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현실의 괴리, 그 간극 속에서 1 - 피의자구속에 대하여
조금 지난 이야기이지만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사건이 있었다.
2020년 5월에 발생한 '서울역 폭행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광대뼈가 골절되는 등의 폭행을 당했지만 용의자를 검거하지 못하였고, 이에 SNS에 글을 올리고 언론에도 제보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철도특별사법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여 검거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그런데, 영장이 발부될 것이라는 여론과는 달리 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왜 이 사건의 담당 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했을까?
I. 판사는 왜 구속영장을 기각할까?
우선,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상 강제수사 중 하나인 피의자 구속에 대하여 알아보자.
피의자 구속이란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구인 및 구금하는 것을 말하는데,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구속하기 위하여는 구속영장이 필요하다.
구속영장은 영장이 필요한 주체가 경찰인지 검찰인지에 따라 청구 방식에 아주 조금 차이가 있다.
경찰이 피의자를 구속하고자 하는 경우, 경찰이 검사에게 영장발부를 신청하면 검사가 관할지방법원판사에게 청구하여 법관이 발부한다. (형사소송법 제201조 제1항 후단)
한편, 검찰이 피의자를 구속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경찰의 신청 없이 검사가 독립적으로 관할지방법원판사에게 청구하여 법관이 발부한다. (형사소송법 제201조 제1항 전단)
즉, 피의자를 구속하기 위해서는 구속하고 하는 기관이 어디인지와는 관계없이 반드시 법관의 판단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것일까?
좌: 경찰이 검사에게 구속영장 발부를 신청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서식 (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별지 제17호서식)
우: 검사가 경찰의 신청을 받아 법원에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서식 (검찰사건사무규칙 별지 제68호의2 서식)
II. 피의자 구속의 요건
피의자 구속 요건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 제209조와 제70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 존재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
여기에서 상당한 이유란 유죄판결을 받을 만한 고도의 개연성을 뜻한다.
증거인멸 염려에 대한 세부적인 판단기준은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 제48조에,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에 대한 판단기준은 동예규 제49조에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위의 요건 외에도,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요건을 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무고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구속이라는 제도는 수사와 공판을 진행하고 형벌의 집행을 위해 필요하지만, 구속된 사람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한다는 문제도 있다.
따라서 무고한 사람을 구속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자유는 부당하게 억압당하게 된다.
헌법 제27조 제4항에서는 무죄추정원칙을 천명하면서,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사람을 벌하여서는 안된다'는 소극적 실체진실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이념 하에 무고한 사람의 자유 침해는 현행법상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수사기관은 피의자에 대하여 체포·구속을 비롯한 강제수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사기관과 피의자는 수직적 관계에 있다.
반면, 공판단계에서는 검사와 피고인(검사가 공소를 제기하면 피의자는 피고인으로 신분이 전환되기 때문에 공판단계에서는 피고인이라 칭한다)은 동등한 관계에 있게 된다.
수사단계에서부터 피의자를 구속하게 된다면 본인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기 어려워지게 되고 이는 곧 무기대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구속은 피의자에게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보장하기 위해 구속을 제한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세계인권선언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라고 명시되어있고,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모든 인간'과 '모든 국민'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범죄를 저지른 자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모든 인간' 또는 '모든 국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구속제도는 대상을 분문하고 엄격한 요건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피의자를 구속할 때에는 반드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거치도록 되어있는 것과 최근 법무부에서 보석제도를 확대하려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법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한다.
법은 범죄를 저지른 자라고 하더라도 인권을 보장해주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은 범죄자에게 인권은 사치이며 피해자의 인권을 더 보호하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서 구속영장청구가 기각되면 판사와 법원은 많은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판사는 법에 따라서 판단을 하는 사람이지 여론에 따라서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다.
생각건대 담당 판사가 위의 구속요건을 검토하여 법에 합당하게 결론을 내렸으면 판사의 역할은 다 한 것이다.
오히려 집중을 받고 있는 사건이라고 하여 무조건적으로 영장을 발부하거나 기각한다면, 이는 초법적인 판단이고 또한 법원이 제 할 일을 못하는 것이다.
III. 위법한 수사와 구속영장의 관계
지금까지 구속의 요건과 그러한 요건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다시 '서울역 폭행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이 사건 피의자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지 판단해보면, 피해자의 진술과 CCTV 영상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음은 분명하다.
반면, 구속의 두 번째 요건인 주거불분명, 증거인멸염려, 도망 또는 도망염려가 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이 사건의 영장전담 판사는 아래와 같은 판단을 내린다.
피의자의 범죄 혐의가 상당하고 정신건강이 좋지 않던 점을 고려해도 피의자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한 상활도 아니었다.
즉, 영장전담 판사는 구속영장 발부의 두 번째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기각사유에서 구속 요건이 아닌 다른 부분을 강조한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원과 주거지 및 휴대전화 번호 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피의자가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있어 증거를 인멸할 상황도 아니었다.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긴급체포는 위법한 체포에 해당한다. 이에 기초한 이 사건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여기에서 위법한 긴급체포를 했기 때문에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다고 언급되어있다.
긴급체포란 수사기관이 긴급한 경우에 중대한 범죄의 피의자를 체포영장 없이 체포하는 것을 말한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3)
체포는 구속과 마찬가지로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여 체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적으로 현행범체포와 긴급체포를 인정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긴급체포를 하기 위해서는 긴급성, 중대성, 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자세한 요건은 아래와 같다.
긴급성 : 긴급을 요하여 판사의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어야 함.
중대성 : 피의자가 사형, 무기 또는 장기 3년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함.
필요성 :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 또는 도망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어야 함.
그리고 이러한 요건은 체포당시의 상황을 기초로 판단한다.
이렇게 엄격한 요건을 두는 이유는, 체포는 영장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예외이기 때문이다.
이런 요건을 둠으로써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를 방지할 수 있다.
이러한 요건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허위신고하여 지금 당장 경찰이 우리 집에 들어와 나를 체포한다고 하더라고 위법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의 인권과 자유 보장을 위하여 긴급체포에 이러한 요건을 두는 것이다.
'서울역 폭행 사건'으로 다시 돌아와 보면, 피의자의 행위는 피해자를 가격하여 광대뼈를 골절시켰으므로 상해에 해당한다.
형법 제257조 제1항에서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장기 3년이상의 징역에 해당하여 긴급체포의 요건 중 중대성은 충족한다.
문제는 철도특별사법경찰의 체포 과정이다.
긴급체포의 요건에 해당하는지는 체포당시 상황을 기초로 판단한다고 언급하였는데, 체포 당시 피의자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으므로, 긴급성과 필요성이 없다고 봄이 상당하여 긴급체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
따라서, 철도특별사법경찰의 체포는 영장이 필요한 체포였음에도 영장 없이 체포하였으므로 위법한 수사가 된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위법하게 수사하였음이 명백하므로, 법원은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도 법과 현실의 간극이 발생한다.
수사과정에서 위법이 있더라도 영장을 발부했어야 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인 것 같아 보인다.
형사소송법에서는 수사기관에 대한 위법행위를 다방면에서 제한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2007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이와 같은 규정이 신설되었는데, 이전까지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 하더라도 일부 사용할 수 있었다.
위법수집증거에 대하서 이러한 규정을 신설한 이유는 수사기관의 위법수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심지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를 통해 수집한 2차 증거 또한 원칙적으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증거 수집 과정이 위법하면 그 증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위법수사에 대한 유인을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에서 철도특별사법경찰의 긴급체포 행위는 위법하였고, 위법한 수사에 기초하여 구속영장을 신청하였기 때문에 법원은 영장을 발부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IV. 결어
검찰청의 구속영장 발부 현황을 보면, 2019년 구속영장 발부율은 81%, 기각률은 19%이다.
그리고 최근 마약을 한 상태로 7중 추돌 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이 피의자는 범죄 혐의가 상당하고 블랙박스 등의 증거를 인멸하였기에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를 구속하는 것은 엄격한 법률의 기준에 의하여 행해진다.
많은 사람들은 피의자를 구속하지 않는 것을 정의롭지 않다고 말하며, 영장전담판사와 법원을 비난한다.
'서울역 폭행 사건'처럼 판사가 법대로 판단하였음에도 그것은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대로 구속여부를 결정한 판사는 응당 본인의 일을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죄를 범한 사람은 결국 법의 심판을 받는다.
비록 '서울역 폭행 사건'의 피의자가 구속되지는 않았더라도, 그 사람이 행한 행위에 대하여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구속되는지 아닌지 여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을 받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