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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Nov 09. 2024

계산대에서 만나는 과학-3

슈퍼마켓에 간 과학자

슈퍼마켓에 간 과학자

계산대에서 만나는 과학-3

박용기(KRISS 명예연구원, 맛있다 과학 때문에 저자)



매장을 둘러보면서 필요한 상품들을 카트에 담은 후 계산대 컨베이어 벨트에 구매할 물건들을 올려놓으면서부터 계산이 끝나고 매장을 나오기까지 계산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에 과학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과학 기술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계산대에서 만나는 과학 그 세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계산을 마치고 계산대를 빠져나오면서 통과하는 게이트가 있다. 그런데 게이트를 지나다가 갑자기 경보가 울려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러면 계산원이 다시 들어오게 해서 무언가를 조작한 후 다시  나가면 경보가 울리지 않게 되는 경험을 한 두 번쯤은 했을 것이다.  경보가 울리는 이유는 상품에 부착되어 있던 도난 방지 태그나 레이블이 제대로 제거되거나 비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에서 도난의 실태

2023년 9월 미국의 대형 소매유통업체인 타겟(TARGET)이 도난 범죄로 인해 손실 규모가 커지자 주요 도시 매장 9개 지점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타겟은 절도 증가로 인해 2023년에 5억 달러(한화 약 6500억 원) 이상의 손실을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도난 사건으로 인해 매장 폐쇄 결정을 선택한 것은 타겟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월마트, 노드스트롬, 월그린 등 다른 소매업체들도 도난 범죄로 인해 일부 매장 문을 닫아야만 했다. 미국의 전국소매연맹(NRF)은 2022년 도난 등으로 인한 손실만 1121억 달러(한화 약 150조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러한 도난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의 경우 2022/23년 동안 영국과 웨일스에서 발생한 절도 사건은 약 342,343건으로, 2021/22년의 247,999건에서 급격히 증가했다. 현재 생활비 위기와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인해, 슈퍼마켓에서의 절도는 전년도에 비해 약 24% 정도 급증했다고 한다. 프랑스 또한 도난 사건이 최근 14%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확한 통계는 없다. 대형마트마다 절도액수 및 관련 품목에 대한 자료는 대외비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인 2007년 6월 경인일보에 보도된 기사에 의하면 A대형마트 수원지점의 경우 1일 평균 손실액은 80만 원을 조금 넘었다. 또 B마트 부점장은 “반기별 재고조사  발생하는  5000만 원 손실  파손, 납품누락을 제외한 70%쯤은 절도에 의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연매출의 0.2~0.3%에 달하는 수치다. 


그렇다면 슈퍼마켓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상품들은 어떤 것들일까? 미국의 경우 포장육류, 면도날, 주류, 화장품, 치즈, 브랜드 데오드란트, 배터리, 의류 액세서리, 커피, 아기옷, 청바지, 향수와 향수 제품 등이 도난의 주요 타깃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앞에 언급한 경인일보 기사에 의하면 금액기준으로는 잡화가 가장 많았고, 가전제품, 완구, 음료, 즉석조리식품이 2~5위를 기록했다. 반면 발생건수 기준으로는 애완동물식품이 1위를 차지했고, 완구, 가정관리용품, 담배가 2~4위였으며, 속옷이 5위였다.


그래서 슈퍼마켓 등에서는 도난에 의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도난 방지 방법이 고안되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보다 정교한 도난 방지 시스템을 가지게 되었다. 





도난 방지 시스템의 초기 역사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로마와 같은 고대 문명에서부터 상인들은 상품과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귀중품을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고 경비원을 이용해 보호했다. 근대에 들어 산업 혁명으로 대규모 생산이 증가하고 백화점이 설립되면서 보안 문제가 더 중요해졌다. 상인들은 도난 방지, 출입 통제, 점포 내 질서 유지를 위해 보안 인력을 고용하기 시작했으며, 자물쇠나 금고와 같은 기계식 보안 장치도 널리 채택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기술의 발전에 따라 도난 방지를 위한 보안도 혁신되었다. 1940년대에 도입된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 시스템은 상시 감시를 통해 도난 심리를 억제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1960년대에 개발된 EAS(전자 상품 감시) 시스템은 획기적으로 소매업체들이 도난으로부터 상품을 보호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전자기술의 발전은 최근 몇 년 동안 소매업계에 혁신적인 보안 설루션을 제공하게 되었다. 비디오 분석, 생체 인식 시스템, RFID 기술, 고급 출입 통제 시스템 등이 보안과 도난 방지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게 되었다. 

 

1964년 미국 오하이오주 애크런에 있는 한 슈퍼마켓의 매니저였던 로널드 아사프(Ronal Assaf)는 한 남성이 와인 두 병을 셔츠 속에 숨겨 도망치는 것을 목격하고 그를 쫓았지만 도둑을 잡지 못했다. 가게로 돌아온 그는 도둑을 막을 방법을 찾아내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사촌 잭 웰치(Jack Welch)는 몇 주 후 61 cm (2 피트) 크기의 정사각형 종이판에 은박 태크를 붙이고 차고에서 조립한 전자 부품이 들어 있는 큰 상자 몇 개를 들고 가게로 돌아왔다. 그는 이 상자들 사이로 태그를 가지고 나가려고 하자 경보가 울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웰치는 이미 전자 태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촌의 말을 바로 구현할 수 있었다. 이후 몇 년 뒤, 아사프는 센소매틱 일렉트로닉스 코퍼레이션(Sensormatic Electronics Corporation)을 설립했고, 이 회사는 현재 전 세계 전자 보안 시장의 65%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발명가인 아서 미나시(Arthur Minasy)는 슈퍼마켓의 상품에 부착할 수 있는 라디오 주파수(RF) 기술을 기반으로 한 EAS(전자 상품 감시) 태그를 발명해 1965년에 특허를 출원했고, 1970년에 특허를 획득함으로써 공식적인 EAS 태그 발명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노고(Knogo)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때부터 도난 방지 EAS 태그가 처음으로 소매업체에 널리 마케팅되기 시작했다.





전자 감시 시스템 (EAS) 

EAS는 Electronic Article Surveillance(전자 상품 감시)의 약자로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상품에 자기 방어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상품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도난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전 세계적으로 소매업계의 90%가 도난율을 줄이기 위해 EAS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EAS 시스템은 탐지기, 비활성화 장치, 그리고 전자 태그 등 세 가지 주요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 태그는 소프트 태그와 하드 태그의 두 종류가 있다. 소프트 태그는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으며 표면에 부착이 용이한 상품에 직접 부착된다. 하드 태그는 의류 등에 부착되어 있는 크고 딱딱한 태그를 말하며 주로 부드럽고 핀으로 침투해도 제품 손상이 없는 경우에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소프트 태그는 저렴하지만 재사용할 수 없고, 하드 태그는 비싸지만 재사용이 가능하다. 하드 태그는 계산이 끝난 뒤 카운터에서 네일 리무버라는 특별한 장치로 쉽게 분리되어 제거할 수 있다. 소프트 태그는 디코더라는 비접촉 장치로 비활성화시키게 되는데, 디코더는 계산대의 특정 부분에 설치되어 있어 태그가 달린 상품을 그 위로 통과시키면 비활성화되거나 바코드를 인식할 때 디코더도 함께 작동하여 비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의류 등을 사면 계산원은 옷에 붙어 있는 EAS 하드 태그를 특정한 장치에 놓고 핀을 제거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드 보안 태그 내에는 센서와 함께 쇠구슬과 철제 링 그리고 스프링이 들어 있는데, 보안 태그에 핀이 삽입되면 구슬이 핀에 있는 홈에 들어가게 되고 동시에 쇠구슬은 스프링의 압력으로 인해 철제 고리에 의해 단단히 고정되게 된다. 따라서 태그의 핀을 단순히 힘으로 뽑는 것은 매우 어렵다. 계산대에 있는 장치에는 강력한 자석이 있어 태그를 가져가면 자석이 철제 링과 쇠구슬을 강하게 당겨 스프링의 탄성을 이기고 쇠구슬이 핀의 홈에서 빠져나가게 되어 핀이 쉽게 제거될 수 있게 된다. 





계산이 끝나고 매장을 나오는 장소에는 일반적으로 게이트와 같은 것이 있는데 여기에 안테나 혹은 태그 감지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EAS 태그가 제거되거나 비활성화되지 않은 채 이 게이트를 통과할 경우 태그와 안테나 혹은 감지 장치가 상호 활성화되면서 경보를 울리게 된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EAS 시스템

EAS시스템은 사용되는 기술에 따라 네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즉, RF(Radio Frequency, 무선 주파수) 방식, 음향 자기 방식(Acousto-Magnetic, AM), 전자기 방식(Electromagnetic, EM), 그리고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무선 주파수 식별) 방식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중 RF 방식과 음향 자기 방식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전 세계 시장에서 약 52%의 EAS 시스템이 RF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약 30%는 음향 자기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RF 방식의 EAS 시스템은 전자기파와 전기 공진 현상을 활용하여 태그의 존재를 감지하는 기술이다. 매장 출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송신기는 8.2 MHz와 같은 특정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방출한다. 사용되는 주파수가 8.2 MHz로 단파 라디오 방송 주파수 대역이기 때문에 RF(라디오 주파수) 방식이라 불린다. 송신기는 지속적으로 특정 주파수의 전자파를 송출하면서 게이트 영역 내에 비활성화되지 않은 RF 태그가 있는지 감시한다. RF 태그나 라벨 내에 있는 센서는 고리 모양의 작은 전기회로(전기 공진 회로)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기장에 들어가면 공진 회로가 전기파를 감지하여 공진점에서 공진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전기장이 순간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 변화를 수신기가 감지하고 경보를 울리게 된다. 


RF 방식은 EAS 도입 초기부터 사용되어 오던 방식인데 한 가지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태그 부분을 몇 겹의 알루미늄 포일 등 금속으로 감싸게 되면 비활성화되지 않은 태그라도 전자파가 차단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특징을 이용해서 도둑이 내부에 알루미늄으로 커버된 특수한 가방에 상품을 넣고 계산을 하지 않은 채 출구 게이트를 통과해도 경보가 울리지 않게 된다. 또한 민감하지만 때로는 오작동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1980년대에 개발된 방식이 음향 자기(AM, acousto-magnetic) 방식이다. 음향 자기 라벨이나 태그 내에는 자성 비정질 금속 스트립과 바이어스 자석 스트립이 상하로 배열되어 있다. 비정질 금속 스트립은 자기장에 따라 크기가 미세하게 변형되는 성질(magnetostriction)을 가지고 있다. 도난 방지 게이트의 송신기에 감겨있는 안테나 코일에 교류 전류가 흐르면서 게이트 내에 자기장이 형성된다. 음향 자기 도난 방지 시스템의 송신기는 약 58 kHz의 주파수로 교류 자기장을 주기적으로 방출하는데, AM 태그가 이 자기장에 노출되면 태그 내부의 비정질 금속 스트립은 자기장의 변화에 따라 신장과 수축을 반복하며 자기장의 주파수와 공진하면서 진동하게 된다. 이 진동은 태그 내의 자기적 특성을 변화시키고 수신기는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감지된 신호의 주파수, 반복률 등이 미리 설정된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시스템은 경보를 울리게 된다. 한편 바이어스 자석(Bias Magnet) 스트립은 비정질 금속 스트립에 일정한 자기장을 제공함으로써 태그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기장 환경을 만들어준다. 즉 바이어스 자석이 자화 되어 있을 동안은 비정질 금속 스트립이 송신기의 신호에 강하게 반응하게 만들어 태그가 감지될 수 있도록 한다. 만일 이 바이어스 스트립의 자성을 제거하면 비정질 금속 스트립은 안테나의 교류 자장에 거의 공진하지 않게 되어 비활성화된다. 그러므로 계산대에서 계산이 끝난 상품에 부착된 AM 태그나 라벨은 외부의 자석으로 이 바이어스 스트립의 자성을 소거하여 비활성화시키게 된다. 


‘음향 자기(Acousto-Magnetic)’라는 명칭은 이 시스템이 소리굽쇠가 같은 진동수의 음파와 공진하는 것과 유사하게 같은 진동수의 자기장에 진동하면서 작동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음향 자기 시스템의 장점은 높은 도난 방지 감지율과 거의 제로에 가까운 오경보, 금속 포일로도 차폐되지 않는 특성 등을 들 수 있다. 


외관상으로 보면 슈퍼마켓 보안 도어가 RF 방식인지 음향 자기 방식인지 쉽게 식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용하는 소프트 라벨이나 하드 태그 형태가 달라 구별이 가능하다. RF 태그는 일반적으로 더 작고 평평하여 상품 내부 또는 상품 내에 쉽게 숨길 수 있는 반면, AM 태그는 공진 스트립 및 강자성 물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피가 큰 경향이 있다. RF 소프트 라벨은 보통 얇은 종이 타입이며, 흔히 사용되는 크기는 4x4 cm, 4x3 cm, 지름 4 cm의 원형, 19x65 mm의 길쭉한 형태다. RF 하드 태그는 대부분 정사각형 또는 원형이다. 반면에 음향 자기 소프트 라벨의 크기는 하나뿐이며, 4.5x1 cm 크기로, 단단한 플라스틱 껍질을 가지고 있다. 음향 자기 하드 태그는 주로 길쭉한 형태나 평평한 띠 모양으로 되어 있어 RF 하드 태그와 구별이 된다. 태그의 비활성화 방법도 차이가 있다.  RF 태그는 무선 주파수 신호를 사용하여 비활성화되는 반면, AM 태그는 강력한 자기장을 사용하여 비활성화된다. 


그 밖에 가장 첨단기술이라 할 수 있는 RFID(무선 주파수 식별) 방식도 있다. RFID는 상품의 정보까지를 담고 있으며 비교적 먼 거리에서도 상품의 식별이 가능한 첨단기술로 도난 방지 시스템으로도 활용되지만 그보다는 첨단 물류 관리 시스템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다음 칼럼에서 다루기로 한다. 


상품 계산을 다 하고 게이트를 통과하는 데도 경보가 울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기계의 오작동일 수도 있지만 계산원이 실수로 비활성화하지 않은 라벨이나 태그가 남아있을 경우나, 외부에서 가져온 물건에 제거되지 않은 EAS 라벨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EAS라벨이 붙어있는 줄 모르고 외국에서 직구로 구입한 옷을 입고 쇼핑한 후 계산대를 빠져나오다 경보가 울려 곤욕을 치른 사례도 보도된 적이 있다.  






* 사진 출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 <KRISS> 2024 가을호

* 이 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 <KRISS> 2024 가을호에 실린 제 과학 칼럼입니다.


글을 실어준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멋진 편집을 해준 '(주)홍커뮤니케이션즈'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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