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를 보고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가을장마 시작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신문에서 영화평론도 보았고, 친구가 동창 모임 카페에 올린 글도 읽었다. 아내와 우산을 쓰고 영화 모가디슈를 보러 갔다. 기분이 통쾌하고 뒷맛이 개운하였다. 감동받은 몇 장면과 안타까웠던 느낌을 소개하고자 한다.
남과 북의 오늘을 보고 있노라면, 꼭꼭 다문 두 개의 가시 돋친 밤송이를 연상케 한다. 잘못하여 찔리기라도 하면 붉은 피가 솟아오르는 무서운 가시를 무기로 마주 보고 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가시로 무장한 밤송이 같다. 잘 살기 위한 방책으로 민주주의 또는 공산주의라는 시스템을 받아들였거늘, 오늘날의 우리는 밤송이가 된 시스템을 뒤집어쓰고 마주 보고 있다.
남쪽 사람들에게 북쪽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이마에 뿔이 나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벌건 얼굴을 했으며 뿔방망이를 든 도깨비 같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군사훈련만 하는 땅, 북쪽 사람들에게 남쪽을 물으면 깡통을 들고 다 해어진 옷을 걸치고 얼굴에는 세수를 하지 않아 땟국물이 흐르며 병이 들어 겨우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빌딩 사이 골목마다 우글거리는 땅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라는 단어에서 수많은 역사를 떠올린다. 6.25 전쟁, 도끼만행사건, 연평도폭격사건 등 셀 수없이 많은 일들은 우리의 사고력을 유연하게 하지 못하는 굴레이고 속박이다. 영화에서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가 내전상태로 극히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빠진 상황에서 반군에게 쫓기고 쫓긴 북한 소말리아 대사 림용수는 우연히 대한민국 대사관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는 고심 끝에 온 가족과 대사관 직원들을 데리고 잠시만 남한 한신성 대사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림용수 북한대사의 보호를 요청받은 남한 대사 한신성은 집안으로 북한의 식구들을 들인다. 여기서부터 남과 북의 대사와 가족들은 수많은 일들을 함께 겪으며 적대했던 미움의 가시들을 하나씩 뽑아간다. 생존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위하여 체제라는 갑옷을 벗어버리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알몸이 된다. 저주와 불통의 가시 울타리를 부수어 버리고,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보며 눈부셔하는 알밤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공동의 운명체가 된다. 남과 북의 가족들은 어색하지만 밤송이 안의 알밤형제들처럼 하나로 동화되어 가고 서로의 따뜻함과 동질성을 확인해 간다.
그러한 사정에 의하여, 주 소말리아 남한대사와 북한대사 식구가 모두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남북 간의 대결은, 대사들도 대사 가족들도 모두 대척점에 서게 한다. 남한 식구들은 식사를 하는데 북한 사람들은 바라보고만 있다. ‘남측 종간나 새끼들이 밥에 독을 넣든지, 수면제를 넣어 우리 모두를 남쪽으로 잡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남과 북이었다. 식사 장소가 남한 대사관이고, 식사를 준비한 측도 남한 쪽이니 더욱 믿을 수 없었다. 남한대사가 자기가 먹던 밥그릇을 북한 대사에게 건네주고, 북한 대사 앞에 있던 밥그릇을 갖다가 먹으며 “됐죠? 어서 드세요. 배고프시죠?”라며 권하자 자기네 가족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고 모두 식사를 시작하는 장면은 슬픈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식사 도중에 남한 대사 부인이 상에 놓인 깻잎을 한 장만 떼려 하나 잘 안 떨어진다. 그것을 보고 있던 북한 대사 부인이 젓가락으로 아래쪽 깻잎을 눌러 도와준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고 잠시 어색한 미소가 교환한다. 북한 대사관의 꼬마가 주방에 혼자 서있다. 남한 대사 부인이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아이가 혼자 서 있는 것을 보고,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고 “뭐 필요한 것이라도 있니?”하고 물었다. 꼬마가 “설탕이 있으면 조금 주세요.” 한다. “음 피곤하구나. 단것이 먹고 싶어?” 하니 꼬마가 울먹이며 “할아버지가 설탕을 약으로 쓰려고요.” “알았다.” 하고 설탕을 주고 남편인 대사에게 그 내용을 전했다. 남한 대사관의 남자 직원 한 사람이 당뇨를 앓고 있어 인슐린이 있었다. 남한 대사는 북한 대사에게 인슐린을 건네면서 “불편한 것이 있으면 말씀을 하세요, 안전한 곳으로 갈 때까지는 우리는 공동 운명체입니다”라고 한다.
승용차 네 대로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가는 이튿날 아침이었다. 북한 대사가 “뭐 못 쓰는 책 같은 거 없습네까?”라고 물었다. 버려질 책들을 네 대의 승용차 지붕과 옆 그리고 앞과 뒤에 두껍게 붙였다. 마당의 흙을 담은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소말리아 반군과 정부군의 총격이 난무하는 아수라장 속을 달려가기 위한 방탄용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로 수많은 총격을 받고도 모두가 안전하게 이탈리아 대사관 입구에 도착했다. 차에서 모두가 내려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자동차 경적이 길게 울린다. 모두 놀라서 돌아보니 운전을 하던 북한 대사관 직원이 피범벅이 된 얼굴을 클랙슨 위에 박고 죽은 것이다.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은 이 직원 시체를 이탈리아 대사관 내에 묻고 같이 슬퍼했다. 나무에 남북이 같이 사용하는 한글로 이름만 적어 무덤을 만들어 주고 급히 떠났다.
남북의 대사관 직원들은 모가디슈 공항까지 같은 버스를 타고 갔다. 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또다시 대척점으로 돌아가야 했다. 같이 사선을 넘는 공동운명체로 살아온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냥 헤어질 수가 없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수령님 아래로 가야 하고, 국가보안법의 치하로 들어가는 양쪽은 버스 안에서 진심을 담은 인사를 나눈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서로 잠시 눈길도 주지 못한 채로 헤어져 각자의 버스에 탄다. 버스에 오르기 전, 양쪽의 대사는 고개도 못 돌리고 잠깐 멈추어 선다. 서로가 영감(靈感)으로 교감하는 장면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남과 북은 대척점에 서 있지만, 피가 통하는 동족임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영화였다. 외세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대척점에 있는 서로 다른 문화가 혈연으로 하나가 된다면, 그 효과는 통일을 넘어 우리 민족의 융성을 약속받으리라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나는 영화에서의 단말마 적인 총소리를 싫어한다. 그런데 오늘은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들려오는 총소리가 심장을 뛰게 하는 응원가같이 통쾌하게 들렸다. 뒷맛이 좋은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왔다.
비는 그치고, 파란 하늘이 눈이 부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