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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jestyy 언제나 Mar 12. 2021

기억의 힘을 두려워하라


내 고향은 전주다. 여행이나 다녔지 이사를 가거나 한 적 없이 고향에서 자랐기 때문에 지역감정이나 지방에 대한 개념이 크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그 세대 여느 어른들처럼 뉴스를 즐겨 보고 정치에 관심도 많았지만 우리에게 특별히 어떤 정보를 주입적으로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정당에 대한 개념도, 지역감정에 대한 개념도, 좌우 이념에 대한 개념도 교육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고, 직접적으로는 서울에 올라온 뒤에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인식도 많이 달라졌고, 이동도 더 원활하지만 20년 쯤 전만 해도 내게는 작지 않은 도시였던 전주는 서울사람들에겐 시골이라 불렸다. 당시에는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 멀었다. 불과 20년 전에도 이러했는데, 그 이전에는 어땠겠는가. 지척에서 일어난 일도 먼 곳에서 일어난 일로 치부되었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렇게 40여 년 전 광주에서는 아무리 크게 울부짖어도, 아무리 크게 구호를 외쳐도 닿지 않은 소리가 있었다. 서울을 기준으로 보면 지척인 듯하지만 내 고향 전주에서도 가까운 광주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더 가까웠던 지역 순천에서 살던 지인은 항간에 떠도는 말이 있었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총을 이대다니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광주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곳은 전쟁터였다. 민주주의의 최전방이었고, 목숨보다 자유를 위해 시청으로 향한 사람들의 각오와 투쟁의 울부짖음이 넘치는 현장이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육성으로 그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로부터 20년쯤이 지난 뒤,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지척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그저 교과서의 한 줄로 인식하고 넘어가게 된다. 절절히 그날의 아픔과 고통을 전달하려 한 역사 선생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성인이 된 이후에나 겨우 알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해 줬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어느 날 노래 한 소절을 부르겠다고 하며 민중가요를 불렀다. 민중가요인지도 모르고 그저 선생님이 노래를 부른다는 소리에 박수를 치며 좋아하던 여고생들은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숙연해진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처음 듣는 노래였다. 나중에 어느 가수가 리메이크해서 알게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왜 선생님이 저런 노래를 부르며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을까 궁금했다.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며 창밖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던 선생님은 어쩌면 눈물을 흘렸나보다.       


기억하고 있다     


5.18 전후로 광주에서는   건너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누군가가 희생되었고,  넋을 기리는 사람들이 남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남아 아이들을 가르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야간 자율학습마저 타율인  자율로 넘어가던 시점이라 자유로운 학창시절을 보내던 3시절, 가까운 도시 광주 3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선생님들이 우리를 독려했다. 광주 아이들은 이를 악물고 중앙에 진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너희들이 삼촌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이를 악물고 공부하는 아이들과 경쟁하는 것이라고. 요즘은 광주 민주화운동이라 많이 부르지 않지만 당시에는 항쟁을 운동이라 했다. 하나의 움직임에 불과한 듯이 낮춰 불렀음이리라. 하지만 아무리 낮춰 부르고, 없던 일로 만들려 해도 손으로 가릴  있는 태양은 세상에 없다. 당시로서는 세상에서 운동이라 낮춰 부른 일에 희생당한 억울함과 고통이 더욱 도시를 지배했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 되지 못한 기억을 자양분 삼아 더욱 이를 악물고 긍지를 높였을 것이다.      


2021년 오늘, 광주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만큼 상처는 오랫동안 아물지 못하고 상흔은 기억을 지배한다.      


미얀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적어도 우리는 알 것만 같은 일이다. 군부는 국민을 짓밟고, 통제하려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을 때, 인간성은 상실된다. 인간성은 사람의 노력이 없다면 절대로 성립되지 않는 가치다.      


당시 광주에 민주주의의 빚을 졌다면, 그래서 속죄를 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미얀마 사태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지만, 작은 일이라도 마음을 표현하고,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미얀마에 관련된 기사가 계속 생산될 수 있도록 기사를 클릭하고, UN에 의견을 보낸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남의 나라 신경 쓰지 말라는 의견들도 있다. 물론 자신들을 위한 싸움을 하는 그들이지만 적어도 외롭고 가치 없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잃지 않기를, 적어도 사람만이 인간성을 유지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들의 일에 눈을 감지 않았으면 한다.      


#victory Myanmar               


* 일러스트는 ‘소리여행’님께 허락을 받아 사용합니다.

  https://grafolio.naver.com/works/1877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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