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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석 Jan 18. 2024

빛과 색깔

색은 날아가 버린다.

 여명은 빛이다. 꿈이요 희망이다. 시간과 함께 퇴색하는 색깔이 아니고, 태양으로부터 발하는 영원한 광명이다. 그때의 희생은 빛이 아니고 색깔이었다. 정답도 아니었고, 선도 아니었다. 그저 무지였다. 

선이라 착각했던 미덕의 아름다운 색깔은 세월과 함께 바래 버렸다. 

그 빛이 아닌 선(善)이라는 색깔에 현혹되어, 아직 여물지 않은 열다섯의 나는 의지와 열정을 태웠었다. 

기린봉의 여명이 꿈틀대는 새벽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인 1961년에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났다. 우리 집 가세가 조금씩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은 눈치로 알고 있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네 동생은 중학교에 못 보내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날부터 우울한 날들이었다. 


 어느 날, 앞집의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전주 농림고등학교의 서무과장을 하시는 분으로, 명절 때는 할머니께 선물을 가져오곤 하며 가까이 지내는 이웃 어른이셨다. “새 군사정부가 중농정책으로 많은 혜택을 약속하고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할 수 있는 자격도 주고, 공무원 시험에도 가산점을 주어 유리할 것이다. 너는 공부도 잘하니까 농고를 가면 장학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일등으로 입학하면 입학금과 일 년간의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솔깃하였다. 그 솔깃이 중학교 삼 학년 일 년 동안 열정을 태우는 불쏘시개였다. 그 솔깃이 고등학교 삼 년 동안의 실망과 원망을 잉태하게 한 씨앗이었다. 장학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나에게 시렁에 얹어 놓은 달걀꾸러미에서 달걀을 한 개씩 꺼내어 주시였다. 두 개를 주시는 날도 없었고, 주시지 않는 날도 없었다. 동생의 진학을 위하여 학교를 낮추어 가겠다고 하는 손자가 기특하였던 것 아니었을까? 


 여름방학 때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자정을 넘기면 적막할 만큼 고요하였다. 책장 넘기는 소리, 멀리 있는 선배의 기침 소리, 밖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더욱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여름에는 해가 길어 새벽이 빨리 온다. 새벽 세시가 조금 지나면 기린봉 봉우리 위로 여명이 스며들었다. 태양의 빛이 지구의 대기권에 굴절되어 생기는 빛이다. 여명의 시간은 색깔은 없고 빛만 있다. 여명이 박명으로 변하면서 서서히 색깔이 드러난다. 아침의 색깔은 가슴을 뛰게 한다. 도서관 앞마당의 키 큰 플라타너스 잎의 무성한 녹색이 그러했다. 아침의 태양을 맞이하는 중학교 삼 학년 학생의 가슴은 결의와 의기로 충만하였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에는 체력테스트가 있었다. 체력점수 비율이 총점 175점 중에 25점이나 되었다. 달리기, 턱걸이, 제자리멀리뛰기, 오른손과 왼손 공 던지기 등 다섯 종목이었다. 전쟁터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개울을 뛰어넘으려면 제자리에서 뛰어야 하고, 오른손으로 수류탄을 던지다가 부상을 당하면 왼손으로 던져야 한다는 군사문화의 소산이었다. 학교에서 열심히 준비한 덕분에 만점을 받기에 충분했으나, 달리기만은 5점 만점에서 4점을 받아 체력 점수 24점을 받았다.


 이 해의 전주농고는 전주북중학교와 사범병설중학교 출신들도 많이 응시하였다. 개교이래 가장 우수한 학생이 모였다는 풍문이었다. 합격자 발표 날이 왔다. 학교 현관 쪽 벽에 합격자 명단이 하얗고 길게 붙어 있었다. 임학과의 맨 앞에 내 이름 석 자가 있었다. 일등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니 “잘했다. 잘했어”라고 칭찬을 해 주셨다. 그렇게 전주농고를 다니게 되었고, 방황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삼 년을 원망과 염세로 허비해 버렸다. 


 진학의 방향을 급선회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어찌어찌 학교는 졸업했을 것이고, 대학 꿈도 꾸었을 것이며, 학력결핍증으로 평생을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대 교복을 입은 동창생을 만났던 날의 고물 장수의 무참한 울분도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서울에서 리어카를 밀며 고물장수를 한 적이 있다. 높고 고풍스러운 창경궁 담 옆을 지나고 있을 때, 바로 앞에서 친구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던 친구였다. 키가 작아서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친구도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그의 손에는 책가방이, 내 손에는 고물장수 가위가 들려 있었다. 서로 인사를 했다. 그 친구는 내가 무안할까 염려하는 눈빛이었다. 악수를 하고 몇 마디만 하고 헤어져 주었다. 하늘을 우러르고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육십 년 전을 돌아보면, 그때의 희생이 정답도 선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색깔을 보는 것보다는 빛을 보아야 했다. 색은 아무리 고와도 빛의 굴절이며 생채기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색은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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