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보험사로..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있다"
여든 가까이된 소설가 김훈의 산문집 '허송세월'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첫 글을 시작한다. 주변의 부고소식이 문자로 오가는 것을 택배의 배송완료 문자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죽음을 애처로워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고 초연한 어조로 글을 이어간다. 죽음에 의해 더 선명해진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매주 월수금 오전 미팅에서는 모두가 산뜻한 표정으로 죽음에 대해 회의한다. 마치 쿠팡에서 로켓배송 품목을 나열하듯이 재해사망과 질병사망을 쇼핑목록에 추가하면서, 죽음은 1+1으로 판매되는 롤휴지보다 더 가볍고 친숙한 것이 된다. 가끔 암진단금이나 사망보험금의 액수에 웃으며 ‘이거 정말 대박이죠~?’라고 말하는 팀장님을 보면, 보험사의 일은 죽음에 관한 블랙코미디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죽음을 담보로 장사하는 보험사 놈들을 비판하기보다는(내가 보험사 놈들의 앞잡이로 일해야 하므로..) 나는 죽음을 더 가볍고 친숙하게 말하는 일의 효용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도움을 주기때문이다.
내가 준비한 국가고시는 내 나이 39.5살에 끝났다. 시험이 끝나자 마흔이 6개월 앞에 마중 나와 있었다. 입버릇처럼 마흔전에는 국가자격증을 따겠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문턱까지 공부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만에 하나 떨어진다면 1차부터 다시 준비해야 하므로 마흔둘에 붙을 수 있는지도 미지수가 된다. 나와 같은 시험의 고시생들은 나이가 어렸다. 작년 합격자들 중 97년생이 가장 많다고 하니까, 아마 20대 초반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명치가 체한 듯이 갑갑해진다. 서른이 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사십 살’은 정말 뭔가 다르다. 진짜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이뤄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이 끝나고 합격에 더 목멨던 이유는 스스로 너무 늙어버렸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험사에 들어와서 ‘사십 살’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뒤집혀버렸다. 매년 업데이트되는 평균수명과 발병률을 촘촘하게 계산한 보험 상품들은 나이에 따라 죽음값을 매긴다. 나이가 들면 보험가입이 어렵거나 보험료가 비싼 경우가 많아서 6,70대 고객이 배정되는 날에는 영업이 곤란한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 고객이 4,50대만 돼도 ‘젊은’ 고객을 만난다는 생각에 일할 의욕이 생긴다. 그럼 2,30대는? 방금 태어나서 너무 건강한 나머지 보험에 대한 니즈가 없다.
내 남자친구는 매월 3만 원이 넘는 돈을 내는 암보험을 가지고 있었는데 계약만기가 65세였다. 65세까지만 보장해 준다니, 본격적으로 병원 갈 일이 생기는 시기에 딱 보장이 끊겨버리는 것이었다. ”65세는 너무 젊어. 아니, 너무 어려, 어리다고!! 우리 할머니 백네살에 돌아가셨단 말이야 “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흔에 절망하던 나는 65세가 너무 어리다고 거의 남자친구를 나무라듯 말했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나이도 수량표현이라서 어쩔 수 없이 비교기준에 따라 많거나 적다고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나이가 많다고 갑갑해질때는 사망보험의 만기일자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며칠전 남자친구의 보험을 새로 설계해주었는데, 만기설정이 살짝 고민되었다. 90세와 종신 둘 중 하나를 만기로 설정할 수 있는데 90세 만기가 월납 보험료가 좀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의 조부모님이 몇세라고 하셨더라.. 나는 고민하며 옆자리 동기에게 물었다.
“90세는.... 너무 어린가?”
풉. 그 순간 동기와 나, 둘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우리는 그에 비하면 얼마나 어린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