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떤 차를 살지, 어느 정도의 가격대가 좋을지는 모두 남편(당시 예비 신랑)에게 맡기기로 했다. 다만 내 의견은 '경차를 사자'라는 게 전부였다. 그때부터 남편은 중고차 사이트를 매일같이 들락거리며 괜찮은 매물이 나오기만을 눈이 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정부에 입고된 600만 원 대의 스파크를 발견했다. 무사고 차량인 데다 주행거리가 5만 km여서 우리가 타기 딱 적당해 보였다.


 아침이 밝자마자, 아는 동생의 차를 얻어 타고 의정부로 출발했다. 파란 하늘 아래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그야말로 설렘 그 자체였. 오늘 차를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구름 방석에라도 앉은 듯 마음이 들떠있었다.


다행히 차는 중고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깔끔했다. 자동차 기계를 전공한 동생이 매의 눈으로 꼼꼼히 살펴본 뒤 우리에게 OK사인을 보내줬다.


"이 차, 저희가 살게요!" 뚜벅이 생활 27년 차. 드디어 나에게도 차가 생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 차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차는 매우 낯선 물건이었다. 차 값을 지불하는 동안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엄청 신기해하고 있었다. '내가 차를 사다니... 와, 나 진짜 어른 같잖아?'


근처에서 점심을 먹은 뒤 동생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올 때는 차가 한대였지만 이젠 두대가 됐으니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직접 운전해서 가야 했다. 한 가지 문제는 우리가 운전을 해본 적이 없단 거였다. 남편은 21살에 면허를 딴 뒤로 6년간 장롱면허였고 나는 면허 딴지 2주밖에 안된 햇병아리였다. 이렇게 본격적인 도로주행은, 게다가 이런 장거리(?) 운전은 우리 둘 다 처음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도, 조수석에 앉은 나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여보... 이게 내 생애 마지막 장면은 아니겠지? 운전 잘 부탁해. 제발....


의정부에서 출발할 때가 오후 2시쯤이었으니 3시 정도면 집(광명)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시동을 켜는 순간부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전방을 뚫어져라 주시하며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다다랐고, 벌써 절반 가까이 왔다는 생각에 서서히 안도의 미소가 번져갔다.


그러나 바로 그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내비게이션이 '띠링띠링'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분 동안이나 현 위치를 찾지 못다. 띠링띠링. 띠링띠링. 띠링띠링. 라는 길 안내는 안 하고 띠링띠링 소리만 내다가 결국 먹통이 돼버리고 말았다.


"어디로 가야 해?"

"나도 몰라. 일단 직진하고 있어 봐."


나는 시끄러운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끈 뒤, 허둥지둥 티맵 앱검색했다. 설치 버튼을 바로 눌렀지만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느려서 다운로드하는 데 몇 분이나 걸렸다. 운전 중인 남편은 "아직도 멀었어?" "얼마나 남았어?" 라며 나를 계속 재촉했다.


드디어 다운로드 완료됐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티맵도 곧바로 먹통이 됐다. 두 발을 동동 구르며 카카오 내비도 깔아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핸드폰을 때려보기도 하고, 전원을 껐다 켜보기도 했다. 차 안에 GPS가 안 터지나 싶어 창 밖으로 핸드폰을 내밀어도 봤다. 아니면 내 핸드폰이 문제인가? 남편 핸드폰으로 다시 티맵과 카카오내비를 깔았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실패, 실패.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우회전? 좌회전? 직진? 어떻게? 어디로 가?"

"일단 직진할까? 아니, 우회전이 나은가? 그냥 직진하자!"

그리고 몇 분 뒤...   

"어떡해. 아까 다른 데로 갔어야 되나 봐. 여기 생전 처음 와보는 데야. 미치겠네 진짜."


그때 눈앞에 비행기가 커다랗게 지나가는 게 보였다. 잠깐. 비행기가 왜 저렇게 커? 잠시 후 나타난 표지판에는 '김. 포. 공. 항.'이라고 쓰여있었다(공항 바로 근처였다). 오 마이 갓. 여기가 아니잖아!! 의정부에서 광명으로 가려면 계속 아로 내려왔어야 하는데 우리는 다시 반대편 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집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차를 돌려야 했다. 그러나 길 안내를 맡은 나는 길치이자 방향치였고, 눈앞엔 사방이 다 갈림길이었다. 의지할 건 도로표지판 밖에 없었다. 거의 3분에 한 번씩 좌회전/우회전/직진 중 하나를 찍어야만 했고, 신호도 보고 차선도 변경해야 했다. 우리가 우왕좌왕하니, 주변 차들이 빵빵!! 하고 경적을 울렸다. 우린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었다. 결과는 그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12월이라 해가 짧아서 금세 어둑어둑해졌다. 조금 뒤엔 표지판 글씨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깜깜해져 버렸다. 다행히 어찌어찌 경기도 시흥까지 오긴 했는데 주변은 온통 논밭 천지였다. 런 시골 풍경은 도무지 우리 집이 나올만한 배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늪에라도 빠진 듯, 빠져나가려 하면 할수록 더 깊숙한 시골길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오늘 안에 집에 도착할 수 있긴 할까?' 이미 정신적 에너지는 고갈됐고, 뱃속에서는 밥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우리는 가로등 밑에 차를 세우고 긴급 토론에 들어갔다. 나는 진보, 남편은 보수 쪽이었다.


"택시 타고 집에 가자. 더 이상은 못 가겠어. 이러다 사고라도 날까 봐 무서워."

"오늘 처음 산 차를 어떻게 버리고 가?"

"얘가 발이 달린 것도 아니잖아. 전화번호 적어놓고 위 기억해 뒀다가 내일 찾으러 오면 되지."

"혹시라도 여길 못 찾으면 어떡해. 나는 차만 두고는 못 가겠어. 조금만 더 가보자."


우리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그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비게이션을 켰는데... 어라? 갑자기 되네? 우릴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선 이제 와서 해맑은 목소리로 길을 안내해 준다. 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어쨌거나 우리는 5시간 만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저녁 7시가 넘어있었다). 살아서 오긴 했지만 절대 '멀쩡하게'는 아니었다. 녹초가 된 나는 침대 위에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밤새 운전하는 꿈을 꿨다. 이번엔 한 단계 레벨 업해서, 브레이크가 고장 나 있었다. 무언가의 주인이 된다는 건 예상보다 훨씬 험난한 길이었다.


(P.S. 그날 일은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한 번쯤 시동을 껐다 켰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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