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는 여정, 개와 인간이 나누는 교감을 위해
훈련사는 세상에서 타 생명(개)과의 교감을 가장 강렬하게 경험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개를 훈련하며, 특히 자신의 반려견과 가장 깊은 감정적인 유대(신뢰, 용맹함, 통제된 공격성과 열정, 극한의 집중과 차분함 등)를 나누길 희망한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과 감정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이보다 높은 차원의 훈련 레벨을 지향하며 평생을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며 발전하고 꿈꾸고 매일, 매 순간, 매초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훈련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날에는 삶이 무척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해 울적함을 겪기도 한다. 다시 정석대로 반복해 연구하고 나의 강아지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훈련하면 되는 것과는 별개로, 순간 무수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훈련은 사실 '나'라는 알을 깨고 매번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훈련을 하다 보면 계속해서 다양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내가 입양한 강아지의 타고난 성향과 에너지가 예민하거나 의욕 자체가 약할 수도 있고, 또 나라는 인간의 성격과 에너지가 자신의 개와 잘 맞지 않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것이 핸들링과 실력 차이라는 주장을 어느 정도 전제로 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반대로 어느 날은 내 컨디션과 마음은 좋지만, 내 개가 정신과 컨디션이 좋지 않아 훈련 프로그램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훈련의 기술 중 일상 및 평소의 관리가 중요한 영역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별안간, 어떠한 진리를 마주한 듯이 훈련 도중 정수의 깨닫침을 받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나도 내 강아지도 함께 발전하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것 같은 따스한 빛줄기 속에 머무르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훈련을 사랑하는가이다. 내가 삶을 통해 평생을 원해왔고, 여전히 원하고 있는 것은 바로 현재를 사는 것이었다.
매 순간 기쁨과 사랑과 의욕을 느끼고, 언제나 고양된 기분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을 항상 느낄 수만 있다면,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순간의 경험에서 늘 짜릿함을 체험할 수 있다면 그 내면은 무척 아름다울 것이다. 반드시 그렇다.
열려 있는 상태로 열의와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러다 마침 어느 날 현재를 사는 동물인 개를 만났고, 난 강아지 훈련을 통해 해답을 찾게 되었다.
삶을 의미 있고, 매 순간을 강렬하게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훈련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가치인 것이다.
어느 시점이 되면 인간은 자신이 삶에서 경험하고 쌓아온 세월을 통해 나름의 관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는 그것을 삶에 굴복한다는 뜻으로 여겨왔다.
맞는 이야기이다.
내 삶 역시 이제는 변화할 날들보다 지혜를 통해 나머지를 대응하며 살아갈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성이 그렇듯, 안주하는 것은 점차 고이고 비틀리며 나약해지고, 오래되어 녹슬기 마련이다. 그래서 항상 좋은 습관이 필요하고, 이를 매일매일 갈고닦을 나만의 수련과 수련법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훈련인 것이다. 내 강아지의 훈련 상태를 거울로 삼아 스스로를 비추어보고,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꾸준히 성찰하고 가꾼다. 그렇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그 강렬함 속에서 삶이라는 존재를 분명히 자각하고 사랑을 믿으며, 누군가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을 익힌다.
그렇게 하루를 꿈꾸고 지키며 살아간다.
나만의 결과 길을 찾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