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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Sep 03. 2024

Been There - 후쿠오카 (4)

내 팬티는 손대지 않으셔도 되는데

후쿠오카에 가기로 결심한 이후 호텔은 어떻게 할 지도 생각해 봐야 했다. 메리어트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는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선 메리어트 앱으로 호텔을 검색해 보았다. 후쿠오카 시내에는 하나의 호텔만 검색이 되었는데, 그 계열 호텔들 중에서 가장 좋다는 R호텔이었다. 가격은 한 박에 10~12만 엔 정도였다. 아무리 엔화가 저렴해졌어도 한 박에 백만 원이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포인트를 이용한 숙박으로 검색을 해 보니 2박 3일에 10만 포인트로 숙박을 할 수 있었다.


메리어트 포인트는 1 포인트 당 US 0.7~1 센트 (CA 1~1.5 센트)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포인트로 예약을 한다면 절반의 가격으로 예약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직도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신용카드나 메리어트 호텔을 이용하면서 받는 보너스 포인트들을 모으면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열심히 포인트를 모아서 예약을 해버렸다. 인생 뭐 있나. 즐기면서 살아야지.





호텔의 위치는 무척 좋았다. 지하철역에서도 가깝고 텐진에서도 가까워서 좋았다. 작년(2023년)에 완공되어서 모든 것이 깨끗했다. 그러고 보면 이 건물이 지어지기 전에 뭔가 있었을 텐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분명 수도 없이 지나다니고 맞은편 카톨릭 교회에도 가 본 기억이 나는데 여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너무 궁금해서 전날 유도부 선배를 만났을 때 물어보니 초등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호텔 건물은 학교 운동장 위치에 지어졌고, 뒤쪽에 초등학교 건물이 남아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건물은 사무실 등으로 쓰이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서 호텔 뒤편을 보니 딱 초등학교 같이 생긴 건물이 남아있었다. 남은 공간에는 인조잔디를 깔아놓았는데 밤이면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그냥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라면 당연히 동그랗게 모여서 술판을 벌이기 딱 좋은 장소인데 말이다. 술이 금지되어 있다는 표시판은 보지 못했는데 이야기만 하고 있다니! 친구들아, 간이 건강할 때 어서 많이 마셔두렴.

 

밤이 늦었지만 아직도 덥고 습습했다. 조금만 걸어가도 술 사 올 곳이 많은데...


일본 호텔방들은 작고 좁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과연 우리와 같은 대가족이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다. 체크인을 할 때 호텔 직원이 아이들이 많으니 추가로 요금을 내고 조금 더 넓은 방을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뭐 이야기나 들어보자고 생각해서 추가 요금을 들으니 친절하게 계산기로 '18000'이라고 찍어 주었다. 쌈이나 싸 드세요라고 말하면 좋았겠지만 일본어로 '쌈'이 생각이 안 나서 말하지 못했다.


막상 방에 들어가 보니 일본에서 이렇게 큰 호텔방은 처음 보았다. 이 정도면 5명이 아니라 15명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돈이... 아니 포인트가 좋구나!


놀랍게도 호텔에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포인트로 묵지는 않았을 텐데... 



다른 곳에서 이 'R'호텔을 가본 적이 없어서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호텔은 참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첫날 체크인 후 밖에 나갔다 들어와 보니 방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분명 내가 저 물건을 저렇게 두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저기에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침대 머리맡에는 물과 컵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옷을 저렇게 개고 가지는 않은 것 같은데 참 예쁘게 개어져 있었다. 


내가 계속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이상하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누가 왔다 간 것 같지...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와이프가 소리쳤다. 누가 들어왔다 간 것이 분명하다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보니 우리 모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세면대 옆에 아이들 칫솔과 치실을 하나하나 참 예쁘게도 정리해 놓은 것이다. 다른 곳들도 살펴보니 간식 삼아 먹으려고 사 둔 빵 하나하나도 참 예쁘게 정리해 놓았다. 밖에 나가기 방이 조금 어질러져 있었다면 누가 왔다 갔다는 사실을 쉽게 있었을 텐데 체크인 금방 밖으로 나가서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누군가 한 땀 한 땀 정리를 하고 사라졌다


둘째 날은 아침에 나갔다가 오후 4시 정도에 방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도 역시 방은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한편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2번과 3번 녀석들은 그냥 방에서 먹겠다고 하고, 1번 녀석은 밖에서 라멘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선 재빨리 밖에 나가서 먹을 것을 좀 사 왔다. 방에 들어왔을 때 한 번 샤워를 했지만 잠깐 밖에 다녀왔다고 그새 다시 땀이 줄줄 흘렀다. 방에 온 김에 샤워를 다시 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1번 녀석이 배고프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재빨리 옷을 벗고 물만 끼얹은 다음 속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한 30~40분쯤 지났을까. 1번과 라멘을 먹으려고 하는데 와이프로부터 다급한 문자가 왔다. 갑자기 사람들이 청소를 하러 방에 들어왔다고. 아차 싶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속옷을 그냥 화장실 바닥에 두고 나왔는데! 곧 와이프가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아! 거기까지는 손을 대지 않으셔도 되는데!


이 팬티는 '굴욕팬티'라고 명명되었다



오래전에 일본어를 배울 때 강사분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본 사람들은 정말 특이하게 깔끔해서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남편의 옷을 같은 세탁기에 넣고 빨기가 싫어서 남편 빨래만 빨래방에 들고 가서 하고 온다는 사람들이. 


와이프 증언에 따르면 젊은 아가씨 두 명이 들어와서 여기저기 정리를 해주고 갔다고 한다. 와이프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 사람들도 괜찮다며 굳이 내 팬티까지 접었다고 한다. 정말 그것은 안 접어도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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