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엄마의 감정기복
몇 달 전에 아이를 들어 올리다 허리를 삐끗했다. 통증이 며칠을 가도 가라앉지 않기에 물리치료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물리치료가 몇 달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다. 허리 통증 때문이냐고? 아니다. 허리는 그저 시작 신호였을 뿐이다. 통증은 허리가 조금 괜찮아지자 곧 어깨와 팔꿈치로 옮겨갔다. 아니, 이미 온 몸이 아팠지만 출산 직후 육아를 하느라 몸이 무리하기 때문에 당연히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아프면 참지 말고 병원엘 가야지'라는 생각이 든 것 뿐이다.
허리를 3주 정도 치료하다 의사 면담을 하면서 "허리통증은 많이 가라앉았는데 어깨와 쇄골, 그리고 팔꿈치 통증이 더 심하다"라고 말하자 바로 엑스레이와 초음파 촬영을 했다. 그 결과, 어깨는 염증이 석회가 되었고 어깨 근육이 탈구가 되어있었다. 팔꿈치엔 특이사항은 없었으나 근육의 과다 사용과 출산후 거북목(목이 엑스레이상 너무 예쁘게 일자로 찍혀있었다) 때문에 신경이 눌려서 통증이 있는 거라고 했다.
그럼 그걸로 끝났냐고? 아니다. 어깨와 쇄골, 팔꿈치를 치료하던 중 어느 밤에 갑자기 어딜 삐끗 한 것도 아닌데 발목에 심한 통증이 있어 응급실에 갔다. 골절은 없다고 하여 깁스만 하고 돌아와서 다음 날 다니던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찍었더니 왼쪽 발목은 인대가 파열되었고 오른쪽 발목은 뼈가 헐거워서 지금은 괜찮아도 앞으로 잘 못 관리하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또 물리치료 기간이 연장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얼마 전에 신랑에게 물리치료를 간다고 이야기 하고 집을 나서서, 문득 물리치료 보다 그저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어졌다. 병원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어딘가에서 받은 무료 음료 쿠폰을 사용하여 한 시간 정도를 앉아 있었다. 처음 몇 분은 휴대폰으로 책을 읽다가, 머리 속으로 '지금 우리 아들은 어떻게 있을까? 자고 있을까? 잘 놀고 있을까?' 등등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물리치료도 포기한 순간에도 아들 생각이 떠나지 않는 나를 마주했다.
그러면서 지난 한 주간 쌓였던 신랑에 대한 서운함이 물밀듯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지난 8개월간 아무리 말해도 개선되지 않는 그이의 습관은 결국 내게 일거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스트레스가 되었다. 앞으로도 그 습관은 고쳐지지 않을 것 같고 나는 늘 그렇게 스트레스 속에서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스치는 순간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우울감이 찾아왔다.
지나친 긴장의 연속은 과도한 코르티솔 분비, 그리고 불필요한 상황에서의 아드레날린 분비 등을 일으키고, 세로토닌 불균형까지 일으켜 수많은 정신과적 질환으로 이어지곤 한다. 엄마에게 가장 흔한 감정은 우울과 불안인데, 이러한 상태에 놓이면 이전에 느끼던 긴장감의 체감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한마디로 긴장이 긴장을 낳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이것 역시 엄마들에겐 흔한 일상이다.
엄마니까 느끼는 육아감정 / 정우열 中
사실 건강한 나였다면 웃어 넘겼을 정도의 스트레스였을 수도 있다. 신랑도 늘 "너 예전엔 안 그랬잖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도 안다. 불규칙한 수면패턴과 부족한 총 수면량, 불규칙한 식습관과 기타 등등의 이유로 인한 비만, 특히 예민하고 엄마 곁을 한시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는 우리 아들, 등등이 하나 둘 모여서 나는 지금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고 있다는 것을.
육아 우울증이 다른 우울증보다 위험한 이유는 엄마라는 특별한 상황 때문에 스스로 우울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고 나면 누구나 스스로가 늘 좋은 엄마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많이 있지만 우울하고 힘든 순간도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어떤 엄마는 적게 경험하고 어떤 엄마는 많이 경험할 뿐이다. 엄마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울증에 취약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하고 극복하는 처 단추이다.
엄마니까 느끼는 육아감정 / 정우열 中
카페에 앉아서 '엄마니까 느끼는 육아감정'이라는 책을 읽었다. 엄마들은 주변에서 "아이가 참 예쁘지? 행복하지? 너무 행복하겠다" 등의 말을 많이 듣는다. 물론 행복하다. 아이가 날 보고 싱긋 웃어 줄 때마다 나의 통증도 함께 가라앉는다. 아이가 울면 통증 따위 상관없이 엄마 출동이다. 어깨가 아파도, 팔이 아파도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불끈 불끈 한 팔로 아이을 안고 다른 팔로는 1리터 이상 든 전기포트를 기울여서 분유를 탄다. (신랑이 힘에 부치다고, 팔에 무리가 온다고, 혹은 그저 할 수 없다고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이제는 괜시리 화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육아를 하는 내가 우울하고 슬프다는 감정이 드는게 참 거북스러웠다. 엄마로서의 삶이 벌써 실패한 것 같아서, 좋은 엄마가 못 되는 것 같아서, 나의 얕은 인내심에 질려서...등등등
하지만, 이 날 나는 내 우울한 감정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생각의 저 끝까지 달려서 한껏 우울감을 느끼다 가까스로 나를 추스려서 집에 왔다. 그리고 결국 그날 밤 남편과 싸웠다. 밤에 산책을 나간다는 신랑이 집을 나선 후 대문을 향해 소리소리 지르며 욕을 했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손에 잡히는 물건을 집어 던지며 화를 냈다. 머리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 다음날 아침, 어제 나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 신랑이 나를 비꼬았다. 아침부터 우리는 또 말다툼을 했다.
문득, 부모님께 문자를 드렸다.
엄마는 애 키우면서 우울한 적 없었어? 왜 난 자꾸 우울하지?
아빠는 "네가 좀 외향적이고 적극적이라서 더 그럴거야. 집에만 갇혀있으니..... 수시로 마당에도 나가고 하늘도 보고... 라하랑 즐겁게 마실도 다녀오고 그러렴. 라하 크는 것도 잠시란다. 지금이 가장 행복할 때로 생각되는구나."라고 답변이 왔다.
엄마는 그 다음날이 되어서 "우울했었지 라고 회신을 줬다. 아이 미래와 건강만 생각하렴. 또 주님께 매달려야 해.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미사도 참석하고. 동영상으로라도... 성지순례 성인전도 읽고...다 네가 이겨내야 할 일. 잘 극복할 수 있어. 성모님께 매달리고. 엄마도 무척 힘들었다. 그때는 경제적으로도 너무 쪼들려서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지금 생각하면 참 외롭고 슬프게 지냈던 것 같아. 너희들 잘 키우려는 생각으로 이겨냈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적이 많았지만..."라고 답이 왔다.
엄마도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면서 그 때의 괴로웠던 감정을 다시금 느끼고 계신 것 같았다. 엄마의 답변을 읽자마자 그 시간의 우리 엄마를 끌어안아 주고 싶어졌다. 나도 모르게 우리 엄마가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났다. 지금 엄마들은 인터넷 덕분에 카페나 블로그와 같은 SNS나 줌을 통해서 다른 이들과 소통이라도 하며 외로움을 달래고 서러움을 토로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신랑들도 아무리 육아와 가사를 안 한다고 하더라도 그 때 그 시절 우리 아빠들에 비하면 참으로 훌륭하기 그지 없는데, 그 때 그 시절 우리 엄마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딸은 결국 그렇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가 되는 건가 보다.
내 첫 아이의 밝게 빛나는 웃음소리를 듣다보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엄마지만, 그래서, 엄마라서, 이제 막 엄마가 된 초보 엄마라서, 나는 지금 한편으로 매우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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