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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석 Feb 23. 2024

할머니 대보름 밥상

할머니는 어머니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핸드폰 신호음이 카톡카톡 울렸다. 멀리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시는 외가의 육촌 형님이다. 정월 대보름이라면서, 나물과 부름, 오곡밥을 찍은 사진과 덕담을 보내왔다. 오늘이 2021년 2월 26일(금),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이다. “미국에 사시면서 대보름을 기억해 내시는 형님의 외로움을 봅니다, 저도 옛날에는 ‘망월이야!’ 외치며 뛰놀았지요.”라는 답신을 보냈다. 정이 많고, 따뜻한 분으로 어려서부터 가까이 지내고 있는 분이시다.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자주 하신다. 많이 외로우신 가보다. 창밖 마른 단풍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내가 기다리는 봄바람일 게다. 


 요즈음은 대보름의 풍습도 사라져 가니 너무도 아쉽고, 아름다웠던 추억이 그립다. 뜰밟이, 더위 팔기, 대보름나물, 오곡밥, 달집 태우기 등등, 큰 명절이었는데 요즈음은 명절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할머니께서는 해마다 보름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윗목에 상을 차려 놓으셨다. 묵은 나물이 대부분이었다. 지난해에 말려 석작(대나무상자)에 고이고이 담아 선반에 올려 두었던 취나물, 고사리, 시래기, 가지고지, 호박고지 오이고지 등의 묵나물을 정갈하게 무쳐 올렸다. 낙화생(땅콩), 호두, 은행, 잣 등 부럼(부스럼)과 쌀, 콩, 수수, 조, 기장으로 정성스레 지은 오곡밥도 올렸다. 


 보름밥상에는, 생선은 올려도 육류는 올리면 안 된다고 하셨다. 아이들도 귀밝이술을 조금이라도 입에 대어야 귀가 밝아지며 나쁜 소리는 물러가고 좋은 소리만 들린다 하셨고, 고춧가루를 넣은 음식을 먹으면 땀띠가 많이 난다고 하시며 나물 등 어떤 음식에도 넣지 않으셨다. 시래기 무침은 구설수를 없애며, 두부는 일 년 내내 살이 빠지지 않는다 하셨다. 하나하나 말씀을 해주시면서 보름 밥상을 정성스레 차리셨다. 


 보름날 아침에는 할머니를 도와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바로 김 굽기였다. 아이들은 보름 음식 중에 묵나물보다는 김을 더 좋아했다. 할머니는 김 한 톳을 내주시며 “한 스무 장쯤 구워라” 하셨다.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소나무 잎을 묶어 만든 기름 붓으로 기름소금을 적당히 발라 화롯불에 굽는다. “할머니! 김에 재가 묻어요.” “괜찮아. 재는 나라님도 드신대.”라며 웃으셨다. 


 잘 구운 김은 색깔이 진한 보라색에서 연초록으로 변하면서 향기로운 바다 내음과 김 만의 향긋함을 풍겼다. 네 장 정도의 김을 세로로 한 번 자르고, 겹쳐서 세 등분을 하면 끝이다. 동생들이 쪼그리고 앉아 침을 삼킨다. 평소에는 네 등분을 하였는데, 오늘은 특별히 세 등분을 하여 훨씬 크고 맛있어 보인다. 자른 김을 한 장씩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면, 고개를 젖히고 작은 입을 한껏 벌리느라 눈까지 부라리며 두 손으로 밀어 넣는다. 


 할머니께서는 아침에 갈아입으신 정갈한 옷차림으로 윗목에 차려 놓은 밥상 앞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단정하게 앉으셨다. 두 손을 모아 자손들 잘되게 해 달라고 비셨다. 자손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조왕신께 비손 하시는 할머니의 쪽진 머릿결이 단아하고 고왔다. 곧게 폈던 허리는 연세가 많아 곧 굽지만, 비손 하시는 모습은 얼마나 진지하고 간절하던지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렵도록 엄숙했다. 아랫목에 얌전하게 앉아 할머니의 기원하는 뒷모습을 보았다. 


 평소에 외우시던 불경도 암송하시고, 가족들에 대한 소원을 빌기도 하셨다. 할머니의 비손에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맨 먼저 직업 군인이셨던 아버지의 건강과 성공을 간청하시고, 다음에는 큰 손자인 내 이름 ‘석일’을 부르시며 ‘건강하고 공부 잘하여 큰 인물이 되도록 도와줍시사’ 하고 소원을 간구하셨다. 이어서 동생들을 위해서도 사랑을 듬뿍 담아 비셨다. 제일 어른이신 할아버지와 당신은 연세가 많으셔서 맨 뒤에 빌었으리라. 이게 할머니의 자손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 나는 내리사랑이다. 어렸을 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불러 주셨던 ‘석일’이라는 이름이 나는 지금도 좋다. ‘석일’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께서 지어 불러 주셨던 아명이었다.


 할머니는 소원 빌기가 끝나면 밥상을 돌려놓고 다른 그릇에 나물이며 오곡밥 두부 등을 조금씩 덜어 담으셨다. 그 음식을 들고 대문 밖으로 가셔서 한쪽에 짚을 깔고, 가져가신 음식을 소복하게 놓아두고 오셨다. 개나 까치, 까마귀, 쥐 등의 짐승들이 먹을 양식이다. 늦가을에 감나무에 매달린 붉은 감을 까치밥이라 하고, 산소에 가서 또는 소풍을 가서, 굿을 할 때 귀신 먹으라고 고수레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풍습일 것이다. 귀신은 안 먹고 들짐승들이 먹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이어져 온 것은 자연을 숭배하는 관습이 아닐까? 이 날은 개에게는 밥을 안 준다. 이런 음식을 먹으라는 얘기일 것이다. 


 보름밥상으로 배불리 먹고 나면 나는 밖으로 나간다. 앞집 대문 앞에 가서 “경수야! 놀자! 경수야!” 하고 큰소리로 친구를 부른다. 경수는 문을 열고 나오며 “니 더우 내 더우 맞 더우”한다. 나는 화가 났다. 나도 그냥 “니 더우 내 더우 맞 더우”하고 맞고함을 질렀다. 내가 불렀으니 내가 더위를 팔아야 하는데 약삭빠른 경수는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더위를 팔려고 애를 쓰지만 아무도 당해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떤 나보다 어리숙한 친구가 ‘어~~!”하고 대답을 할라치면 반갑고 신이 나서 “더 큰소리로 “니 더우 내 더우 맞 더우”하고 소리를 지르고 집으로 뛰어와서 할머니에게 더위를 팔았다고 자랑을 하였다. “어이구 잘했네”하시며 등을 토닥여 주셨다. 해마다 보름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 오늘 아침에 오곡밥은 드셨어요? 김은 누가 구워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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