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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석 Mar 09. 2024

2033년 10월 10일

우리 부부의 세상 하직

 2033년 10월 10일


 “당신은 체력이 약하고 심성이 부드러워, 내가 가고 나면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장례식도 못 치를 거야. 그렇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으니 당신이 먼저 가. 내가 당신을 보내고 한 달 후에 따라갈 테니” 하면서 이른 새벽 이불속에서 아내와 도란도란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당신 나이 팔십은 돼야 억울하지 않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팔십칠 살까지 살아야 하네.” 아내 나이 팔십이고, 내 나이 팔십칠이 면 불공평하다. 하지만 부부가 된다는 것은 ‘제 이의 인생 출발’이라고 주례 선생님께서 강조하여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만나서 같이 산 세월을 부부 나이라고 한다면 쉰일곱이라는 부부 나이가 되어 함께 가는 셈이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2033년까지 13년을 더 살다가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내친김에 볕 좋은 가을, 시 월 십 일로 날까지 받았다.


 날을 받아 놓고 나니, 의외로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생기가 돋는 듯했다. 수학여행 날짜가 정해지거나, 입학시험 날짜를 알게 되는 날의 긴장과 의욕이 솟는 듯했다. 남은 날이 짧아 아쉬운 것보다, 짧은 시간을 더 잘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강해졌다. 나에게 남은 날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이제부터 하루하루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앞으로의 하루하루는 쓰고 남은 잉여의 시간이 아니고, 수학여행이나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아름다운 떠남을 위하여 체력과 지력이 쇠퇴하지 않도록 가꾸는 시간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책 읽기, 글쓰기, 여행하기, 친구 만나기를 부지런히 해야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부부가 날을 받아 두고, 겸손하게 살기 위하여 함께 정진한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받은 날이 무슨 소용이랴. 생명을 관장하는 신은 따로 있는데. 물론 그렇다. 신의 뜻을 거역하거나 토를 달고 싶은 마음은 없다. 토를 달며 애원해도 소용없고, 또 거역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살아있는 시간을 즐거우며 성실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은 신의 몫이 아니고 내 몫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흔하게 보는 노년의 삶은, 의욕과 희망을 잃은 채로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의욕과 열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다가 세상을 떠난다. 어르신들의 장례식을 볼 때마다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계획을 세운다 해도 마치지 못할 것, 해서 뭐 하겠느냐 하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물론 마치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어느 블로그에서 읽은 얘기가 생각난다. 95세의 노인이 영어학원에 등록하러 왔다. 원장이 “뭐에 쓰시려고 영어를 공부하려 하십니까?” 물으니, “젊은이, 후회하지 않으려고 그런다네. 내가 65세에 정년퇴직을 했지. 그러고도 30년을 살았는데, 그 30년을 오로지 죽는 데 썼다네. 너무 후회스럽네, 앞으로 또 몇 년을 더 살지 모르는 일 아닌가?”라고 하였다는 얘기는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전주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모임을 시작한 지 어언 20여 년이 지났다.  2019년에 친구 열 명 중 두 명이 병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서둘러 떠나버린 친구 K는 학교 다닐 때부터 가까이 지냈다. 시 쓰는 것을 좋아해서 국어 선생님께 귀여움을 받곤 했던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다. 일 년 전 어느 날 그의 아들이 “이번 일본 여행에 아버님도 같이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건강이 조금 걱정은 되지만…”이라고 전화를 해 왔었다. 이렇게 착하고 효성스러운 아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안타까웠다. 


 10명 중 장례식장에 오지 못한 친구 B도 시난고난 앓으며 위중한 상태라는 소식이었다. 한 세대의 종언(終焉)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장례식장은 침울했다. 애써 웃고, 우스갯소리를 했으나 헛헛하기만 하였다. 상주가 와서 인사를 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하지만, 진심을 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극히 상투적인 위로의 인사만 건넸다. 우리 여덟 명은, 마른 갈잎 버석거리는 이야기만 나누다 돌아왔다. 


 나보다 한 살 위인 일흔다섯 살의 친구가 가고 나니, “아! 내 차례도 곧 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년배의 친구가 저 세상 사람이 된다는 의미는, “너도 죽을 것이다”라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명확한 예고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인적이 드물어진 가로등 밑을 혼자 걷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어차피 모두 떠나야 한다면 ‘죽음의 날을 내가 받아서 가자’라는 생각이었다. 사랑하기에도 좋은 나이가 있다고 하는데, 죽기에도 좋은 나이가 있는 것 아닌가. 


 2020년 6월 말로 47년 종사하던 여행사 일을 그만두었다. 그동안 바쁘게 살았던 삶에서 해방이 되어 일상이 여유로워 좋다. 깜박거리는 녹색 신호등이 보여도 뛰지 않고 기다렸다가, 다음 신호등에서 건너도 되니 말이다.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프로젝트가 있으니 무료하지 않다. 하루하루가 금방 간다. 둘이 손잡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등록했다. 


 내가 날을 받아 놓은 것은 참 잘 생각한 일인 것 같다. 2033년 10월까지의 13년이란 시간은 길고도 짧고, 짧고도 긴 시간이다. 잉여의 시간으로 분별없이 써버리는 것보다, 조그만 탑을 하나 짓겠다는 마음으로 돌을 하나씩 쌓아가겠다. 천천히 하다가, 다 못해도 괜찮다. 구십이 넘은 노부부의 전원생활을 그린 일본 영화의 대사 한 토막이 생각난다. 두 부부는 떨어지는 이파리를, 익어가는 감을, 조용히 흐르는 한 조각의 구름을 바라보며 이렇게 읊는다. 


“바람 불면 나뭇잎 떨어진다.   나뭇잎 떨어지면 땅 살찌고 

땅 살찌면 열매를 맺는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그렇게 살아가겠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늘도 작은 돌 하나 올린다.                 

아내가 80세, 내가 87세가 되는 2033년 10월 10일. 이날을 우리 부부가 신의 가호로 두 눈을 뜨고 맞이할 수 있게 된다면, 둘이 손잡고 여행하고 싶다. 우리의 성공을 축하하는 축하 여행을. 여행에 필요한 가방도 새로 사고, 신발도 가볍고 멋진 놈으로 준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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