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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Oct 08. 2021

처음 만나는 '검은 얼굴'의 성모 마리아

크리스 오필리



  제목을 듣기 전까지 누구도 이 작품 속 여인이 성모 마리아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성모 마리아는 새하얗고 정돈된 얼굴에 고풍스러운 옷을 걸치고 행동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하는 차분한 여인이다. 역사 속에서 성모 마리아는 수없이 많은 화가에 의해 그려졌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모두 기품 있고 고상한 모습이었다.



Raphael,  ⒸWikiArt



  검은 피부, 크고 또렷하게 뜬 눈, 넙데데한 코와 두꺼운 입술은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성모의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몸은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조각 난 평면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이 성모를 묘사한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크리스 오필리, <성모마리아> ⒸChristies



  이 작품의 작가인 크리스 오필리는 영국 태생의 작가이나, 미술학교를 다니던 중 짐바브웨를 여행하게 된다. 아프리카계 흑인인 오필리는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그곳에서 발견하고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그림을 통해 내고자 한다. 그가 짐바브웨에서 받은 영감을 가감 없이 표현해낸 작품이 바로 이 1996년 작 <성모 마리아>이다. 그렇다면 오필리는 왜 이렇게도 독특한 성모를 그려야만 했을까?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공식처럼 확립된 성모 마리아 상을 버리고 당당하고 자유스러운 흑인의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를 화폭에 담음으로써 기존의 백인 중심주의적 사고관에 도전한 것이다.



크리스 오필리의 작품에 사용된 코끼리 배설물 Ⓒtateuk



  그의 작품에서 특별한 것은 비단 성모의 피부색과 얼굴만이 아니다. 그는 코끼리 배설물을 작품에 바르고, 여성의 음부 사진을 잘라 배경에 콜라주 하였다. 예상하겠지만,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성모 마리아 곁에 추함의 대명사인 배설물과 성기 사진을 배치하는 작가의 선택은 당시 신성 모독이라며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크리스 오필리의 성모마리아 Detail ⒸLAtimes



  그러나 크리스 오필리가 이러한 재료를 사용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아프리카 문화권에서 코끼리 배설물은 자연의 존속을 가능케하는 근원으로 이해된다. 동시에 여성의 성기 역시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신성한 존재이다. 우리의 시선, 그리고 서양의 시선에서 가장 추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아프리카계 문화권에서는 가장 성스러운 것인 셈이다. 그러니 오필리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성모 마리아를 묘사하는 작품에 초대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는 기존 성모 마리아가 지니고 있던 신성성과 가치를 전혀 조롱하지 않으면서, 백인 성모 마리아가 가졌던 영향력의 한계를 확장한다.



크리스 오필리의 모습 Ⓒthenewyorker



  크리스 오필리의 성모 역시도 기독교적으로는 예수의, 나아가서는 인류의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성스러운 그녀의 모습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저는 흑인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저를 설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죠. 저는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흑인 성모에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세상에 맞섰다. 그는 왜 성모는 백인이어야만 하는가에 반문하며 가장 토속적인 오브제로 아프리카인들의 존엄성을 드러냈다.   





스튜디오는 공장이 아니라 실험실입니다.
전시회는 실험의 결과이지만, 그 과정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전시가 곧 결론은 아닙니다.




  크리스 오필리는 작품 제작의 여정을 실험에 비유했다. 결론을 정해두고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과정이 아닌 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반복하는 것을 예술로 여긴 것이다. 오랜 시도와 도전 끝에 추(醜)로부터 성(聖)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신성모독의 오명을 벗고 흑인의 존재와 성스러움을 증명하는 역할을 해내게 되었다.






글 | 이서연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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