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Myanmar
무서웠을 것이다. 인구도 많지 않던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나와 소리를 낸다. 총칼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 뿜어내는 소리와 기백을 이길 재간이 있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울부짖는 소리, 내 나라와 내 가족을 돌려 달라 외치는 소리. 그 소리의 크기와 울림이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겨우 할 수 있는 일은 힘으로 누르고, 무기로 제압하여, 강제로 해산시키는 일 뿐.
1919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계속됐다. 경기도의 작은 마을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해산하면, 내일 충청도에서, 모레 전라도/경상도에서, 멀리 제주도, 해외에서까지. 통신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 소식을 들은 대한사람이라면 주변의 뜻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모으고 적당한 날을 골라 가까이에 있는 일제의 경찰서라든지 주재소라든지까지 걷고 소리를 냈다. 대한독립만세.
때론 몇 십 명, 때론 몇 천 명, 때론 몇 만 명에 이르는 마음이 모여 그저 소리를 냈다.
‘내 나라를 도로 내 놓아라.’
‘이 곳은 내 고향이다.’
‘이 땅의 주인은 나다’
우리는 그 소리의 힘을 경험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총칼보다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기억한다. 그리고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가진 힘의 근원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지금 비행기를 타고나 갈 수 있는 곳, 사실 나랑 아무 상관없는 곳에서 스스로와 스스로의 터전을 지키려 피 흘리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우리와 닮아 있어서도 그렇지만, 인간이라면, 적어도 인간이라면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분노한다.
권력도 좋고, 돈도 좋다. 나도 그렇다. 그래도 인간이기에 하지 않는 금지의 영역이 있다. 그것이 약속이고, 최소한의 도리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일에 분노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간성을 져버리는 일에 분노해야 마땅하다.
인간은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죽이지 않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그저 자연 속에서 약육강식으로 살아가는 동물과 다른,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의 최소한의 도리고 가치라 여긴다. 인간들이 서로 살육하고 힘의 논리에 의해서 살아간다면 동물과 다르지 않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지구에 해악을 끼치면서 살아갈 가치와 자격이 없다.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모르는 자는 인간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그런 사람들을 숱하게 보지만, 법과 제도가 막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지금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체 어떤 인간이 부끄럽지 않다 할 수 있을까. 서로의 의지로 하는 전쟁이 아닌 자국민에 대한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죽이는 자가 법과 규범을 논한다는 말인가.
그들에게 최소한의 도움도 주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서 절망적이다. 누군가 이야기 하는 것에 공감한다. 이 정도의 기본적인 일은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구호활동이 아닌던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응원한다. #SaveMyanmar #StopCoup #StandwithMyan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