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혼비(獸魂碑) -4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by 이유

대학원 다음 학기 등록 하루 전, 지도교수님과 학과장 책임교수님의 서명을 포함해 총 11명의 서명을 받은 자퇴원을 학과사무실에 제출하였다.

2년 반 동안 눈물을 쏟아 낸 수많은 날을 뒤로한 채 학교를 떠났다.

아쉬움은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좌절감, 그리고 나의 방황과 함께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희생된 많은 목숨들은 나에게 인생의 무력감과 죄책감을 한껏 더해주었다. 나의 작은 실수가 어떤 마우스에게는 큰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공포 속에서 목숨을 내놓아야 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마우스를 죽이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오후 6시.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입학처 홈페이지에 수험번호와 이름을 넣었다.

결과가 나오기 전 로딩되는 짧은 순간 나는 눈을 감고 불합격이 뜨더라도 실망하지 말자고 스스로 되뇐다.

눈을 슬그머니 뜬다.

결과는 합격, 합격이다!

이렇게 나는 수의과대학에 편입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앞으로 또 4년, 다시 돌아가 나보다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 온종일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기쁨의 눈물이다. 고통과 죽음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고 생명을 주는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실험동물의 치료, 마취제 사용, 행동 풍부화.’ 이런 것들이 당연해지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다시 수혼비 앞에 선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다. 수십 명의 학우와 교수님이 함께 모여 수혼제를 지낸다.

왈칵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애써 참아낸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

그렇다고 저 큰 돌이 말해주는 것만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