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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이 Dec 06. 2024

<코만도> Commando, 1985

너무 강력한 사나이


평론가들은 911 테러가 헐리우드식 액션영화의 종말을 이끌었다고 말하곤 한다. 

현실의 비극적 재앙을 겪은 미국인들에게 더이상 '액션 히어로'는 있을 수 없었고, 

<우주전쟁>의 레이나 <제로 다크 서티>의 마야,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의 케이트처럼

영웅의 자리를 강요받는 피해자들이 히어로의 자리를 대체했다. 

물론 제이슨 본의 활약을 필두로 이단 헌트나 제임스 본드가 분투하고, 

레전드 킬러 존 윅이 포스트 모던한 액션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지만

고전적인 액션영화가 부활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이젠 어마어마한 재력이나 첨단과학의 산물, 혹은 약물의 도움이나 태생적 강인함을 가진 자들이 히어로, 

그것도 '슈퍼히어로'라 불리며 액션영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슈퍼히어로 장르조차 <킥애스>와 <더 보이즈>를 통해 수정주의의 실험대가 된지 오래다. 

순수한 액션영화의 시대는 이제 끝나버린 것이다. 

주말의 명화도 사라진 지금, 

당대의 사랑을 받았던 액션영화들은 OTT의 구석자리나 

영화 애호가들의 블루레이 선반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영화들은 결코 말라비틀어진 화석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 관객들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들었던 그 파괴적인 힘을 그대로 간직한 채, 

누군가 다시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1985년작, <코만도>다. 

인간병기라 불렸던 남자 존 매트릭스(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산속의 오두막에서 딸 제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남자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법. 

제니는 괴한들에게 납치당하고, 납치범들은 매트릭스에게 남미의 한 대통령을 암살해달라고 요구한다. 

그의 전투력을 이용해 쿠데타를 일으킬 속셈. 

금지옥엽 딸이 잡혀 있으니, 매트릭스는 별 수 없이 남미행 비행기에 오른다. 

여기까지 납치범들의 계획은 완벽했다. 

딱 하나, 하필 건드린 게 액션영화 사상 최흉의 주인공이라는 점만 빼면. 

<코만도>의 존 매트릭스에 비하면 람보나 존 윅, 제이슨 본은 너무 인간적이라 측은할 지경.

존 매트릭스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1년 전에 연기했던 살인병기, 

'터미네이터'를 의식하고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는 맨손으로 사람의 목을 비틀고, M60기관총을 한손으로 난사하며, 공중전화부스를 뽑아(?) 던지기도 한다. 

결국 납치범들이 한 짓은 고질라의 새끼를 납치한 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남은 것은 재앙 뿐. 

이 영화의 카피는 '하늘이 그들을 돕기를!'이고, 그들이란 물론 불행한 납치범들이다. 

근육은 우람해도 연기력이라곤 형편없는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코만도>에서도 사실상 한가지 표정으로만 일관하고, 

그 덕에 존 매트릭스는 딸이 납치당해도, 적들에게 포위당해도, 경찰에 붙잡혀도

아무런 동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딸을 찾는 터미네이터'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남미행 비행기에 오른 존 매트릭스는 동승한 감시자의 목을 꺾어버린 뒤(거의 카이로프랙틱의 창시자 수준),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린다. 

비행기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번 그는 납치 가담자들을 찾아내 하나씩 비틀어 죽인다. 

그는 중요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가담자 한 놈을 절벽 위에서 거꾸로 들고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겁에 질린 가담자가 정보를 실토하곤 "말했으니까 살려줄거지?"라고 되묻자, 

아놀드는 그 바보같은 영어 발음으로 "거짓말이었어"하곤 가차없이 절벽으로 던져버린다. 

그는 마침내 딸이 있는 곳을 알아내지만, 

그곳은 수십 명의 중무장한 병력이 지키고 있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최후의 결전이 기다리는 것은 당연지사. 

물론 장비는 전직 터미네이터답게 총포상을 털어서 마련한다. 

아놀드의 사연을 알고 그를 도우려는 한 여자의 조력은 덤인데, 

이 여자는 경찰에 잡힌 아놀드를 돕기 위해 

그가 호송되는 경찰차에 로켓포를(???) 발사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타고 있는 걸 알면서 쏘는거다. 

난 이 여자도 누군가한테 매수된 암살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놀드는 반파된 차량 안에서 태연히 걸어나오는 것은 물론이다. 

아무래도 이 세계엔 상식이나 공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경찰도 길냥이와 비슷한 취급이다. 

<코만도>의 시나리오 작가는 아놀드가 주인공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신났을까? 

현실성이라곤 1도 필요 없으니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코만도>는 걸작이라 할만한 영화는 아니다. 

스토리는 침팬지가 봐도 이해할 수준이고, 영화의 완성도는 실소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권총, 기관총, 로켓포 등의 첨단 화기로 시작해 창과 칼 등의 냉병기로 거슬러 오르며

문명의 퇴행을 표현한 액션 소도구의 활용은 주목할만 하며, 

일말의 스트레스도 없이 주인공의 일방적 학살극을 펼쳐낸다는 점에서는 

현대의 먼치킨물이 탄생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음을 짐작케 한다.

형편없는 완성도와 철저히 무너진 현실성에서 비롯된 키치적인 감수성, 

무지성 서사와 대척점을 이루는 입체적 서브텍스트, 

그리고 아놀드의 터프한 근육과 처참한 연기력. 

그 절묘한 대비들로 인해, 이 영화는 아직까지도 유튜브 등지에서 컬트적인 인기로 살아남아 있다. 

야만의 80년대를 되새기게 만드는 강렬한 흔적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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