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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Mar 02. 2022

기억 속의 한 장면

교토의 추억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날들이 있다. 갑자기 지금 상황과 상관없는 한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떠오르는 기억. 그렇게 떠오르는 기억들은 좋은 기억도 있고, 좋지 않은 기억도 있다.

맥락 없이 떠 오르는 그 장면들은 때론 위로가 되고, 때론 슬픔에 잠기게 한다.

나 홀로 처음으로 간 해외여행지인 홍콩에서 마지막 날, '심포니 오브 라이트 Symphony of Lights'를 감상하고 돌아서서 나오며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눈물 흘렸던 날이나, 베트남으로 가족 여행을 가서 이른 아침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남편과 한적한 호이안 거리를 걸으며 1달러짜리 반미를 사러 가던 그 길 그 장면은 위로가 되는 장면이다.

반면에 이른둥이인 큰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아이 없는 빈집에서 남편과 걱정 한가득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 밤은 이제는 무사히 지나가서 추억이 되었지만 슬픈 장면 중 하나이다.


결혼을 하고 10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시간들 중에서 종종 문득문득  떠올라서 날 웃음짓게 하는 장면들이 있다.  아이의 귀여운 행동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많은 장면들 중 가장 좋은 것 딱 하나만 골라보라면  바로 친구와 단둘이 교토로 여행을 을 때, 그 시간들이다. 2박 3일 짧은 일정으로 간 여행이었고, 유일하게 남편과 아이와 함께가 아닌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교토의 아침은 이노다 커피의 향기로 시작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 이노다 커피에서 수요일 아침 친구와 라떼 한잔을 시켜놓고 오전 한 나절 수다를 떨었다. 해가 쨍한 그날 그 라떼는 잊을 없을 만큼 맛있었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순간 그 공간 속의 우리 모습은 잊지못 할 장면이자 내 삶의 큰 위로이다. 결혼을 하고 그 사이 아이를 둘이나 낳은 내가, 가장 위로받았던 순간이 아이를 낳던 순간도 아니고, 아이가 첫 걸음을 떼던 순간도 아니고, 남편과 부모님과 함께한 순간도 아닌 왜 하필 친구와 함께 했던 그 수요일 아침 그 장면일까..


친구들에 비해 34살이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나는  결혼 생활도 엄마가 되는 것도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교육이 전공인 나는 막연히 아이도 아주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뭐든지 이론과 실전은 다른 법. 계획에 없던 허니문 베이비를 시작으로 모든 것이 내 예상을 빗나갔다. 신혼 여행지에서 생긴 아이는 25주에 시작된 조산기로 대학병원에 장기 입원하며 힘겹게 낳았고, 둘째 아이 역시나 그렇게 힘들게 낳았다. 낳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들 둘의 육아는 결혼을 무르고 싶을 만큼 내게 버겁고 힘든 일들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존재라고 했던가. 아들과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화성에서 온 아들들은 금성에서 온 나와 서로 합의점이 전혀 없었다. 누군가는 아이가 자라는 게 아쉽다고 했지만, 난 그저 세월이 빨리 지나가서 아이들이 자라기만을 바라는 육아가 온통 피곤하기만 한 엄마였다.


둘째가 5살이 되던 해 5월, 이제 둘째도 많이 컸으니 가족의 울타리에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아의 족쇄에서 벗어나서  잠시 친구와 아가씨 때처럼 여행을 다녀와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다녀온 교토 여행이었다. 아이 때문에 밤에 깰 일도 없고, 아이 때문에 밥을 코로 먹을 일도 없고, 아이 때문에 행동에 제약도 없는 2박 3일. 몸에 두르고 있던 갑옷 하나를 벗어 둔 기분이랄까.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새벽까지 수다를 떨던 우리는 여행 둘째 날 수요일 아침 이노다 커피에서 목적지가 없는 여행자 마냥 시간 제약 없이 수다를 떨었다. 잠시 내가 관광객인 것도 이 엄마인 것도 잊고 그렇게 홀가분하게 그 공간 속에 녹아들어서 햇살을 느끼며.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 후로 종종 그때 그 여행 속 장면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잠시나마 기억을 느끼고 싶어질 때면 가끔 만들어 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대파 오꼬노미야끼'이다. 쿄토의 부엌이라고 불리는 '니시키 시장'은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가까워서, 여행기간 내내 니시키 시장을 가로질러서 다니며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예쁜 것도 구경도 하고, 수많은 외국인들 틈에서 나도 여행 온 외국인이란 오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 준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맛있었던 것이 바로 '대파 타코야끼'였다. 가쓰오부시가 아닌 대파가 잔뜩 올려진 타코야끼는 신선했고, 그만큼 맛있었다. 여행 후에도 종종 여행지의 추억과 함께 생각이 났지만  타코야끼를 집에서 만들기엔 틀을 사야 했다. 그렇게 고민하다 종종 만들어 먹던 '오꼬노미야끼'에 대파를 올려서 흉내 내서 만들어 먹어보았다.

 모양도 맛도 사실 다르지만 그래도 만들면서 먹으면서 그때 추억이 떠올라 잠시 웃음 짓기도 했고, 잠시 지금의 나를 잊기 했다.


잊지못 할 순간 교토의 그 시간 그 공간.

그리고 대파가 잔뜩 올라간 타코야끼.

오늘도 타고야끼를 만들어서 남편과 둘이 앉아 그때 내가 얼마나 즐겁고 신났는지를 떠들며 맛있게 먹었다.

물론 남편과 내가 느낀 맛의 차이는 아주 달랐을 것이다. 난 기억 속의 멋진 추억을 함께 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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