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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다!

내 아이에게 맞는 방식 찾기!


엄마표 영어의 방식은 정말 너무나 많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유아였을 때에는 잠수네 같은 방식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했었다.

재밌고, 즐겁게만 해도 다 될 텐데 집중 듣기가 같은 걸 왜 해야 하고, 학습서를 굳이 왜 시켜야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국 교과서는 왜 할까, 미국 아이도 아닌데 미국 교과서까지 내가 집에서 해줘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 것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믿었던 것은 아이들이 영어를 좋아하게 되면서 조금씩 영어로 말하기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내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즐겁게 봐줬기 때문이었다. 날이 갈수록 영어 영상 보는 것을 즐거워했고 더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날이 잦아졌으므로, 이렇게 시간을 때우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게 내 고집이었고, 그게 내 방식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쉽게 읽을 줄 알았던 아이가 리딩이 더디면서 스스로 읽어서 단계를 올려야 하는 일에 차질이 생기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집중 듣기'였다.

진행하고 있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일이긴 했으나 아이도 슬럼프를 겪는 상황이었고, 진행하는 나조차도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강의도 듣고, 잠수네 책부터 다른 성공했다는 분들의 책을 처음부터 다시 한 권씩 읽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내 고집을 꺾고, 차근차근 집중 듣기를 시작했다.

조금 늦은 2학년 여름이 지나면서 집중 듣기를 시작했다. 아이는 집중 듣기를 하는 행위 자체를 버거워했지만 천천히 시간을 늘렸더니, 곧 초기 챕터로 진입했고, 3학년 때에는 3점대, 4학년 지금은 4점~5점대의 책으로 집중 듣기를 하고 있다.

아이는 생각보다 많은 단계를 스킵하고 다음 단계로 진입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는 들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할 정도로 인풋이 들어 찬 상태였기 때문이다. 밤마다 엄마가 읽어줬던 그림책에서, 매일매일 즐겁게 봤던 영어 영상에서 쌓았던 어휘들로 인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 상태였고, 그 덕분에 아이는 적응하는 과정에서는 힘들어했으나 그 과정도 금방 지나갔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데 때로는 누군가가 갔던 길을 따라가 보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향에 있어서는 엄마의 고집도 필요하다. 만약 내 고집 없이 누군가가 말해준 데로, 혹은 누구나 다 하는 방식대로 학원을 보내거나, 어린 시절부터 학습서를 들이미는 행위를 했다면 우리 아이는 진작에 나가떨어져 버렸을 것이다.

내가 주고 싶었던 영어는 들으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이해했으면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읽을 수 있으면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유치부에 듣기와 말하기에 목적을 두었고, 그 덕에 아이는 들을 수 있으니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이 아이가 유치부에 영어가 배워야 하는 또 하나의 과목이라고 인식했다면 지금처럼 즐겁게 영어를 할 수 있었을까?

학습서로 파닉스를 떼도, 미국 교과서로 영어를 가르쳐도 결국 영어는 잘하게 될 수도 있다.(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지만 나는 적어도 저학년까지는 영어가 이 아이들에게 배워야 하는 '과목'이 아니라 또 하나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내 방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답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이게 정답이다. 교육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다. 자신만의 교육철학이 빠져있다면 언제나 끌려다니기에 바쁘다. 다양한 방식을 알아두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엄마의 철학이 분명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목적'이 확실하면 '방법'을 찾는 일은 쉽다. 하지만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은 방법만 찾으러 여기저기 헤매다가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고 뒤늦은 후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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