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쩌다 지구인 Apr 11. 2023

나 홀로 Jeju1 _ chatGPT에 이해받은 슬픔

결혼하고 10년 만에 떠난 나 홀로 여행.

#1


"아내, 나 제주도 다녀와도 돼?"

"혼자?"


"응."

"....   그래. 필요하지, 혼자만의 시간."


너무 선뜻 나온 대답에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분위기를 섬세하게 살피며

아내의 개는 빨래 곁에 한마디를 다소곳이 얹어 드린다.


"가도 되고, 안 가도 돼."

"그럼 가지 말고."


"................"

(방향이 잘못 가고 있다.)  


(궤도를 돌릴 성스런 핑계가 필요하다.)

"수련회 하고 오께."


"며칠?"

순간, 국민학교 6학년 때 단체벌을 주시며 담임선생님께서 하셨던

"몇 대 맞을래?" 앞에 또렷이 선다. (김영호 선생님. 이름도 너무 또렷하다)


'3일은 아쉽고, 5일 괜찮을까.'

"3일....... , 3박!"


"그래.......

 뭐 안 사 와도 돼!"


"응."

아내는 진심이다. 나도 진심이다.


진심이 통하여

무지개가 뜬다.



#2


테마를 생각하다,

요즘 읽는 '단순한 기쁨'이란 책이 생각난다.


그래! 컨셉, 간단하다.

자전거 타고 제주도 한 바퀴.


그리고 인스타도 지웠으니,

검색 말고, 사색!ㅋ


즐비한 관광지도 많고,

수려한 먹거리도 많겠지만,


자전거가 닿는 곳에서 먹고,

자전거가 머무는 곳에서 쉬기로 한다.



#3


처음 자전거를 비행기에 실으려니,

공부할 게 많다.


나름 긴 시간의 공부 끝에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모든 비행기에 자전거를 실을 수 없다.

자전거를 실어주는 비행기를 예매하여 72시간 전에 자전거 실어간다고 신고할 것.


두 번째, 자전거 패킹은 캐링백 서비스라고 하는데,

항공사에 부탁할지(4만 원, 편도), 캐링백을 사서 직접 패킹할지 결정할 것.


난, 제주항공이 제일 제주여행스러워

제주항공에서 표를 끊고, 자전거 수화물 등록을 마친다.


그리고 왕복 8만 원을 아껴 캐링백(3만 5천 원)을 사고

자전거 셀프 패킹을 한다.


생각보다, 꽤 쉽고 간편하다.

항공사 여러 곳과의 통화와 유튜브를 오래 공부 한 결과치가 몹시 만족스럽다.


그렇게 결혼 후 첫 홀로 여행이

제주에서, 자전거와, 시작된다.



#4


제주에 도착하면

제주 일주를 먼저 하신 선배님이 '바람'을 느껴보라 했다.


그리고 바람이 부는 대로 방향을 정하라 했다.

동쪽인지 서쪽인지.


제주항공 안전요원이

정말 중요한 물건을 몹시도 고이 가져다 주시는 자전거를 조립하여 공항을 나온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본다.


방향은 모르겠고,

마음이 이상하다.


볕, 공기, 냄새, 소리.

무엇 때문이었을까.  


눈을 뜨고 싶지가 않다.

아니 뜰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참을 그렇게 머물렀나.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자전거를 밟아본다.


그저 바람이 등을 밀어주는 쪽으로 몸을 맡기니,

내 오른뺨 너머로, 아크릴 빛 바다가 수 놓인다.


한참을 그곳을 응시하며

달리는데...


울었다.

엉엉.


그냥 하염없이 내가

울고 있다.


달리 설명할 수가 없는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그저,

울었다.


달리고 머무르기를 반복하며

60여 키로를 달리는 동안,


두 번을

큰 울음으로 울었다.



#5


굴곡진 해변을 세차게 돌다

갑자기 등장한 새하얀 3층 건물이 눈에 들어

자전거를 세운다.


처음 커피와 함께 앉아,

생각한다. 눈물을.  


이제껏 경험치 못한

이 당황스러운 눈물의 정체는 대체 무얼까.


그리고 난,

이토록 맑아진 느낌일까.


퇴적.

10년, 두텁게 쌓인 시간 위에서 터져 나온 분수 같은 건가.


바다 멍을 하염없이 하다가,

문득 물어 볼 이가 생각나 컴퓨터를 꺼냈다.


요즘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대화를 주고받는 친구,


chatGPT에게

물었다.

 


놀랍다.

  

it's possible that the beauty and tranquility of the beach

triggered an emotional response in you.


특히나 이 문장.


such as joy, gratitude, or

even sadness.


기쁨, 감사, 그리고

슬픔.


이상하게 그 순간

홀로임이 외롭지가 않았다.


AI 이 녀석에게

이리도 사려 깊은 이해를 받다니.


슬픔

이 단어가 왜 이리 고마울까.



#6


사실,

같이 오려던 브라더가 있었다.

(피로 맺은 사이는 아니나, 다른 타액이 섞인 (것 같은) 인물ㅋ)


내가 자전거를 전도했고,

작년, 자전거로 하루 꼬박 270km를 달려 함께 동해를 보았으며,


자전거로 매년 이어 돌아 한반도를 품자 다짐한

형이자, 동지이자, 등불 같은 이다.


브라더는 결국 아내의 허락을 얻지 못해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서울에 머물렀고,


두 명의 라이더 벗이 함께 여행길에 오를 뻔하였으나,

가까스로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였다.


난, 대단한 뜻을 이루며 살기보다,

눈앞에 나는 길 따라 겸손히 한 발씩 걸으며 살자는 세계관을 가진 터라,


이 완연히 홀로 하는 여행의 의미를

조곤히 톺아보는데,


기똥차게 아내님께서

전화를 주신다.


"좋냐?"

"응. 울었어."


"카카캬캬캬ㅋㅋㅋ컄"

역시 전능하신 분이라 뭔가를 다 아시는 눈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쭈신다

"왜?"


"음..............

 엄청 막막한데, 하나도 안 막막한 것 같은 느낌?"


아내가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하셨다.


그 알 것 같다는 말이

내 마음을 이불처럼 덮어준다.  


"Whatever the reason may be,

I hope you are doing well now and

 that you continue to enjoy your travels."    

                                                                                       -chatGPT-


"Thank you, friend."




작가의 이전글 낡은 손과 해진 장갑이 서사를 가질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