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머니 Mar 15. 2024

49년생 딸이 생겼습니다

저 여인은 49년도에 남해에서 태어났다. 아들 다섯 중에 하나뿐인 딸이라 그 시절에도 아버지의 예쁨을 받았다. 고등교육도 받고 대학도 보내주겠다는 걸 공부하기 싫다고 도망갔단다. 공부는 진짜 싫었기에 딸 둘을 키우면서도 공부하란 소리를 안 했다

.

.

.

.

49년 생 여인이 낳은 딸은 훗날 작가가 되었다. 어려서는 동네 애들 다 패고 다니고 공부 못하고 시커멓고 말라서 볼품없어 늘 자기 딸이 아닌 척 멀리 떨어져 걸었던 딸이라고 했다. 작가가 되었다니 키우면서 한 번도 안 한 칭찬을 했다. 너는 역시 나를 닮아 똑똑하고 잘난 아이라며 치켜세웠다

.

.

.

.

딸은 49년생 여인의 안부를 묻다 점심이나 먹고 마트 가자고 했다. 12살 딸과 방학 내내 같이 다니며 시중을 들다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는 매일 혼자 먹을 텐데, 엄마도 먹고 싶은 거 있을 텐데 싶어서 시간을 내서 밥을 먹자고 했다. 여인은 안 그래도 피자 먹고 싶었는데 혼자 시켜 먹기엔 많았다며 고르곤졸라 피자, 명란크림파스타 먹자고 했다. 대학가 레스토랑에 여인이 들어가자 단 번에 손님 평균 연령이 높아졌다

.

.

.

.

메뉴 고르며 설레하고, 입에 맞다며 좋아했다. 12살 우리 딸이 그랬듯 맛있는 거 나랑 같이 먹어서 좋다 했다. 다 먹고 커피 사준다며 카페로 가더니 마카롱 4개를 골랐다. 우리 손주들 갔다 주라며 본인 카드로 결제했음을 꼭 알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마트로 갔고 필요 없다, 필요 없다던 홑겹 바람막이 잠바 18만 원짜리 샀다. 필요 없다고 한 건 내가 고른 6만 원짜리 잠바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잠바가 딱 몸에 감긴다며 18만 원짜리 잠바는 입고 가고 싶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

.

.

.

점심 먹고, 옷 사주고, 장 봐주니 몇 십만 원을 금방 썼다. 돈 많이 써서 어쩌냐며 걱정하면서도 잠바 만지며 비싼 옷이 역시 좋다며 웃었다. 여인을 집 앞에 내려주고 오면서 나는 울었다. 겨우 몇 십만 원을 썼는데 잠깐 몇 시간을 같이 있어줬는데 저렇게 좋아하며 아이처럼 기뻐하는 게 미안했다. 친구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이 사준 잠바 입고 꽃 보러 가자고 하길래 더 비싼 거 사줄 걸 후회했다. 여인이 내 옆에서 건강하게 지낼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내가 낳은 아이만 귀하고 소중해서 나를 낳은 여인을 모른 척하고 사는 나는 여인의 나이가 되면 어떤 마음으로 살게 될까?

.

.

.

.

집으로 돌아와 내가 낳은 아이들을 맞이하며 활짝 웃었다. 딸이 되어버린 49년생 여인에 대한 마음은 잊고 아이들 씻기고 웃으며 안아주며 하나라도 더 해주지 못해 동동거렸다. 지금쯤 나의 49년생 딸은 혼자서 저녁을 먹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고 우리 식구의 저녁을 차리고 맛있게 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숨은 할머니 소원 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