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방길 아저씨
산책로에서 자전거는 내려서 끌고 가세요.
오후 다섯 시가 지난 시간, 집에서 가까운 중랑천 옆 뚝방길로 산책을 갔다.
산책로를 삼사십 분쯤 걸은 뒤에 벤치에 앉아서 저녁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어이~ 어이!”하는 커다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내가 앉아 있는 곳에서 십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희끗한 백발 머리에 감청색 모자를 쓴 중년 아저씨 한 분이 자전거를 탄 젊은이에게 손가락질하며 호통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요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많고 길에서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어서 폭행으로 번지는 사건 사고도 많이 보도되곤 해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괜히 시비를 거는 이상한 사람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행여나 그 아저씨가 내게도 해코지를 할까 싶어서 얼른 벤치에서 일어나 그들과 반대편 방향으로 도망치듯 걸어갔다.
그렇게 오 분 정도 걸었는데, 또다시 뒤에서 “어이~ 어이~!” 하는 큰 소리가 났다. 다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그 아저씨가 또 다른 자전거 탄 사람에게 삿대질을 하며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게 보였다. 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 싶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내 곁을 지나가던 아주머니 두 분이 그 상황을 보며 “아, 자전거~!”라고 감탄하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 말을 듣자, 그 아저씨가 왜 그러는지 퍼뜩 이해가 되었다.
그 뚝방길은 보행자 전용 산책로라서 바닥과 길 옆 표지판에 ‘자전거는 내려서 끌고 가세요’라는 공지사항이 쓰여 있었다. 하지만, 산책할 때 그 공지 사항을 지키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특히나 오후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즈음해서는 빠른 속도로 자전거와 킥 보드를 몰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시간대에는 산책 도중에 그들과 부딪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산책하곤 했다.
처음에는 나 또한 ‘자전거는 내려서 끌고 가세요’라는 공지 사항을 알려주며 주의를 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숫자가 한 둘이 아니고 꽤 많을 뿐만 아니라, 어찌나 빠르게 속도를 내며 휙 지나가는지 때로는 무서운 마음조차 들곤 했다. 게다가 대부분이 덩치 큰 젊은 남성들이라 나처럼 자그마한 여자 혼자서 괜히 그들에게 오지랖을 부리다가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까 봐 그냥 ‘내가 참고 조심하자’라고 생각하며 피해 가곤 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혼자서 용감하게도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그들을 불러 세워서 주의를 주고 있던 거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그 아저씨에 대한 나의 인식이 ‘정신이 이상한 사람’에서 ‘용감하고 정의로운 시민의식을 지닌 사람’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긴장하며 빠르게 걷던 발걸음이 느려지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도 여전히 내 눈앞에는 빠르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집에 돌아가는 사람들이 쉼 없이 다가오고 지나갔다. 그들이 내 뒤 쪽에 있는 아저씨에게 얼마 못 가 제지당할 것을 생각하니, 어쩐지 우습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행여나 그 아저씨의 용감한 행동과 충고가 말다툼과 시비로 번져서 큰 싸움이 날까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속한 사회 집단에 정해진 규칙이나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면, 그 질서를 지키라고 주의를 주기 위해 용기 있게 나서기가 쉽지 않다. 자칫 그 행동이 나와 생각이 다른 타인과의 감정싸움으로 번져서 예상치 못한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보행자들은 자전거와 킥 보드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야기되는 불편함과 위험한 상황을 못 본 척 감수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 아저씨가 용기 있게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 아저씨가 매일 그렇게 산책로를 지키며 수많은 자전거와 킥 보드를 제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산책로를 매일 이용하는 시민으로서 자전거와 킥 보드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편하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모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산책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공지 사항을 잘 지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구청에 민원을 넣어볼까? 이런저런 방안을 고민해보며 집으로 돌아왔다.