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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Oct 16. 2021

아름다움이 부여한 권력과 자유에 대하여

뮤지컬 '엘리자벳'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운 황후’, 엘리자벳. 뮤지컬 <엘리자벳>은 이 한 마디로 소개되고는 한다. 하지만 과연 이 한 마디로 엘리자벳이라는 사람의 생애를 완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움. 이 찬란한 수식어는 마치 무거운 추처럼, 엘리자벳의 삶을 그늘 저 아래로 끌어내린다.


이코노믹매거진



  뮤지컬 <엘리자벳>의 주인공, 엘리자벳. 어린 엘리자벳은 아빠처럼 자유롭게 꿈꾸고 말을 타며 돌아다니기를 바라는 소녀이다. 공부보다는 외줄타기를 좋아하고, 오빠들처럼 풀밭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하던 엘리자벳.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면서 그녀의 삶은 완전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엘리자벳은 황제와의 사랑 하나만을 믿고 황궁에 들어선다. 그러나 황후의 삶은 그녀가 상상했던 자유로운 삶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황제의 어머니 소피 대공비는 엘리자벳을 황실의 예법에 따라 철저하게 통제하고자 하고, 엘리자벳은 이전처럼 말을 탈 수도, 풀밭을 달릴 수도, 자유롭게 웃을 수조차도 없는 삶에 절망한다. 어머니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는 무력한 황제는 그저 엘리자벳이 이 모든 상황을 감내하기만을 바란다. 결국 아무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엘리자벳은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를 찾고자 한다.


EMK뮤지컬컴퍼니





“새장 속 새처럼 살아갈 수는 없어. 난 이제 내 삶을 원하는 대로 살래.”

- <나는 나만의 것> 中


 


  자신의 삶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외치며 자유를 노래하는 엘리자벳. 그러나 엘리자벳이 자신의 힘만으로 자유를 되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엘리자벳은 자신이 낳은 아이들마저 소피 대공비에게 빼앗기고, 요제프 황제는 그런 엘리자벳에게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며 그녀를 좌절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자벳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 계기가 찾아온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헝가리의 독립 요구와 함께 점점 복잡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요제프 황제는 엘리자벳의 아름다움이 자신의 힘이 될 것이라 말하며 함께 그녀에게 함께 헝가리에 가주기를 요청한다. 엘리자벳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아이들의 양육권을 요구하고, 요제프 황제는 결국 엘리자벳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엘리자벳은 자신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아름다움과 요제프 황제의 사랑을 이용해 자유를 얻어낸다.


 

EMK뮤지컬컴퍼니

 


  엘리자벳은 더 이상 새장 속에 갇혀있는 새가 아니다. 엘리자벳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다. 이렇듯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녀가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아름다움의 그늘 아래로 끌어내린다.


  엘리자벳의 삶, 그리고 엘리자벳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매혹적인 상품이 되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사람들은 황후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엘리자벳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굶어죽어가는 민중들은 보지 않은 채 매일 우유로 세수를 하고, 어린 송아지 고기로 마사지를 한다. 그렇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무기로 점차 권력을 키워나간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소피 대공비는 엘리자벳을 견제하기 위해 계략을 꾸미고, 요제프 황제를 엘리자벳에서 떨어뜨려 놓기 위해 그녀와 닮은 여자를 그의 침실로 보낸다. 하지만 엘리자벳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깊은 상처를 입은 엘리자벳은 기나긴 방랑을 시작하게 된다.


 

EMK뮤지컬컴퍼니


 

  엘리자벳은 자유를 갈망하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랑한다. 하지만 오랜 방랑을 통해서도 엘리자벳은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매 순간마다 아름다움의 강박에 사로잡힌다. 엘리자벳은 아들의 부고 소식을 듣고 나서야 겨우 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엘리자벳이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마저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상품이 될 뿐이다. 엘리자벳은 궁으로 돌아와달라는 요제프 황제의 간청을 거부하고 궁을 떠난다. 이후 상복을 입은 채 계속 방황하던 엘리자벳은 한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순간에야 마침내 자유를 찾게 된다.


  누군가는 엘리자벳이 아름다움에 집착하다 모든 것을 잃은 황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리자벳에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는 그녀의 아름다움뿐이었다. 엘리자벳은 일평생 자유를 갈망했고,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기를 원했다. 아름다움은 그녀에게 자유를 부여한 듯 보였으나, 결국 그녀를 끌어내리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


 

서울경제



  엘리자벳의 넘버 키치에서는, 엘리자벳을 보며 ‘백 년이 넘도록 아름다움과 화려함에 가려진’ 여자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뮤지컬을 보며 황후 엘리자벳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녀가 그 아름다움을 갈구해야 했던 이유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녀에게 부여된 압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부여한 자유와 권력은 진정으로 그녀의 것이었을까. 엘리자벳이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운 황후’로 불리는 한, 그녀는 영원히 아름다움과 화려함에 가려진 인물로 남을 것이다.






글 | 김채원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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