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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Sep 30. 2021

점이랑 점이랑 4 : 피가 철철

#문화도시춘천#일당백리턴즈#쓸모있는딴짓

발달장애 청소년 '골드'의 그림과 그 그림을 두고 한 대화를 재구성했습니다. 골드는 경도의 지적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어 말을 유창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편의 상 읽게 쉽게 정리했습니다.


 사춘기에 이른 청소년을 다른 말로 주변인이라고들 합니다. 골드는 여러 모로 주변인입니다. 먼저 가정에서 그렇습니다. 골드의 가정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늘 분주하신 아버지와 중복장애를 가지고 계신 어머니에 의해 꾸려지고 있지요. 그래서 골드가 필요로 하는 수준과 분량의 관심을 받기 어려워요. 학교에서는 또 어떻고요. 골드는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급우들의 장애 정도가 골드에 비해 중한 편인데, 골드는 친구들의 조건에 맞추어서 공부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더 익힐 수 있는 부분이 있어도 양보해야 하지요.

 골드는 속상한 일이 있어도 좀처럼 겉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아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도 별 효과가 없는 경험이 반복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동안 골드와 여러 차례 그림을 그려왔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골드는 자신에게 언어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이를 두고 놀림 당해 상처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화두를 꺼내거나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기 꺼려합니다.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지만, 정작 자신은 몇 가지 고정된 대답만을 해서 말을 주고받게 되는 상황을 회피하고는 하지요.

 이번 자유화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그림을 두고 너를 '인터뷰'를 하겠다고 미리 말을 해두었어요. 처음에 골드는 무척이나 부끄러워하고 손사래까지 치면서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하지만 작업이 반복되면서, 점점 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세세하게 말하는데 익숙해졌습니다. 그간 골드의 둔하고 느린 대답 속에 감추어져 있던 마음속 생각을 십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참 좋았답니다.


첫 번째 그림, <무서운>

<무서운>

        골드, 이 그림의 제목은 뭐야?

    골드    '무서운'이에요. 아래쪽 빨간색이 피 같아 보여서 그렇게 붙였어요.

    나    왜 빨간색을 고른 건데?

    골드    그냥요. 원래 가장 좋아하는 색이에요, 피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나    그래, 넌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지.

(골드는 거의 매시간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한다.)

    골드    무서운 이야기를 여름에 하면 시원하기도 하고, 소름 끼치는 느낌이 좋기도 해요.

    나    이 그림에서 무서운 부분이 있을까?

    골드    (오른쪽 중간 부분의 팔 벌린 형태의 요소를 가리키며) 이건 죽은 사람이에요.

    나    넌 죽은 사람이 무서워?

    골드    무섭죠. 한 번도 본 적은 없어요.

    나    실제로 본 것 중에 무서운 건 뭐야?

    골드    높은 곳이나 낭떠러지요. 떨어질까 봐 무섭기도 하고, 누가 밀 것만 같아요.

    나    높은 장소에 자주 가니?

    골드    아니요. 상상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래서 무서워요.

    나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서) 이 사람은 왜 죽었어?

    골드    (왼쪽부터 중앙까지 이어진 커다란 요소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죽였어요.

    나    왜?

    골드    죽은 사람이 산책을 방해해서요.

    나    (죽인 사람을 가리키며) 그래서 이 사람은 뭘 하고 있는 거야?

    골드    죽은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어요.

    나    아직도 화가 났나 보네.

    골드    네.

    나    넌 언제 화가 나니?

    골드    친구들이 수업 시간을 방해할 때요.

(골드는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고, 다양한 종류와 강도의 장애를 지닌 동급생과 함께 공부한다.)

    나    친구들이 수업을 어떻게 방해해?

    골드    지적장애가 있어서 막 돌아다니기도 하고, 시끄럽게 행동해요. 한 번은 친구가 물레방아를 만들고 싶다며 난리를 피우다가 학교 기계를 망가트렸어요.

    나    그래서 골드 기분이 어땠어?

    골드    속상했어요. 학교 선생님도 속상했어요. 친구들이 방해가 돼서.


 두 번째 그림, <피>

<피>

    나    제목을 왜 '피'로 정했어?

    골드    빨간색이 많아서요.

    나    이 그림은 어떤 내용일까?

    골드    귀신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에요.

    나    귀신이 왜 사람을 죽이는데?

    골드    기분이 나빠서예요.

    나    귀신이 기분이 나빴던 이유가 무엇일까?

    골드    사람이 놀렸기 때문이에요.

    나    뭐라고 놀렸니?

    골드    "못생겼어!", "폭력적이야!" 이렇게 놀렸어요.

    나    혹시 골드를 놀리는 사람이 있니?

    골드    네. 저는 자주 놀림받아요.

    나    누가 골드를 놀려서 속상하게 했을까?

    골드    복지관에 같이 다니는 형 중에 한 명이 주로 그래요.

    나    뭐라고 놀리는지 선생님이 물어봐도 되겠어?

    골드    100kg 넘지 않았는데 넘었다고 놀렸어요.

    나    골드는 뭐라고 대답했어?

    골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형이기 때문에요. 싸움이 날까 봐 걱정됐어요.


 세 번째 그림, <살인자>

<살인자>

    나    이 중에 '살인자'가 누구야?

    골드    까만 사람이요.

    나    혹시 이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니?

    골드    이건 저예요.

    나    네가 찌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골드    학교 친구 J예요. 얘는 저보다 키가 작아요.

    나    왜 칼로 J를 죽이는 모습을 그리게 되었니?

    골드    J는 학교에서 가끔 소리를 질러요. 지난 수요일에도 보건 선생님께 꺼지라고 소리쳤어요.

    나    J는 어떤 친구야?

    골드    같은 반이고, 시각 장애인이에요. 

    나    오른쪽 구석에 갈색 옷을 입은 사람은 누구니?

    골드    학교 친구 K예요. K는 저보다 키가 커요. 지금 활을 쏘고 있어요. K의 화살은 똥이에요.

    나    그럼 이쪽의 핑크색 화살은 뭐야? 서로 대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골드    이건 제가 쏘는 거예요.

    나    K에게 화살을 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이유가 있니?

    골드    K는 수업 시간에 뛰어다닐 때가 있어요. 그리고 지난번에는 담임 선생님을 할퀴었어요.

    나    골드는 선생님들을 무척 아끼고 좋아하는구나.

    골드    (잠시 생각해 보더니) 네. 선생님들이 좋아요.


 골드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동안 골드를 꾸준히 만나고 관찰해 오면서 어렴풋이 떠올렸던 몇 가지 생각이 또렷하게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먼저 골드가 사람과의 소통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비록 골드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경도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특수학교는 다양한 장애를 지닌 청소년을 복합적으로 구성해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일반학교의 특수 학급에서 가르칠 수 없는 심한 장애를 가진 학생을 수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골드는 보호자의 보살핌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가 쉬운 특수학교에 진학하게 된 케이스였어요. 반에서 골드는 교사와 학생의 경계선에 놓여 있습니다. 늘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하는 처지입니다. 지시 수행이 잘 되고, 사회성이 발달했기 때문에 - 오히려 골드의 필요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골드가 교사의 수고를 잘 알고 의협심 있는 자세로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교사라는 이름만으로 버텨내기에는 참 힘든 일이 벌어지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언론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매일 같이 현장에서 흘리 시기에 범상하기 짝이 없는 특수 교사의 땀과 눈물 대신 드물게 일어나기에 자극적이고 화젯거리가 되는 학대 사건이지요. 얼핏 골드의 그림이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아직 분노와 벌, 또 사랑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순수한 이미지였어요. 골드의 선생님들께서는,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성향의 골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요?

 끝으로 어린 골드가 스스로를 설득하는 자세였어요.

 골드는 장애인으로서 받고 있는 혜택을 갱신하기 위해 검사를 받을 때, "제가 어디가 아픈가요? 제가 장애인이에요?" 물어보는 친구입니다. 그때마다 여러 선생님을 통해 장애에 관한 설명을 받았지요. 그 후 골드는 자신이 학교에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친구를 볼 때마다, 그 학생의 구체적인 장애 내용에 대해 물었습니다. 또 해당 장애가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 익히고 이해하려고 애를 썼지요. 골드 역시도 사춘기 소년에 불과하기에,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 그 자체는 감추지 못하면서도 - 친구들에 대해 익히려고 하고, 배우고자 하는 그 모습…


골드와 작업할 때, 오일 파스텔을 낯설어해서 제가 그려준 그림이랍니다.

 골드, 언젠가는 선생님이 차근차근 - 네 속에서 본 황금 같은 장점을 설명해 줄게.

 우리에겐 많은 시간이 있으니까, 천천히 그렇게 할게.


춘천문화재단 <일당백 리턴즈>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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