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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 여행자 이주현 Mar 11. 2024

설국의 온천에서 사케를 즐기다

2024. 3. 9. 니가타 사케&온천 투어 1일차 - 사케노진, 유자와

2018년 3월에 이어 두 번째 여행이다. 일본 최고의 쌀과 사케를 자랑하는 곳, 니카타.  

그리고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로 시작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이 된 곳 유자와.

한번 갔던 여행지를 다시 찾는 건 드문 일이다. 아직은, 내가 모르는 세상의 어딘가를 찾아 떠나는 게 더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는 편이라서.


6년 전 막 새로운 인연을 맺기 시작한 여행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이번엔 20년이 넘은 오랜 벗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서울에서 2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를 날아오면, 단돈 3만원에 셀 수 없는 종류의 사케들을 맘껏 마실 수 있는 신비한 경험을, 3월초임에도 1미터 가까운 눈이 쌓여있는 곳에서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꽉 찬 행복감을 벗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2018년에 처음 찾았던 유자와. 3월인데도 눈이 엄청 쌓여있는게 신기했던 기억. 


니카타는 서울의 정동 쪽 정동진에서 고스란히 정동 쪽에 위치한 곳으로, 재일 조선인을 귀환시키던 만경봉호가 북의 원산항을 오가던 항구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은 아득히 느껴지는 오래전 이야기지만.

일본에서 가장 좋은 쌀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곳이고, 그래서 쌀을 주원료로 하는 사케를 빚는 양조장도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도 고급 사케로 잘 알려진 구보타, 핫카이산 등이 니카타현의 사케들이다.


매년 3월 초 주말 이틀 동안 진행하는 사케노진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사케노진은 니카타현에 있는 사케 양조장 중 80여 곳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이 빚은 다양한 술을 선보이는 일본 최고의 사케 축제다. 우리로 말하면 코엑스몰 같은 행사장에 각 양조장마다 차린 부스가 가득 차 있고, 입장객들은 작은 사케잔 하나를 들고 돌아다니며 3시간 동안 맘껏 시음을 할 수 있다. 물론 한쪽에선 즉석 안주를 팔기도 한다.


2024 사케노진 행사장을 가득 메운 인파
한쪽에서 펼쳐진 미스 사케 선발대회(?). 어딜 가나 닮은 풍경 가운데 하나


한정된 시간 동안 마음에 드는 사케를 찾아내는 숙제를 풀고자 하는 이들과 자신들이 빚은 술에 대한 자부심으로 맘껏 대접하는 이들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꽤 볼만하다. 두어 시간쯤 계속해서 시음을 하다 보면, 다들 취했을 법도 한데, 대부분 살짝 달아오른 얼굴과 기분 좋게 취해서 조금은 커진 목소리가 오가는 정도일 뿐, 지나치게 취해 진상을 부리는 이들은 거의 없다.


나도 바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최대한 많은 종류의 사케를 맛보려는 욕심이 앞서다 보니, 유독 긴 줄이 서있는 구보타 같은 곳은 그냥 지나친다.


사케에 대한 지식은 별로 깊지 않다.

준마이는 쌀, 누룩, 물만을 이용해서 만든 술이고. 뒤에 다이긴죠가 붙으면 쌀의 50% 이상을 깎아내고 술을 빚은 거고. 긴죠는 40%를 깎아냈다는 것. 카라구치는 살짝 매운 맛이 돌고, 아마구치는 단맛이 돈다.

그래서 흔히 준마이 다이긴죠를 가장 고급 사케로 칭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미끈하고 부드러운 맛이 한국인들에게는 너무 밍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 정도?


받아든 작은 잔 하나만 들고다니면, 다양한 사케들을 마음껏 시음할 수 있다. 
니가타 산 사케중 하나인 미도리가와. 2018년엔 이게 제일 입맛에 맞았는데 이번엔 또 다르다. 


이번 사케투어를 오면서 다시 한번 유튜브로 기본적인 걸 공부하고 왔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

젠장, 이게 이거 같고 저게 저거 같고. 내 입과 혀는 술맛 구분엔 도통 재주가 없나 보다.  

그러면 어떠한가. 술이 있고, 안주가 있고, 사랑하는 벗들이 있는데.

세 시간을 꽉 채워 실컷 즐겼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일행들을 태운 버스는 유자와를 향해 달린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휴게실. 6년 전에 왔을 땐 1미터가 넘는 눈이 쌓여있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그리 많지 않다.

다시 유자와를 향해 달리는 버스. 긴 터널을 지나고 나니, 눈이 부쩍 많이 쌓인 풍경이다. 이 터널이 소설 '설국'에 나오는 그곳이길 순간 바라보건만, 아니란다. 소설에 나오는 터널은 남쪽에서 북쪽, 군마현에서 니카타현을 넘어오는 경계에 있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그리 크지도 않고, 그리 작지도 않은 료칸식 호텔이다. 왠지 눈에 익다 했더니, 6년 전 더 큰 호텔에서 머물렀을 때, 마을 산책을 하다 들어와 노천탕을 잠시 즐겼던 그곳이다. 혼자였으면 긴가민가 했을 텐데, 당시 함께했던 일행이 맞다고 한다. 누군가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건 든든하고 넉넉해지는 일이다.


2024. 3. 9. 유자와 숙소. 알고보니 2018. 3. 노천탕에서 온천을 즐겼던 그 곳


이자카야에서 해산물을 구워 먹고, 나마비루와 하이보루를 나눠 마시고, 따뜻한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첫날밤을 마무리한다. 사케와 설국의 온천에 취한 하루가 이렇게 간다. 내일은 니카타의 맛있는 쌀로 지은 밥을 제대로 먹어볼 수 있을까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2일차. 유자와 마을 산책과 핫카이산 양조장 이야기로 곧 다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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