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e Sep 10. 2022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 나의 비전

인도에서 시작된 나의 비전

인도 뉴델리 인근 구르가온에서 초등학교과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해외 파견 주재원이셨고 굉장히 큰 평수의 집에서 살았다. 아파트 같은 층의 이웃은 Kingfisher 항공사의 임원이었다. 나는 동생과 함께 매일 아침 학교 유니폼을 입고, 운전기사가 운전해주는 차에 타서 학교에 갔다. 학교에 다닐 때마다 지나는 길과 횡단보도가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소, 개, 양떼도 다니고, 자동차 유리창을 똑똑 두드리며 구걸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창문을 두드리자 운전기사님이 창문을 내려서 10 Rupee (당시 2000원 정도)를 주었고 창문을 다시 올렸다. 그러자 신발을 신지도 않은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우리 차의 창문을 두드렸다.


매일 그 창문을 넘어 빈부격차를 몸소 느꼈다. 무더운 여름날 나는 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갔고, 창문 밖의 아이들은 신발조차 신지 않은 채 하루 몇 천 원을 벌기 위해 구걸을 했다. 그리고 아파트 베란다를 넘어서도 빈부격차를 경험했다. 살던 아파트 바로 뒤편에는 판잣집과 공사현장이 있었다. 지금 구르가온은 인도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릴 만큼 많이 발전했지만 예전에는 허허벌판이었고 공사현장이 많았다.


인도에서 살면서 빈부격차와 교육에 대해서 늘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나는 일기장에 나의 꿈을 적었다. “나는 대학교 총장이 될 거야.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에 학교를 지을 거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거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중학교는 뉴델리에 있는 미국 국제학교를 다녔다. 여전히 나의 꿈은 변함없었다. 중학교 졸업 프로젝트 주제를 “Women’s Education and Empowerment”로 정하고 Hope Foundation 교육단체 담당자분들 뵙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델리 티그리 슬럼가에 가서 Hope School도 방문하였다.


티그리(Tigri) 슬럼가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크게 펼쳐진 판자촌이 있었다. Hope School은 초등학교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1달에 1달러 정도 지불하고 학교를 다니고 점심도 먹곤 했다. 하지만 어린 여자아이들의 경우 4-5학년만 되면 학교를 그만두었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내가 학교를 짓는다면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와 직업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귀국한 후 고등학생이 되면서도 여전히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토요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이수하며 “교육과정의 빈번한 개정”에 대한 소논문 및 “제2외국어 교육의 발전방안”에 대한 소논문을 작성했다.


고등학교 TED발표대회에서 나는 적정기술을 접목한 교육과 난민촌에 이동식 학교를 짓고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발표를 했다. 당시 대회에서 심사를 하신 교장선생님께서는 내가 대학생이 되어 고등학교에 방문했을 때 나의 TED발표가 매우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사범대 영어교육과에 진학하면서 꿈이 더 구체화되었다. 근본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기의 보급과 저소득층을 위한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가정의 형편과 관계없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여겼다. 가난은 대를 잇지만 교육으로 그 가난의 굴레는 끊어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나는 “학교를 짓는 것”이 교육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19를 맞이하며 학교를 가는 것보다는 “교육 자체에 대한 접근(Access to quality education)”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도의 가난한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니 일터로 보내졌다는 글을 읽은 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디지털 기기의 보급과 더불어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중요할 것이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교육이다. 나의 비전을 향한 첫걸음은 에듀 테크로 정했었다. 첫 직장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영어교육 스타트업으로 정하고,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며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일에 기여했다. 데이터뱅크에 지원했던 이유는 “기술로 교육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라는 회사의 비전이 내가 어렸을 때부터 품은 비전인 “교육으로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라는 비전과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교육기업이 아니라 IT 솔루션 기업에서 일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다른 의미로 격차를 해소하는데 기여할  있을  같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나에게 먼저 주어진 기회들을 다른 이들에게도 경험할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스타트업이 나랑 맞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