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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다윤 Jun 07. 2020

오늘의 시발비용 지출내역서 : 인도네시아 미술관

입장료 : 무료. 왕복 교통비 : 400₩

 나의 인도네시아 유학 생활은 ‘불면증’과의 싸움이었다. 사람들이 새로운 하루를 열어가는 아침. 나는 어제를 미처 정산하지 못한 악성 채무자였다. 다른 사람들이 어제의 상환을 마치고 오늘을 빌려 쓸 동안, 나는 이자까지 밀려가면서 불어나는 어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보통 새벽 여섯 시쯤 겨우 잠에 들곤 했다. 가끔 잠을 청하기 위해 새벽 네다섯 시쯤 바람이라도 몇 번 쐴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건실한 이웃 무슬림의 인사를 애써 뿌리쳐야 했기에 이내 그만두었다. 이후로는 골방에 틀어박히는 수밖에 없었다.      


인도네시아의 저녁 풍경


 처음부터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새로운 환경에서 많은 것들을 꿈꿨었고,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하지만 꿈에 부풀었던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생각과는 달랐다. 학교 담당자와는 사사건건 마찰이 생겼으며, 언어는 낯설었고, 생활비도 넉넉지 않았다. 친구 혹은 이웃이라 생각했었던 사기꾼들을 몇 번 거치고 나니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가도 꽉 막힌 도로 위 날이 바짝 선 오토바이 경적소리와 매연을 통과하고 나면 긴장과 짜증이 묻어있었다. 몇 번씩 주저앉다 보니 극복하려는 의지도 조금씩 약해져 갔다. 그러다 보니 오늘 하루도 굴곡진 어버이의 이마를 쥐어 짜내어, 돈과 시간을 탕진하느라 수고했다고 자조하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 일과였다.      


오토바이와 차로 가득찬 자카르타의 거리



 더는 부모님의 밥그릇을 축내고 싶지 않았다. 방문 밖으로 발을 떼지 못하는 꼴사나운 내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신의 피와 땀을 들이켜고 어서 힘껏 날아보라며 다독이는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어디로든 나가서 외국어로 말이라도 한마디 더 하고, 한 곳이라도 더 둘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으면서 돈이 적게 드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인도네시아 국립 미술관에 들러보기로 했다. 지상철에서 걸어갈 수 있고, 입장도 공짜였으며, 실내라 시원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열심히 그렸던 수채화에 D+라는 성적이 매겨진 이후로 미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이역만리 타지에서 따로 시간을 내서 그림을 보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막상 미술관에 도착하고 나서는 제집 안방인 마냥 신나서 쏘다녔다. 인상파니, 야수파 운운하며 현학적일 필요는 없었다. 그냥 마음에 들면 오래 보고, 보기에 어렵거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발걸음을 옮기면 될 일이었다.      

 포장마차 조형물에 부패, 실업 따위를 메뉴로 걸어놓은 풍자 미술, 2차 대전 상륙정에 헬멧을 담아놓은 조형물 등,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부터 그저 보기에 아름다운 작품까지 다양했다. 작품의 화풍을 멋들어지게 풀어낼 수준은 안 됐다. 그래도 고등학교 정규과정을 마친 터라 최소한 차갑다, 따뜻하다 정도는 느낄 줄 알았다. 설령 그것도 모른다 치더라도 내 마음에 든다, 아니다만 구분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터였다. 작품세계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할 필요도 없었고, 미술에 조예가 깊은 이와 날 선 토론을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국립 미술관의 어느 그림




그렇게 얼마나 돌아봤을까. 폭이 3m는 되어 보이는 정글 그림 앞에서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린 채 꽤 오랫동안 서 있었다. 해가 뜨는 모습인지 지는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랑과 붉은색을 한데 뭉친듯한 하늘 밑으로 이국적인 나무가 펼쳐져 있었다. 예전에 기차 타고 지나가다 보았던 정글 풍경이었다. 그냥 지나칠 법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림에 자꾸 눈길이 가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미술관을 나오면서도 뭔가 시원섭섭한 것이 여운이 남는다는 것이 대충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그래도 나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을 다녀와서 내 불면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아름다운 결말은 없었다. 그래도 골방에서 바싹 말라 딱딱하게 굳었던 하루를 말랑말랑하게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되었다. 서핑을 하고, 광장에서 조깅도 했으며, 식물원을 하루 종일 누비기도 했다. 가끔씩 너무 자연만 찾는 게 아닌가 싶으면 혼자 영화도 보고, 쇼핑몰 안에 있는 오락실도 찾았다. 외국인 혼자 총 쏘는 게임을 하고 있노라면 따가울 정도로 호기심 어린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미술관 이후로 즐거운 무언가를 찾아 쏘다니는 일상에 익숙해졌던 터라, 이내 뻔뻔하게 게임을 이어갈 정도의 의욕은 회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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