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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Apr 25. 2024

관계지향적 인간의 실패한 스터디모임

내 얘기 좀 들어줘

일과 고시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정신을 온전치 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업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했던 두 번의 온라인 스터디모임은 서로 잠수를 타고 와해되기까지 두 번 다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처음 시작했던 스터디모임은 오픈카톡방에서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 8명을 모아서 내가 결성한 것이었다. 매주 월요일에 공부계획을 세우고 목표시간을 설정해서 공유하는 것, 그리고 매주 일요일에 서로의 성과를 비교해 보며 자극을 받거나 서로를 격려하는 것이 스터디모임 결성의 취지였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 과정에서 작고 느슨한 연대감 같은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혼자 하는 여행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을 더 좋아하는 성향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묵묵히 긴 여정을 통과해서 혼자 이해하고 깨달으며 종국까지 홀로 목적지에 잘 도착하는 사람은 못 되었다. 길이 험하면 힘들다고, 풍경이 수려하면 멋지다고, 뻔한 감상평이라 할지라도 나는 늘 함께하는 누군가에게 내 심정을 말하기를 좋아했다. 멀리 보내는 편지 말고, 바로 옆사람에게 하는 짧은 잡담 같은 것 말이다. 내 말을 들은 그 옆사람도 뻔한 감상평을 나에게 몇 마디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아, 나도 같은 맥락에 있잖아’하고 공감할 것이다.


모임을 시작한 첫 주는 꽤 만족스러웠다. 서로 격려의 말을 주고받았고, 동시에 좋은 감시자가 되어주었다. 그 덕에 나는 평소보다 주 5시간을 더 공부하게 됐다. 우리는 모임규칙을 위해 ‘열품타’라는 어플을 사용했다. 시작 버튼을 누르면 스마트폰의 다른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공부하는 픽토그램들에 불이 들어오며 동시간대에 공부하는 멤버들을 보여주었다. 머리에 띠를 두른 픽토그램은 하루 순공부시간 3시간이 지나면 머리 위로 땀방울을 흘렸고, 5시간이 지나면 등에 불꽃을 업었다. 픽토그램 저편에 경쟁자들이 실제로 책상에 앉아서 집중하는 것을 상상하면 나는 공부 중에 딴생각을 하기도 어려웠다. 공부가 유독 잘 된 날에는 모임 대화창을 열고 덕분에 하루 최장 집중시간을 기록하게 되었다고 계속 모임이 잘 유지되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7명 중 아무에게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머쓱했다. 둘째 주에는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생겼다. 셋째 주에는 몇 명이 쭉 잠수를 탔다. 그리고 넷째 주가 되기 전에 가장 열심히 공부하던 멤버가 모임을 탈퇴했다. 서운했다. 퇴근 후 어플을 켜도 책상에 앉아있는 픽토그램은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스터디모임은 그렇게 와해됐다.

두 번째 스터디 모임은 비슷한 경로를 통해 내가 모임장이 아닌 모임원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모임장은 여자였는데 야무지게 카톡에 단톡방을 만들어서 이런저런 규칙을 상세하게 적어 올렸다. 역시 단순 픽토그램뿐만이 아니라 프로필이 공개되는 카톡채팅방에 모이면 좀 더 친근감이 생기고 모임이 더 잘 유지되는 것 같았다...라는 것은 그냥 기분 탓이었다. 두 번째 모임은 내가 만든 모임보다 더 맥없이 사라졌다. 모임장이 첫 주부터 직장에서 맡은 새 프로젝트 때문에 바쁘다고 할 때부터 느낌이 싸하더라니... 그래도 두 번째 모임에서는 자료를 서로 주고받다가 모임원 한 명과 개인적으로 연락하며 대화다운 대화를 이어가게 되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같은 지역에서 같은 일을 하는 영어강사였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이 목적지가 같은 데다가 심지어 동향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느낌이랄까. 그도 내가 반가웠는지 본인이 가진 귀한 자료를 나에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이제 생긴 건가? 머리에 억지로 욱여넣어야 할 관세율표 28류, 29류가 얼마나 괴팍한지에 대한 심정을 나눌 동료가 말이다.


우리는 내친김에 점심시간을 쪼개 일터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만나기 전에 그가 나에게 2차 공부방향을 알려줄 테니 교재도 몇 개 챙겨 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어디까지 공부가 되어있는지 제가 만나면 문제를 좀 내볼까요?"라고 말하고 나서 "농담이에요"라며 신나게 웃었다. 하나도 안 웃겼다. 결국 만나서 나를 테스트해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나보다 더 오래 혹은 깊게 공부한 것처럼 보였다. 나도 자료 서너 개를 건네주었지만, 더 적극적으로 무언가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은 그였기 때문에 내가 받은 것이 훨씬 더 많았다. "이런 게 직업병인가 봐요"라고 그가 말했지만, 나는 그런 선생질하는 병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부탁한 것이 아닐지라도 자료를 받을 때마다 나는 예의상 머리를 조아리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감사를 했다. 그는 꽤나 뿌듯해하는 것 처럼보였다. 짧은 만남 후에도 그의 직업병은 몇 번 더 발현되었다. 한 번은 "평가 문제는 고시 부분까지 공부하셔야 하는 것 아시죠? 심화과정 하셨으니 제가 따로 잔소리는 안 할게요"라며 자료를 보내왔다. '웬 잔소리? 누가 보면 아주 지는 합격한 줄?' 어이가 없어서 혼잣말과 함께 실소가 육성으로 터져 나왔다. 이번엔 좀 웃겼다. 그렇다. 그는 아무래도 '남에게 도움을 주며 우월감을 느끼는 오지랖맨'이 분명했다.


도무지 오래 이어갈 인연이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손절을 할 정도로 오지랖맨이 꼴 보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1,2차를 한해에 합격하는지 지켜보고 싶었고(본인 계획이라고 했다), 우월감 그까짓 거 더 가지라고 하고 필요할때 자료나 좀 더 얻어낼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1차 시험이 끝나자마자 그는 조용히 잠수를 탔다. 가채점 결과가 나왔을 때쯤에 내가 그에게 보낸 카톡메시지의 1은 영영 사라지지 않았다. 1차에서 떨어지고 나니 더 이상 나에게 해줄 잔소리가 없는가 오지랖맨? 생각해 보면 그는 어떤 의미에서 꽤 훌륭한 교사였다. 훌륭한 반면교사. 그가 오지랖을 떨어서 황당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한편으로 마음이 좀 숙연해졌던 것이다. 관계지향적인 인간으로서 나는 사람 만나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때문에 ‘말’의 총량이 절대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다. 고로 나는 때때로 오지랖맨이 되기에 너무 쉬운 성향을 갖췄다. 내가 도움을 준답시고 남들을 불편하게 했을지도 모르는 과거의 많은 일들이 좌뇌에서 우뇌로 스쳐 지나갔다. 원치도 않는 도움을 주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추한 행동인가.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나는 오지랖맨 생각에 고개를 내저었다.


지난달에 3차 시도를 했다. 네이버 카페에 스터디를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또 오지랖맨 같은 모임원이 걸리면 어떨까 생각해 봤으나, 그리 나쁠 것 같지 않다. 나에게 타인이 지옥인 적은 거의 없거니와, 혹여 얄미운 사람 하나쯤 있으면 경쟁심에 더 공부 열심히 할지도? 그러나 서로에게 긍정적인 감시자가 되어주자는 내 글에 아무런 댓글도 달리지 않고 있다. 나는 이대로 혼자 꾸역꾸역 의지를 발휘해봐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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