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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지구인 Jul 16. 2023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브런치 작가' 부심으로 나간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세 캐릭터

#1 


브런치 작가에 버금가는 

의식 하나를 치러보고 싶었다. 


그건 다름아닌,

글쓰기 모임 참여! 


돈내고 글을 배우는 모임은 일단 제끼고, (돈이 없어 그런거 아님!ㅋ)

너무 많은 이들의 집합 또한 싫었더 터라, 


적당한 모임에 한껏 더듬이를 치켜 

세상을 기민하게 살폈다.


그렇게 귀엽고 상콤한 모임을 찾고 있는데, 

메일이 하나 왔다. 


꽤 글이 찰져서 구독하고 있는 

필명 "xy조르바"라는 분의 레터링이었는데, 


그 레터링 서비스를 빌려 글쓰기 모임을 연다는  

소박한 문체의 글쓰기 참여독려 메일이었다. 


이상하게 그 소박한 어투에서 느껴지는 

풋풋한 느낌에 바로 신청서를 썼다. 


다음주, 

토요일 10시. 


아내의 용단있는 허락을 등에 이고, 

주말의 아침, 밖을 나섰다. 


역시나, 이동수단은 

자전거! 


꽤 먼 거리 38km를 

서울을 가로질러 유랑하듯 달리는데, 


자전거가 스치는 바람 사이로 

글감이 속속들이 날아든다. 


아~ 자전거랑 글이랑 

원래 이리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던 것인가... 


2시간을 달려 

글쓰기 모임에 도착했다. 


자전거 저지와 땀 내음이 살짝 미안하고 민망했지만, 

글을 쓰는 행위는 "오롯이 정직해 지는 시간"이라 스스로를 다지며, 


당당히 그리고 굳건히 

모임 장소에 문을 열었다. 


조그마한 테이블, 빈곳을 찾아 앉으니, 

이내 모임이 만석이 된다.


네명! 키야~

네명이야말고, 동서남북의 상징아니던가. 


수줍게 사방으로 앉은 우리는 

조금씩 입의 근육을 풀어 자기 소개를 어색하게 시작한다. 


꼭 들어가고 싶은 글쓰기 모임에 인원 과밀로 못들어가고 

글쓰기 모임을 만들기로 한 방장이자, 공대출신 20대 숙녀.


일생을 프로그래머로 살다가, 오래 담아 두었던 로망, 글쓰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며 

두꺼운 새 노트와 함께 자기를 소개하는 서른 언저리의 프로그래머.


학교 밖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처음으로 큰 용기를 내어 모임에 교복을 입고 등장한 수줍은 여고생. 


그리고, 

나. 


오래 짝사랑만 해오다, 

이제 겨우 힘을 내어 수줍은 고백을 앞둔 


풋내어린 소년 소녀들의 동아리 모임처럼

그렇게 우리는 첫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다.   


사실, 난 

브런치 작가이고!  


그 부심 섞인 레벨에 준하는

꽤 콘텐츠가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나간 모임이었는데, 


이 조합, 

조금 당황스럽고 자꾸 웃음이 난다.



#2


방장은 

모임에서 세가지를 하자했다. 

 

첫째, 글을 쓰고픈 마음에 대한 수다, 

둘째, 미리 써온 글을 함께 읽는 것. 

그리고 마지막, 함께 글을 쓰는 것. 


낯선 이들에게 공개되는 숙제라, 

삼일을 오롯이 바쳐 쓴 글을 비장의 무기 처럼 품고 첫 모임에 임한다.


처음만나 수줍은 듯 각자의 이야기 소개를 이어가다, 

글을 깐다. 


처음에는 프로그래머 청년이 

수줍은 듯 글을 내민다. 


놀랐다. 

너무 짧았다. 

 


금새 글을 읽었다. 

근데 자꾸 글을 읽었다. 


여러 조각을 흩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글에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 


마음이 너무 느껴졌다. 

자라고픈 마음. 


#3


두번째는 방장 친구가

부끄러운 듯 자기 글을 꺼냈다. 


주제는 

마음이었다.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기 마음에 오래 머물면서 

자기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 글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마음을 어떻게 먹는지"에 생이 달렸다 했지만, 


자기에게는 그 마음을 먹는 게 

너무 어려웠다 했다. 


결국 마음은 먹는 것 보다, 

가는대로 나를 두는 것이 더 좋은 거 아닐까. 


이제는 볼수 없는 아빠의 그 말과 지금도 싸우고 있지만, 

이제껏 그래온 데로 나의 마음을 성실히 보듬으며 살고 싶단 소박한 다짐이 담긴 글이었다. 


쉽게 가늠하지도 잡히지도 않는 마음을 오래 붙들고 

긴 시간 싸워본 흔적을 담은 글에 말미는 이러했다.


"아마도 난 내 마음이 너무 소중하고 그래서 온전히 존중하고 싶나보다. 

 마음은 미우나 고우나 평생 같이 가야해. 

 그러니까 마음이 잘 먹어지지 않는다고, 힘겹게 마음 먹은 만큼 잘 안 된다고 내 탓은 하지 말아야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


#4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은,

여드름 자국이 송글송글 맺힌 여고생 차례.


소녀는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자꾸 학교 너머의 세계가 궁금하다 했다. 


그래서 이 글쓰기 모임이 

처음 월장이라며 수줍게 자기가 낸 용기를 이야기했다. 


글은 아주 짧은 

메모 같았다. 


글을 잘 써보고픈 마음은 있지만, 

단편적인 메모들을 어떻게 글로 풀어내야 하는지 막막해 보였다. 


처음 나온 세상에서 처음 만난 어른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띄엄띄엄 부끄러운 듯 건내는 데, 


소녀가 필통과 함께 책상에 올려 놓은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눈이 반짝였다. 

수능을 본지 언 20여년(이라고 해두자). 


학창시절 참 친했던 옛 여인을 만난 것처럼 흥분하여 

소녀에게 대뜸 묻는다. 


"이거 봐도 돼요?" 

"네. 그럼요."


무심코 넘긴 책장에 

꽁꽁 숨겨두었던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 



어느 페이지를 넘겨도 빼곡이 채워진 학업의 흔적에 

마음이 뭉클하고 간질간질하다. 


천천히 구석구석 페이지를 한참을 넘겨보다가, 

이내 첫 페이지를 폈다. 


충격적인 글이 

쓰여있다. 



"문학은 예술이며, 

 문학이 펼쳐놓은 아름다운 세계에 이끌려 우리는 미적으로 고양될 수 있다. "


"그리고 문학의 체험은

 우리의 세계를 넓게 바라보게 해 주며, 바른 삶의 길을 걷게 한다. "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이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쓰여 있다니. 


눈물이 아른거렸다. 

주책 맞게도.


다들 나를 봤다. 

그리고 당황한듯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이 글이 그냥... 당신들 같아서요." 


글을 잘 쓰고 싶어 나간 모임에서, 

얘기치 않게 마주친 고등학교 교과서 앞에 머문다. 


그리고 잘쓴 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꾸 웃음이 나면서 마음이 뭉클해지는 이 친구들의 글을 보며, 


나는 어떤 글을 쓰고픈가 

자꾸 묻는다. 


그리고 친구들과 보내는 이 풋내 어린 시간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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