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고무 옷과 호스. 마약. 토끼. 관장 봉투. 채찍. 꽃과 식물. 동생. 연인. 자신.
메이플소프가 렌즈에 담은 피사체들이다. 그는 외설로 알려진 작가이나, 외설이 전부는 아니다.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했고 찰나에 깃든 사랑과 열정, 선과 악을 찍었다. 끝이 있는 생명을 애도하는 작품 세계를 고수하다 40대에 에이즈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발칙한 화상은 아직까지 우리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그곳에 무엇이 자리하는지 묻는다.
사진과 섹슈얼리티는 사회로부터 탄압받은 역사를 공유한다. 카메라의 출범 이후 한동안 사진은 예술 대우를 받지 못했다. 회화와는 달리 실물을 그대로 찍어내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는 반발 때문이었다. 기성의 정상성을 숭배하는 사회의 경향은 다른 곳에서도 팽배하다.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는 동성애가 사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새도마조히즘이 이상 성욕으로 여겨져 왔다.
* 새도마조히즘(sadomasochism): 성적 피가학증
그러나 기성의 정상성은 새로운 것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흘러 사진은 예술로 자리 잡는다. 과도기의 미국 뉴욕은 메이플소프가 다양한 예술 형태를 경험한 배경이 된다. 예술 형태뿐 아니라 삶의 형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친구들이 즐긴 거칠고 대범한 생활은 일상의 풍경으로 스미곤 했다.
“사진이란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사건이 만나서 생긴 결과일 뿐인 것이 아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도 사건인데, 그것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일으키는 사건인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간섭하거나 침해할 수 있으며, 혹은 무시할 수도 있는 그런 권리를 갖고 말이다.” —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메이플소프는 사진과 섹슈얼리티 양쪽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커리어에 오점을 남기리란 동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기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사진을 찍고, 손바닥만 한 폴라로이드 필름에 낙서와 가위질을 했다. 그는 모두가 애써 외면하는 섹슈얼리티를 새로운 차원에서 보여주고자 했다. 자주 방문하던 게이 바와 자신의 작업실의 모습을 가장 날것의 사진에 담아서.
동성애자였으며 가학적인 성행위를 지향했던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과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자신과 동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음으로써 대중의 경악을 자아냈다. 외설을 판다는 원성은 하늘을 찔렀으며 그의 유명세도 덩달아 퍼져나갔다. 금단의 사진에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메이플소프가 불을 지핀 예술 대 외설의 논란은 역설적으로 추를 좇는 사람들의 본심을 드러냈다. 그의 작품은 관객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당신은 보기 싫다고 말하지만 실은 한 번 더 돌아보고 싶은 것 아니냐고. 경멸하는 눈빛 뒤에 욕망이 불타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사람들은 화를 내겠지만, 출처 모를 감정의 본질을 한 번쯤 고민할 수도 있다.
외설적인 예술은 아주 오래전에 꼬인 실을 풀어낼 단서를 준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경향이 고찰할 만하다면 추함을 모욕하는 경향 또한 살펴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피사체는 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까, 어쩌면 우리는 함부로 타자와 자신을 미워하는 건 아닐까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 안의 악마를 보고 싶어, 그게 날 흥분시켜.” — 로버트 메이플소프
천년 전의 예술 작품들 다수는 종교적인 개념을 형상화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성서 속 장면들과 관련된 교리를 신도들에게 전달하고자 시각적인 요소가 동원된 것이다. 그런 작품들은 탄생과 더불어 해석의 방향이 하나로 정해졌다. 도덕관념이 우월하다고 여겨지던 성직자들이 선악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그렇지 못한 보통의 사람들은 성직자들의 판단을 답습하곤 했다
하지만 20세기는 다르다. 작가의 의도만큼이나 관객의 감상이 무게를 갖는 시대다. 같은 대상을 두고 상이한 의도를 투영하는 작가들이 넘친다. 무엇을 다룰지의 전통은 희미해지고 이전에 없었던 시도가 각광받는다. 절대선과 절대악이 대립할 때보다 해석의 여지가 폭넓을 때 관객은 즐거워한다. 과거보다 복잡해진 세상에서 우리가 입체적으로 변해온 데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메이플소프는 비록 신앙심이 투철하진 않았으나 가톨릭 배경에서 성장했다. 따라서 종교적인 이미지로부터 때때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십자가 모양으로 사진을 배치하기도 하고, 고무와 가죽으로 된 도구를 신체에 연결하기도 했다. 누구나 은밀한 생활을 즐긴다고 보았던 메이플소프는 자신을 불경스럽게 여기는 이들로부터 포용되길 원했다.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선악을 고찰했으며, 동시대가 사유에 함께하길 희망했다.
메이플소프의 삶은 환각제와 알코올, 성적 행위로 점철된 채였다. 그럼에도 때로 고해성사를 하며 작품이 관객들에게 남길 영향을 이야기했다. 그는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하는 일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지인들은 그를 두고 매력적인 천재라고도, 명성을 위해 남들을 이용하는 속물이라고도 일컬었다. 매일같이 그는 이성과 몽상 사이, 선과 악의 사이를 오갔다.
“로버트의 어떤 사진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꽃 사진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 메이플소프의 아버지
아름다운 자태의 꽃과 어딘가 섬뜩한 해골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예술가들로부터 덧없는 삶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활용되어 온 점이다. 아무리 생기가 흐르던 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든다. 어린아이는 자라 노인이 되고 요람에서 무덤으로 돌아간다. 가장 아름다웠던 것이 흉해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체험한다.
바니타스라는 사조는 모든 것이 한시적이라고 보았다. 생명은 언젠가 숨을 잃기 마련이고, 삶은 죽음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바니타스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말한다.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비로소 삶을 진정으로 찬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이플소프는 멈춘 꽃을 찍었다. 정지한 화상 위에 꽃의 생명력이 포착되었다.
* 바니타스: 삶의 덧없음을 주제로 하는 정물화의 한 장르
메이플소프가 줄곧 찍어온 것은 다음과 같았다.
정물 (Still life).
그리고 아직, 생을 말하기 (Still, life).
말년의 메이플소프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 그는 평생 모은 부와 명예를 소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됨에 통탄했다. 허나 내심 알고 있었을 테다. 생에 걸쳐 찰나의 가치를 추구해 온 그라면, 끝이 있는 삶이기에 빛이 났다는 사실을.
글 | 이예림
편집 | 김희은
아래 월간 도슨트 인스타 계정을 통해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https://instagram.com/monthly_docent?igshid=1c09qpgf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