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살이 Nov 06. 2024

[결혼 이야기] 1부. 싸움

1. 안 싸운 남자와 결혼

  남편과 나는 겨울에 만나 봄에 결혼했다. 우리는 여섯 계절을 함께 하는 동안, 딱 한 번 싸웠다. 누군가는 연인끼리 이렇게까지 안 싸우는 건 거짓말이라고 우리를 의심했다. 하지만 진짜다. 내가 직장 동료들과 새벽 늦게까지 술 마시고 노느라 정신이 팔려 연락을 못했던 그날, 딱 한 번이었다.


  사실 나도 이렇게까지 안 싸운 연애는 처음이었다. 나는 두 손을 다 써도 모자랄 만큼 연애를 많이 한 편인데, 과거 연인들과는 싸우고 화해하기를 지겹도록 했었다.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이 대부분이었다. '치마가 왜 이렇게 짧냐'부터 '다른 이성에게 잘해주지 마라', '술 취하지 마라', '나보다 친구가 더 중요하냐'까지. 지나간 연인들은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나친 간섭이고 통제라 느꼈다.


  오늘 짧은 치마를 입고 싶어서 입은 건데, 짧은 치마를 왜 입었냐고 이유를 따져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궁색한 변명으로 '남친한테 예뻐 보이려고 입었다'고 하면, 이런 치마 안 입어도 충분히 예쁘니까 입지 말란다. 다른 남자들이 내 여자 다리 보는 거 싫다고. 처음에는 밝고 상냥한 내 성격이 좋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다른 남자들한테 너무 친절한 거 아니냐며 트집을 잡는다. 술은 기분 좋게 취하려고 마시는 건데 취했다고 혼을 낸다. 내 어떤 모습이 연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다. 행여라도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런 건데 꼭 이유가 필요하니' 따져 물으면, 그때는 고집불통 여친으로 전락한다.




  20대 중반에 5살 많은 오빠와 연애한 적이 있었다. 그 오빠는 나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여겼다. 늦은 밤 술자리가 끝나면 나를 집에 데려다주거나, 내가 안전귀가 할 때까지 안 자고 기다렸다. 내가 끼니를 잘 못 챙기면 내가 사는 원룸에 찾아와 요리도 해줬다. 내가 살던 원룸 계약이 끝나갈 무렵에는 나 대신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괜찮은 집을 찾아 나섰다. 한 부동산 사장님은 '여친 살 집이라서 꼼꼼히 살피더라'며 '세상에 이렇게 자상한 남친이 어딨냐'고 놓치지 말라 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에게 무척 고마웠다. 아마 그도 스스로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급기야 내 월급까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내게 한 달 지출이 얼만지, 적금은 얼마나 넣는지 등을 확인하더니, 일주일에 몇 번씩 '돈 좀 적당히 써'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그때서야 나는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그가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느꼈다. 당시 나는 사회초년생이라 월급도 많지 않았고, 놀고 싶고, 하고 싶고, 사고 싶은 게 많은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는 내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다섯 번쯤 들었을 때부터 화가 치솟았다. 마치 내 귀에는 '이 어린양아, 다 너 생각해서 하는 소리니까 제발 정신 좀 차려'로 들렸다. 나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는 태도가 불쾌했다. 결국 번번이 같은 이유로 싸우다 그와 헤어졌다.

 



  남편과 연애하는 동안 안 싸운 이유가 둘 다 성격 좋고, 유난히 성숙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남편은 취향이 확고하고, 불쾌한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한다. 나 역시 기준이 명확하고, 싫은 건 얼굴에서 확 티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의 싸우지 않았던 이유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닮았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할 때는 핸드폰을 내려두고 얼굴을 보며 귀 기울여 듣는다. 상대가 어려운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상황과 입장을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한다. 사소한 일이라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은 바로 표현한다. 나와 다른 상대의 가치관과 방식을 존중하고 바꾸려 들지 않는다.


  남편은 나를 처음 본 술자리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자세가 너무 보기 좋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도 나와 비슷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평소 그런 태도를 중요시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그저 '이야기 잘 들어주는 사람'정도로 여기지 않았을까?


  1년 이상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않고 연애를 지속하니 관계에 신뢰가 생겼다. 신뢰가 생기니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도 좋겠다 싶어 결혼까지 했다. 우리는 양가 상견례만 갖고 결혼식은 따로 올리지 않았다. 내 모든 에너지를 우리가 살아갈 보금자리 준비에만 쏟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비 남편과 함께 우리가 살 전셋집을 알아보고, 한참 부족한 전세금을 채우기 위해 여러 은행을 찾아다녔다. 한창 전세사기로 나라가 떠들썩했던 시기라 중개사 말만 믿고 계약을 진행할 수 없었다. 전셋집이 안전한지 우리는 이중삼중 확인해야 했다. 신혼집에 들어갈 가구와 가전제품을 구매하느라 비상금까지 탈탈 털었다. 그것도 부족해 12개월, 24개월 신용카드 할부까지 죄다 끌어다 썼다. 그렇게 준비하고 이사하는 날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둘 다 직장 다니면서 준비를 하다 보니 정신없이 바빴다. 우리는 그 기간에도 싸우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하는 서로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 목돈을 더 많이 모으지 못한 서로의 과거를 탓하지 않았다. 돈 벌어서 좋은 거 많이 먹고, 인생 즐기면서 잘 살았구나! 그래. 그거면 됐다. 앞으로도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좋은 추억 만들면서 잘 살자! 대신 한 달에 백만 원씩 함께 모아보자! 상대를 더 많이 보듬고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미 우리는 한 배를 탄 부부였다. 연애할 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느 신혼부부들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최고의 남편, 최고의 아내가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인생은 늘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우리는 함께 살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됐다. 그중 일부가 갈등을 일으키고 말았다. 우리가 싸우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남편 습관이고 하나는 내 습관이다.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