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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Sep 07. 2024

Been There - 후쿠오카 (5)

짧지만 안녕

후쿠오카에 며칠 더 머무르면 좋았겠지만 17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기간 중에 짬을 내서 다녀온 것이라 벌써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만날 사람도 만나고, 가보고 싶은 곳도 가보고, 먹을 것도 먹고, 무엇보다 아이키아에서 '다리'까지 샀지만 우리가 하나 해내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바오바오인지 푸바오인지 하는 가방을 사 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일본에 다녀온다고 하니 장모님께서 와이프에게 수줍게, 혹시 여행하다가 바오바오가 보이면 하나 사다 달라고 하셨다. 나도 한때는 유행을 좇느라 바빴는데 시골에서 깻잎이나 따고 고추나 키우며 살다 보니 그런 가방은 처음 들어보았다. 사실 '바오바오'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방보다는 만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구글로 찾아보니 샤오롱바오 때문에 그랬나 보다). 그래도 와이프는 나보다 나은지 실제로 그 가방을 '본'적이 있다고 했다.


어쨌든 여행 둘째 날 백화점에 간 김에 매장을 찾아가 보았다. 그때가 오후 3시 정도였는데 조그마한 매장에 손바닥만 한 가방이 두 개 걸려있었지만 가게를 지키는 점원은 세 명이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팔고 있는 물건은 이게 전부인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다른 것은 다 팔렸고 이것만 남아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나 와이프나 모두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보는 사람마저 안타까웠나 보다. 점원분이 오전 10시 가게 문이 열릴 때 오면 물건이 있는데 그마저도 금방 다 팔리니 일찍 와보시라고 말을 해 주었다.


아! 우리가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그래서 우리는 계획했다. 내일 떠나는 비행기가 오후 2시이니 와이프와 1번은 오전 10시에 가방을 사고, 그 사이 나와 2번 3번은 다이소에 가서 포켓몬 카드 바인더를 사면 되겠다고. 그리고 11시에 다시 합류하여 점심을 먹고 공항을 가면 되겠다고.




다음 날 우리는 일찍 나간다고 9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해서 백화점으로 향했다.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벌써 20~30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물건을 사려고 줄을 샀던 것은 팬데믹이 한창일 때 두루마리 휴지를 사려고 코스트코에서 줄을 섰던 것인데! 그 가방의 실물을 아직 영접하지는 못했지만 코스트코 휴지만큼이나 귀하다고 하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뭐 줄이 엄청 긴 것도 아니니 다이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호텔을 나서기 전 비행기가 2시간 정도 지연된다는 메일을 받았던 터라 2번, 3번과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나는 당연히 와이프가 가방을 사고도 시간이 남아서 다른 곳이라도 구경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줄을 서있는 것이었다. 와이프는 여기서 그냥 때려치울까 했지만 그래도 줄을 선 것이 아까워서 내가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아이들의 인내심이 끝나갈 때쯤 와이프가 가방을 구입할 수가 있었다.


나중에 와이프에게 들어보니 가방을 사는 것도 엄청 흥미진진했다.


가게가 문을 여는 10시가 다 되도록 매장에는 물건조차 없었다. 하지만 9시 57분이 되자 점원들이 그날 들어온 물건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눈이 엄청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기가 원했던 것을 앞사람들이 모두 사가 버릴 수도 있으니 3, 4 지망까지 고려해야 한다. 줄을 서며 말을 튼 사람들도 있어서 서로 나는 요것 요것을 사겠어요, 그럼 나는 저것 저것을 사겠어요라고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렇게 10시가 되었고 앞에서부터 한 사람 한 사람씩 매장에 들어가서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원칙은 본인이 쓰거나 선물을 할 경우에 한해 일인 당 하나씩만 판매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가 올 경우에는 각자 하나씩 살 수 없고 부부에게 하나만 판매한다.


매장에 걸려있는 가방이 그날 물건의 전부였는지 앞의 사람이 사가면 다시 채워 넣지는 않았다. 그래서 앞의 사람들이 가방을 하나씩 골라 갈 때마다 '아!'하고 아쉬워하는 탄식이 들리고는 했다. 한 번은 누군가 가방을 고르자 '저 여자 저거 안 산다고 해서 내가 사려고 했던 건데!' 하는 불평도 들렸다. 가방을 산 사람도 미안했는지 '앞에 사람들이 다 사가버려서 이것밖에...'라고 말을 흐리며 황급히 매장을 떠났다.


그렇게 오래 기다렸지만 원하는 것이 남아있지 않다며 쿨하게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었다. 저런 스타일은 이미 있는데 또 살 필요는 없지라는 말과 함께.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저 그녀의 쿨함에 고마워할 뿐이었다.


그에 반해 질척 질척 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부부가 와도 하나밖에 판매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못 알아들었나 보다. 중국 사람으로 보이는 부부는 하나 더 사겠다고 하고, 점원들은 안된다고 했다. 그러자 남자는 목소리를 높이며 왜 안되냐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결론까지는 보지 못했다. 마침 우리 와이프 차례였기 때문에 재빨리 손짓과 눈짓으로 남자가 사겠다는 가방을 달라고 했다. 그 가방이 마지막 남은 큰 사이즈 가방이었기 때문에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무조건 달라고 하고 계산한 후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계산하고 세금까지 환급받고 보니 거의 12시가 다 되어있었다. 비행기가 지연되어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작전명 바오바오'를 완수하지 못할 뻔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탄 비행기는 제시간에 뜨지 않는 비행기였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사정을 알지 못했던 나는 멍청하게도 표를 예약할 때 돌아오는 비행기로 굳이 코드셰어를 하는 저가항공 비행기를 선택한 것이다. 출발하는 시간이 좋아서 예약을 한 것이었는데 결국 두 시간 뒤에 출발하는 일반 비행기보다 늦게 떠나고 말았다.


그래도 건진 것은 하나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을 돌아다니다 보니 공항 면세점에, 오전에 그 난리를 쳤던 바오바오 매장이 있는 것이었다. 오후인 데다가 매장 안에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당연히 여기도 물건이 모두 팔린 줄 알았다. 그래도 심심해서 매장에 들어가 물어보니 저기 걸려있는 가방들은 모두 재고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해서 다시 물어봤는데도 재고가 있다고 했다.


재빨리 와이프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다. 시골에 살면 아이키아 장바구니는 많이 필요해도 바오바오 가방은 별로 필요 없기 때문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래도 다들 그렇게 줄을 서서 사는 가방이니 와이프에게도 하나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마음에 안 들면 당근에라도 팔 수 있겠지.


공항에서 이렇게 쉽게 살 수 있는데, 심지어 백화점에서 산 것보다 싸게 샀다!, 아침에 왜 이렇게 고생을 했나 싶었다. 그래서 점원에게 원래 오후에는 물건이 잘 없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보통은 없는데 아주 가끔 물건이 오전, 오후 두 번 들어올 때가 있다고 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며. 운이 좋았나 보다.


와이프도 마음에 안 들지는 않았는지 우리의 바오바오가 당근에 올라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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