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지막날 관광을 할 때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았다. 만나고 보니 첫날 늦은 밤 발리에 도착한 우리를 호텔로 데려다주신 분이었다.
발리에서 만난 가이드는 발리 현지인이었고 한국어를 꽤 잘했다. 단어 선택과 문장 구성도 정확했다. 발리는 현지인만 가이드를 할 수 있는데 그것을 특혜로 이용하지 않고 가이드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조금 낡았지만 깨끗한 차 안, 친절함, 그 지역의 역사적 장소에 대해 함께 여행한 초등학생 아이 둘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셨다.
안면이 있었던 가이드는 자기소개를 했다. 자신의 이름을 말했고 성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의 성은 ‘수드라’라고 했다.
성은 없지만... 성은 ‘수드라’
그는 담담하고 평온하게 발리의 종교와 계급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발리의 계급은 크게 4가지로 나뉘는데 수드라 계급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로 피라미드 가장 마지막인 4번째에 위치한다. 요즘 수드라 계급도 상인 농민 계급의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관공소 취업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관공소에 취업했다고 상인계급인 와이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인 계급이었던 수드라인 것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부인은 남편의 성을 따른다고 한다. 노동자 계급인 수드라 계급의 여성이 왕족 계급인 끄사뜨리아 계급과 결혼을 하면 그 여성은 끄사뜨리아 계급이 되지만 끄사뜨리아 계급의 여성이 수드라 계급의 남성과 결혼을 하면 여성도 수드라 계급이 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수드라 계급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자식들 이름에 수드라를 붙이고 평생 대물림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발리에서 태어난 수드라 계급의 남자라면 어떨까? 발리섬의 아름다운 환경에 자족하거나 신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을지 모를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는 아닌 듯했다.
나는 그의 담담한 설명에 그가 왜 성이 없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노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에 그것이 잘 못 되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이 제도가 싫다고 강한 어조로 부정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성이 없다는 그 말에 모든 마음을 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나라의 정치, 경제 등의 상황에도 관심이 많았다. 차라리 그가 지식인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조금 덜 안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가 이 상황이 잘 못 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종교적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편하게 살아갔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나라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사건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그 이유와 과정을 분명하게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시대를 읽는 눈이 있고 똑똑한 사람이 계급 사회에 묶여있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도 1894년 노비제도가 폐지되지 전까지는 여러 가지 형태로 신분제도가 있었고 노비를 사고팔거나 자식에게 물려준 나라이다. 그리고 나라를 빼앗겼던 시기도 있었기 때문에 발리 수드라 계급의 사람들의 상황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건 분명해 보였다. 나는 이전 세대의 노력과 희생으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누리며 산다. 하지만 그는 그의 생전에는 그의 노력만큼 보상을 받거나 더 나은걸 가질 기회는 없어보였다. 힘든 삶이라 아들 하나만 낳아서 키우고 있다고 하신다.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고
그의 아들과 그의 자녀들이 살게 될 발리는 그 광활한 자연만큼이나 그들에게 좀 더 자유로운 세상 되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